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tilda Nov 04. 2023

무제

금요일엔 오후 1시반경에 더현대로 향했다. 집에서 40분 정도 걸으면 닿는 거리였다.

비가 올락말락해서 가방에 우산도 챙겼다. 오랜만에 트레이닝복이 아닌 평상시 입던 옷을 입었다.

친구는 1년 반만에 만났다. 작년엔 봄꽃 필때 만났던 기억이다.

독일에서 상담치료사로 일하는 친구다. 


나는 슈퍼말차 1박스를 친구에게 선물로 줬다. 친구는 밀카 초콜릿이랑 슈톨렌으로 추정되는 독일식 빵을 선물로 건넸다. 친구랑은 아마도 고등학교 무렵부터 알게 된듯 하다. 친구는 아직도 머릿속에 내 고등학교 때의 모습이 강렬하게 남아있나보다. 나는 그 당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 친구를 만났을때나 간혹 꺼네는 기억이랄까. 나에게 그 시절은 그저 공부한 시기로만 남아있다.


친구를 만나자마자 근황을 술술 풀었다. 일주일 전에 퇴사했단 사실도 알렸고 왜 나왔는지도 최대한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직업이 상담치료사니까 일할때 줄곧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는것을 알기에 나는 최대한 나의 근황에 대해 간추려서 이야기해줬다. 친구는 가만히 들었다.


사실 나는 거의 4~5년간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2시간 이상 같이 있지 못했다. 술자리가 아니면 특히나 그랬다. 오랜 시간 대화할 거리가 마땅치 않았고 밖에 너무 오래있으면 방전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술자리는 술을 마시니까 흥이 올라 더 오랜 시간 밖에 있을 수 있긴 하더라. 이 친구는 술을 전혀 안 마시는 친구다.

친구에게 10월 한달간 내가 배달에 쓴 돈이 50만원 가량 된다는 점과 3~4달 전부터 주4회 정도 거나하게 맥주나 와인을 마셨단 사실도 이야기했다. 


더현대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젊은이들로 바글바글했다. 평범한 까페에 자리 잡기 위해서도 웨이팅을 걸어야한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왜들 여기로, 아직도 몰리는걸까.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아무도 나에게 시비를 털지 않아도 기가 쭉쭉 빨리는 사람인지라 시간이 흐를 수록 힘들어졌다.


밥을 먹으러 이탈리안 식당에 갔으나 그곳도 웨이팅을 30~40분해서 들어갔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려면 시간이 남았고 우리는 배고파서 먼저 피자 하나만 주문해서 먹기로 했다. 페로니 맥주 500미리도 한 잔 했다. 그 정도는 친구도 눈감아주었다. 그래도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워낙 오래된 친구니까.


남편은 7시경에 도착했고 각자 파스타를 시켜서 먹었다. 나는 정통 까르보나라가 아니라 크림이 잔뜩 묻은 파스타를 먹고 싶었으나, 그 곳은 후추와 노른자 등만 존재하는 정통 까르보나라만 있었다. 밥을 먹고 친구와 헤어지고선 우리는 지하에서 장을 간단히 보고 돌아왔다. 친구에게 저녁을 대접했고 장 본것까지 15만원을 순식간에 소비했다!


남편은 운전하느라 술을 못마셔서 마시고싶다길래 기네스 4개들이를 9천원에 편의점에서 사왔다. 나는 마시지 않았다. 그 날은 이탈리안 식당에서 먹은 끼니가 처음이자 마지막 끼니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잠이 도통 오지 않았다. 친구 만나서도 일부러 디카페인 호지차를 마셨지만 소용 없었다. 새벽 2시쯤 겨우 잠들어 오늘 10시30분에 눈을 떴다.


나는 회사다닐때 선불 10만원을 슬로우캘리에 이미 지불해두어서 오늘 브런치는 그곳에서 먹기로 했다. 남편과 같이 가서 먹으니 평일 점심시간이랑은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부채살 스테이크 보울을 먹었고 나는 언제나처럼 밥은 제외하고 케일로만 먹었다. abc 착즙주스랑 토마토 스프도 같이 먹었는데 남편도 나도 만족스러웠다. 그러고선 남산공원에 잠깐 같이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왔고 남편은 지금 대학 농구 모임에 가 있다.


나는 갑자기 너무 졸리고 피곤했으나 슈퍼 말차를 하나 물에 타서 들고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오늘도 만보는 채웠다. 저녁에는 고추장찌개, 진미채볶음, 두부부침을 할 예정이다. 회가 많이 먹고 싶지만 내일로 미뤘다. 외식은 하루에 1끼 이상은 안할 것이다.


지금도 사실 배가 고프다. 최대한 줄여나가야지. 그래서 원래의 내 모습을 찾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무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