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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Aug 31. 2023

무제

집에 오는 길에 집 바로 앞 편의점 말고 3분 거리의 편의점에 들렀다.

의도한건 아닌데 유독 그곳은 일주일의 애매한 위치인 목요일에 들른다.

그렇게 되었다. 너무 집 앞 편의점에서 술을 자주 사면 면목이 없다고해야하나, 술 중독같아 보여서 그렇다.


하여간 그곳에서 켈리 피쳐에다가 새로 한 병을 샀다. 평소엔 보통 캔맥주나 사가는데 오늘은 소주도 샀다.

마음먹고 마시겠단 의미이다. 아마도 술은 남편이 더 사러 갈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빈속에 술은 넣을수가 없어서, 시간 맞춰 시켜놓은 모둠회에서 회를 좀 접시에 덜어왔다.

빨리 술부터 마시고싶은데 이미 커피만 먹어서 속이 정상이 아닌터라 회부터 우겨넣었다.

회는 맛있다. 후쿠시마고 뭐고 나는 회 먹을란다.


오늘은 오전부터 개같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런날엔 점심에 약속이 없는 편이 낫다.

이런 날 괜히 회사사람이랑 점심 먹으면 오히려 사단이 난다. 혼자 스벅가서 샌드위치도 못 먹겠어서 그냥 오늘의 커피 숏 사이즈로 마셨다. 우유를 넣어 마시려하다가 그마저도 고혈압 걸릴 것 같은 상태에선 포기하고 말았다.


오후에는 입 다물고 에어팟 끼고 일만 했다. 존나 개같이 일만했다.

시발 내가 이거하려고 그렇게 고생하면서 공부했나. 문과인게 그렇게 죄인가.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벌 받듯이 살아야하나 싶었다. 상황 설명 뚝 잘라먹고 이런 글을 써재껴서 글 읽는 분들껜 죄송하다.

진심이다. 그런데 내가 오전에 대한 생각을 더 이상은 못하겠다.


나는 잘 살고 싶었다.

물론 노처녀로 썩어 문드러지고 있진 않아서 천만 다행이다.(노처녀 비하 발언 아니다. 나는 원래부터 결혼하고싶다고 노래 부르던 여자다.)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우리 부부는 섹스리스도 아니고 요새는 오히려 더 불붙어 있다. 그래서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라고 하자면 미래가 없는 삶, 집이 없는 삶, 엥겔지수가 높은 삶이랄까. 애도 없는데 생활비가 오지게 많이 나간다. 억울하다.


바로 전날 이제는 죽고싶지 않다고 했는데 여전히 그 마음은 그대로다. 번복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개 빡친다. 삶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직급을 올리고 연봉을 올려도 여전히 헥헥 거린다.

사는게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다. 고역이다.


표정이 안좋은게 너무 극명하게 드러났나보다.

지나가던 동기가 말을 걸었다. 어제 어디갔냐고. 휴가냈다고 하니까 휴가가 남아있냐길래. 될대로 되라지뭐. 라고했다. 어차피 내가 내일 퇴사할지 내일모레 퇴사할지 알수가 없으니까.

이런저런 쓰잘데기 없는 말 몇마디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길래 동기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내가 힘들어보인다고 하더라. 힘들다고 했다. 당장 때려치고싶다고도 했다.

참으란다. 그래도 1명이라도 그런말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어딘가싶긴 했지만 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술마시고 싶단 말만 3번했다. 그만둬버리라고 안하고 좀만 참으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그래도 내 삶이 존나 개 같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집 오는 길에 바람이 느껴졌다. 가을 바람. 오늘 총 5번 나는 울음을 참고 또 참는다.

회사에서 4번, 지금 1번. 그냥 내 자신이 불쌍하다. 자기 연민 하지말라는데 오늘은 좀 불쌍하다.

와인도 비싸서 피처 맥주에 소주 1병 사온다. 주변에 사람이라곤 한명도 없다. 친구도 가족도.

오로지 내 남편 하나랑 회사사람이 전부다. 아마 이 회사를 때려치고나면 또 그 조그마한 공동체가 무너져내릴 것이다. 오늘 하루종일 눈물이 자꾸 고였다.  


난 애 낳기도 싫은데 요새 애 가지려고 노력중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이 좆같은 짓거리를 하기가 싫어서 애나 가져서 나도 휴직이나 하고싶어서 그런거다.

애 낳기 싫다. 애 키우기도 싫은데 그냥 회사 좀 안가고싶다.


이 짓거리를 어떻게 정년까지 해야하지 싶다. 애도 싫고 다 싫다.

그래도 죽고 싶진 않다. 이만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툭하면 죽고싶다고 하던 나니까.

사는게 너무 고독하다.

나는 이렇게 열이 뻗칠때마다 영화 <사도>  ost 만조상해원경을 듣는다. 귀신쫓는 노래라고 하는데, 그건 모르겠고 내 가슴에 한이 맺혀서 그것 좀 풀고싶어서 듣는다. 맨날 이렇게 울면서 듣는다.


조금만 더 잘 풀렸으면 이렇게 있진 않을텐데 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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