추적추적 일요일

by Minnesota


어제 밤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가 오면 바람이 불고 무언가가 빌딩을 주기적으로 치는 소리가 난다.


그래서 그런건지 1시 넘어서 잠들었다.


일요일이 되었고 비는 안 오지만 동네가 젖어있었다.


남편과 같이 보려다가 나 혼자 보는게 낫겠다 싶었던 영화 레벤느망을 보고왔다.


누군지도 모를 내 앞에 앉아서 보는 남자 관객이 걱정될 정도의 사실주의적인 영화였다.


여자라면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고 영화 속 주인공의 걱정과 걱정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그 시점,

그리고 그 이후의 지난한 절차들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은 되지만 그 이후의 절차에 대해선 사실 들어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사뭇 두려운 장면이 꽤 됐다.


임신을 하게 되고 집에만 매여있게 되는 삶이란 사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임신을 해도 육아휴직 후에 회사에 돌아갈 길이 충분히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화 속 배경인 1940년대에는 달랐을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여성의 전도유망함은 하룻밤의 실수로 있었던 적도 없는 것처럼 사라졌을 것이다.


영화는 결국 낙태에 성공한 주인공이 졸업시험을 치르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시험에 붙었을지 안 붙었을지는 당연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당연히 시험에 붙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다.


산부인과 의사가 모두 남성이었고 낙태 시술을 시행한 사람은 여성이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2명의 남자 산부인과 의사는 여주인공에게 큰 공감도 하지 못했을 뿐더러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말만 할뿐이이다.


낙태 시술을 시행한 여성은 돈을 목적으로 시술을 행하겠지만 어찌됐던 여성이고,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시술을 시행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여성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오직 여성일까. 그런 생각이든다.


내가 만약 대학교 졸업 전, 그런 일을 겪는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영화를 보는 중간에 해보았다.


막막했을 것이고 암담했을 것이다. 끝끝내 주인공은 부모님께는 임신과 낙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못한다.


수재라고 불리우는 딸이 임신을 했고 낙태를 해야만 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혼자 걸어서 집에 왔다.


영화 속 주인공의 친구가 주인공에게 나는 그저 너보다 조금 운이 좋았을뿐이야라고 내뱉던 말이 생각난다.


맞다. 나 또한 그 주인공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던 여성 중 한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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