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2
세비야 숙소는 말그대로 이름만 호텔이다.
세비야라는 도시는 마드리드보다 훨씬 좋지만,
호텔은 영 아니다.
일찍 들어와서 잠을 청했으나, 누군가가 현관 비밀번호를 잃어버렸는지 문이 부서지도록 두들긴 탓에 오늘 잠 자긴 글렀다.
사실 세비야에서 내가 해볼 수 있는 건 거의 다 한 것 같다. 플라멩코, 투우장, 성이나 대성당 모두 둘러봤고 심지어 곳곳에 숨어 있는 미술관도 둘러봤다.
이상한 일이지만, 전날 갔던 스타벅스에 오늘 갔더니 직원이 내가 전날 무슨 색 스커트를 입고 갔었는지 기억할 정도랄까.
그래서 일찍 잠을 청하면서도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2주라는 여행 기간 동안만이라도
연락 하고 지내지 않기로 한 사람은 계속 떠올렸다.
누군가 현관문을 마구잡이로 두들길때,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밖에서 온갖 잡음이 들려서 잠을 못 자겠다고,
원래처럼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부질없는 일인 것이다.
그가 와서 현관문을 두드려대는 사람을 때려줄 수도 없는거고, 내 마음을 안심시켜주고자 여기까지 와 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냥 나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곧장 그에게 달려가는 것에 익숙해진 것 뿐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는 그렇게 지내왔다.
모든 것을 그에게 의존했고 이제는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때인 것이다.
세비야는 멋진 도시다. 그러나 종종, 혼자인 나는 외롭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서울에서도 난 외로웠다. 혼자 있어도 외롭고 둘이 있어도 외롭고 언제나. 어쩌면 이 곳에서 홀로 지내는 편이 덜 외로운 것 같달까.
결국 안경낀 초췌한 모습으로 현관에 내려가 문을 열어줬다. 들어와서 괜스레 친구들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고 싶었다. 다 때려치우고 집 가고 싶다고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지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싶었다. 전화음은 두 세번 울리더니 끊겼다.
어쩌면 그는 바뀐 내 프로필 사진을 언제나처럼 크게 확대해서 보려다가 옆에 있던 전화 버튼을 잘못 눌렀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는 내가 온라인이라는 상태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도 나를 생각하고 있음을 알리고자 전화 버튼을 누른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난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그의 전화를 받으면 난 다시 그 타성에 젖어버린다. 영영 기회를 잃게 된다. 혼자가 되는 기회.
내일 하루는 좋은 호텔에서 보내고자 특가 할인하는 곳을 예약했다. 아침 일찍 그 곳에 갈 것이다.
그리고 혼자임을 온몸으로 지각하면서 그냥 그렇게 하루를 보낼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에 품에서 훌쩍이는 어린 아이가 아니고, 될 수도 없으며, 벗.어.나.야.한.다.
곧 바르셀로나로 떠난다.
내가 이 여행을 굳건히 해낼 수 있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