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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Nov 07. 2023

무속신앙에 대해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할지 모르겠다.

올해 1월 말, 그러니까 퇴사하고 아마 1주일쯤 후에 나는 점집을 갔다.

내 기억에 중랑구 근처였는데 정말 찾기가 어려워서 그 겨울에 버스 탔다가 반대방향으로 가길래 결국 내려서 택시를 타고 들어갔다. 낡은 빌라였다. 들어가보니 안은 매우 깨끗했고 점을 봐주는 분의 남편 분이 나를 맞아주셨다. 생각해보면 나는 들어가자마자 무슨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곧바로 내 성향과 내 상태, 그러니까 내가 그 곳까지 그렇게 찾아간 이유에 대해 쭉 늘어놓으셨다. 그 후로 나는 그곳에서 말한대로 2월말에 합격 통지를 받아 1달간 다녔다가 그 사이 다른 곳이 또 합격되어 4월부터 10월까지 다니게 된 것이다.


내가 퇴사한 이 곳에 대해 그 점봐주시는 분은 꼰대가 많아 힘들것이라고 했었는데 맞긴 맞았다. 백프로.

들어가기 전까진 이런 곳인지 몰랐고, 하필이면 제일 최악의 부서에 들어가 있었다. 물론 다른 부서 배치를 받았다고 그곳에선 엄청나게 행복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여간 그랬다. 그래서 7개월만에 또 퇴사를 해서 12일째 백수 생활을 하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그런 점집을 나혼자 찾아간게 그때가 딱 2번째였다. 나머지는 보더라도 철학관을 간다거나 타로 점을 봤다.


29살엔 특히나 자주 타로 점이나 사주를 봤던 기억이다. 당시 연애를 하고는 있었으나 그 사람과도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날이 많았고 간당간당한 연애였다. 당시 나는 연애 끝물에 들어서선 그냥 지금 사귀는 이 사람이랑 결혼을 해버리고 싶다는 아주 비이성적인 사고에 빠져들고 있었다. 엄마는 당시 만나던 그 남자애가 나에게 하는걸 보면 아주 잘해서 다행이라고 했으나 엄마가 항상 가는 철학관 아저씨는 절대 문지방으로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라고 했었다. 그리고 엄마는 살면서 들은 중에 가장 최악의 사주풀이를 그 아저씨를 통해 들었었다. 그런 얘기를 듣고나니 그 남자애랑 굳이 결혼까진 아닌게 맞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일단 그 친구 자체도 나랑 결혼을 하겠다라고 결론을 낸적도 없었다. 애매모호하게 굴더니 어느날 내가 습관처럼 헤어지자는 말을 한번 더 했을때 진짜 헤어져 버렸다. 그렇게 나는 29살 추석 무렵 직장도 없고 남자친구도 없는 상태가 되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태로 혼자 부산에 갔던게 너무 신기하다. 그러고서도 소개팅은 꾸준히 했다. 2번 정도. 2번째 만난 사람이 내 남편이다. 한 사람에게 2명을 소개받은건데 첫번째 남자는 내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성격도 이상했다. 2번째로 만난 사람이 내 남편이었고 아직도 기억이 난다. 중동역에서 만나기로 했고 할일이 딱히 없던 나는 일찍 나가서 멍하니 역 창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시간 딱 맞춰서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오는 남자는 날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현재의 남편을 만났지만 우리도 우여곡절이 없진 않았다. 만난지 얼마안돼서 남편은 결혼하고 싶어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문제는 우리 둘다 애 같았고 자주 고주망태가 되었다. 어쨌든 우리집에 인사를 드리러도 왔었고 엄마는 똑같이 철학관 아저씨에게 이 사람 사주를 물었다. 이전 남자친구처럼 나쁘진않지만 내 짝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33살(지금의 나이)쯤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은 영 마음에 안 들어했다. 특히 아빠는 현 남편의 서울 00대학교 졸업장을 보여달라고까지 했다. 하는 행동으로 봐선 그 학교에 나온게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했으나 사실 아빠의 의심이 일리가 있긴 했다. 


당시 내 남편은 손가락에서 담배쩐내가 진동하는 흡연 중독자였다. 하루에 1갑 1/2정도 펴댔다. 거의 1시간에 한번꼴로 담배를 폈고 몸에서 온통 담배냄새가 났다. 지금은 기적적으로 비흡연자가 된지 3년째다.


내가 최악의 상태에서 이 사람을 안만났다면 아마 나도 결혼까진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결혼식을 총 2번인가 3번 미루고나서 결혼했지만 우리는 그 후로도 정말 많이 피터지게 싸웠다. 곧 이사를 해야하는 이 신혼집에서 말이다. 우리가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 양 옆집은 이사를 여러번 가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왔다. 우리는 이 곳에서 꽤 오래 살았다.


회사를 다니면 항상 나는 외줄타기하는 심정이었다. 이번에도 그랬고 과거에도 그랬다. 친정집에서 살때는 엄마한테 철학원 아저씨한테 가서 좀 물어봐달라고 했었다. 엄마는 나와는 달리 그런걸 자주 보려곤 하지 않았다. 굳이 그걸 뭘 자주 보냐고 했던 사람이다. 나는 무슨 일만 있으면 그렇게 가서 봐달라고 했었다.


지금은 과거 대비 좀 덜 보는 편이긴 하지만 7개월 간 최근 회사를 다니면서는 한 사람에게 타로를 꽤 자주 봤었다. 그만큼 이 회사 생활이 녹록치 않았다는 의미이다. 내가 유일하게 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사주, 신점 잘보는 곳을 물어보는 글에 항상 달리는 댓글이 있다. '그런걸 왜 믿니,' '그 돈으로 차라리 먹을거 사먹지,' 등등

그러나 똑같은 비율로 항상 달리는 댓글 '잘 보는데 나도 알려줘.'


나는 후자 쪽이다. 1월에 찾아간 곳도 저 커뮤니티에서 일면식도 없는 분이 알려줘서 갔다왔다.

그리고 너무 잘 맞아서 아직도 간간히 내가 연락을 드린다. 


나는 무속에 빠져 굿을 하고 살풀이를 하고 부적을 붙이는 일따윈 해본적이 없다.

앞으로도 할 일은 없을 것이다. 200만원 주고 굿을 하면 잘 풀릴거라고 한 곳이 있던 기억인데 당연히 안했다.

그 200만원 버는데 얼마나 힘든지 내가 알아서 굿에는 안쓴다. 


평소에도 공포라디오를 자주 듣고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이런 무속신앙에 대해 친숙하기도 하다.


20대 후반부터 사는게 내 맘같지 않고 계속해서 인간에게 치이고나니 자꾸 이런 쪽에 마음이 흔들린다.


지금도 나는 무슨 일을 하면서 먹고 살지 모르겠고 딱히 큰 기대가 안 생기는 상태이다.

나에게 남은 거라곤 남편 하나 햄스터 하나다. 어제 청약 결과가 나왔는데 우리는 당첨자 명단에 없었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남편은 좌절했다. 될 줄 알았나보다. 하여간 그렇다. 인생이 뭐 생각대로 된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어느 시점부터. 그래서 그런가 자꾸 무속신앙을 찾게 된다. 


엄마가 가는 철학원 아저씨 말로는 올해부터 나는 모든게 걱정할 것 없이 잘된다고 했었다. 내가 그렇게 대리달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고 엄마가 말했더니 대리가 아니라 과장까지도 가능한 운세라고 했단다. 대리는 달았으나 그 회사는 나와버렸고 이제 나는 뭘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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