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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Dec 25. 2023

무제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간다.

토요일에는 월~금까지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로 인해 장을 보는 시간 30분을 빼곤 집에만 있었다.

특별한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넷플릭스를 tv로 연결해서 남편과 gone baby gone이란 옛날 영화를 봤다.

모건 프리먼이 나오길래 선택한 영환데 정작 모건 프리먼은 처음과 끝 부분에만 잠깐 나온다.

저녁엔 중국음식을 먹었다. 사실 금요일 회식자리도 중국음식점에서 했기에 좀 이상한 선택이라 볼 수 있다.

그래도 엄청 맛있게 먹었다. 원체 좋아하는 음식이라 그런가보다.

    

금요일 회식에선 코스요리로 먹었고 북경오리도 처음 먹었다. 고량주가 있었으나 나는 고량주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어서 맥주만 마셨다. 


일요일에도 아침에 잠깐 산책을 한 것 빼곤 나가지 않았다.

낮에는 맥주를 왕창 마시고 monster라는 넷플릭스 영화를 봤다. 아주 옛날 영화같은데 꽤 재밌게 봤다.

저녁은 파파존스 피자를 오랜만에 먹었다. 그런데 속에서 3일 내내 마신 맥주가 영 안받았는지 밤이 되서 다 토했다. 머리가 깨질것 같이 아프고 계속 토를 해서 속을 비워냈다.


오늘은 11시에 겨우 눈을 떴고 팥죽을 아침으로 먹었다. 회사에서 준 팥죽을 먹어보니 맛있어서 또 사온것이다. 파주 스파에 갔더니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나는 사람이 많아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좀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찜질방에서 땀을 빼니까 숙취가 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저녁은 근처 함흥냉면집에서 비빔냉면, 갈비탕을 남편과 나눠먹었고 집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혼자 탕 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24년도가 코앞에 다가왔는데 사실 난 맞이할 준비가 안된 듯하다.

그리고 24년도가 올해와 비슷하다면 정말 살아갈 자신이 없단 생각도 했다.

올해는, 어찌보면 운이 좋았고 또 어찌보면 매우 힘든 한 해였다.

어느 해가 편하게만 흘러겠냐만은, 너무나도 많은 변화와 변동의 해였다. 올해는.


팥죽이 맛있어서 또 먹은것도 있지만 사실은 귀신을 쫓는다는 동지 팥죽이라 한번 더 먹었다.

올해는 내게 있어서 꼭 귀신 붙은 한 해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 무서운 표현일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정말로 그런 한 해였다.

나는 1월 중순경에도 술을 왕창 먹고 다 토해냈다. 올해 마지막 달인 12월 중순에 또 한번 토를 한게 웃기다.

수미상관 구조라고 해야할까. 좀 슬픈건, 1월엔 맥주에 와인에 다 섞어마셔서 그럴 수 있다치는데 12월 이번에는 고작 맥주만 마셨는데 이 정도로 속이 뒤집어졌다는 사실이다. 1년간 많이 늙었나보다.


남편은 찜질방에 들어갔다 나오니 안경알에 흠이 가있다고 징징댄다. 또 사야한다고 한다.


나는 차라리 나처럼 라식 수술을 이참에 받지 그러냐고 했지만 300만원 돈을 들여서 수술을 하자니 부담되나 보다. 당연히 그럴것이다. 나는 그때 부모님 지원을 받았으니 아무 생각 없이 수술을 했던거니깐.


지금 우리는 아무런 지원도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까 갈비탕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예전에 부모님 집에서 살땐 엄마가 밥하기 싫으면 사오던게 갈비탕이었다.

매우 자주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15000원을 지불하고 겨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갈비탕이다.


이상하게 슬프면 에미넴 노래를 듣게 된다. 미국에서 자주 반복 재생했던 노래들만 골라서 듣는다.


슬프긴 한 듯 하다. 이렇게 또 1년이 흘렀고 새해를 기다리는 기쁜 마음보단 씁쓸한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이 없을 수는 없나보다. 내일은 또 출근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특별한게 없이 이렇게 살다 죽을 것을 너무 잘 아니까 기대할만한게 아무것도 없다.

그럴 때 애를 낳아야한다고 누가 그러던데, 엄마 마음이 이럴때 태어난 자식은 무슨 죄일까 싶다.

게다가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애를 낳고싶은 마음이 없다.


찜질방에 애를 데리고 온 엄마들은 그저 자기 자식이 예쁜지 애가 천방지축으로 굴고 떼를 쓰고 울어도 그저 좋다고 웃는다. 내가 보기엔 민폐다. 그리고 나도 애를 낳아서 저 사람들처럼 똑같이 굴고 있을 것을 생각하자니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우울할 것 같다. 


내일은 아마도 팀 발령이 날 것이다.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태에서 인사팀장이 지난주 금요일에 그렇게 말을 했으니 큰 이변이 없다면 바로 내일이다.


예전같으면 이런 것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을텐데 웃기다.


배도 안고픈데 좀 전에 남은 팥죽을 조금 데워 먹었다.


낮에 거울로 본 내 얼굴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하기사 속에 있는 것을 다 게워냈으니 꼴이 정상일 수가 없다.

그래도 목욕 재계를 하고나서 그런건지 지금은 안색이 좀 나아졌다.


목욕탕에서 걸어다니는 여자들, 탕에서 멍때리는 여자들을 보다보면 내 모습은 어떻겠구나 싶다.


이제 정말 얼마 안남은 23년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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