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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Dec 28. 2023

무제

이틀 전에 인사발령이 났다.

나는 뜻밖에도 홍보팀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홍보팀이 되고 싶었던 적이 살면서 단 한번도 없었던지라 난감했다.


동기들인 내가 템플스테이 차담시간에 홍보팀장님과 나눴던 대화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소위 말해 그 분이 나를 점찍어서라는데 내가 별말도 안한 것 같았기에 나는 잘 모르겠다.


어제 자리를 옮겼다. 거의 1달간 3층 교육장에 상주하다가 이제서야 내 자리로 컴퓨터를 옮긴 것이다.

휑뎅그래한 자리에 나 혼자 자리를 옮겨갔다. 팀장님은 바빠보였고 주위는 어수선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이 곳이 내 회사가 맞는지 조차 의문인지라 그냥 하라는대로 영혼없이 따라가는 중이다.


오늘은 종무식을 하고 일찍 끝난다길래 가방도 안 들고 갔다.

그런데 10시반에 종무식이 끝났으나 여전히 대기 상태로 자리에 매여 있었다.

가라는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팀에 있는 기존 직원에게 가겠다 말하고 나왔다.


지금 이 시간부터 다음주 월요일까진 자유다.

오늘은 식욕감퇴제를 안먹었던터라 사무실에서 열심히 아몬드를 씹어먹었고 집에 오는 길엔 배 속에서 요동치듯 꼬르륵 거렸다. 집 오는 길에 김밥집에 들러 기본 김밥 1줄을 샀는데 2500원이라 좋았다.

다른 곳보다 500원이 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 와서 먹어보니 싼 값을 하는구나 싶었던게 참기름도 안 발라져 있었고 우엉도 없었다. 그냥 그런 맛이었다.


나는 내일로 예약해둔 눈썹왁싱을 앞당겨서 오늘 13:30에 받기로 했다.

끝나고선 여의도에서 퇴사한 동기를 만나기로 했다. 원랜 1월에 만나기로 했으나 1월부터 또 어떻게 삶이 달라질지를 몰라서 그냥 오늘 만나자고 내가 제안했다. 커피를 마실 예정이다.


너무 졸리고 피곤하다. 요새 커피를 대접씩 마셔서 두통이 심한듯 하다.

근데 커피라도 안 마시면 출근을 못하겠다. 점점 체력만 나빠지는 중이다.

집에만 웅크리고 있고 싶었는데 그러면 오히려 불안하고 정신건강에 해로울 것 같아서 일부러 빡빡하게 뒤에 일정을 만들어두었다. 그러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어쨌든 월급 없는 삶은 고독하고 괴롭다.

그래서 이렇게 다니고 있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이걸 언제까지 할까 싶다.

품이 너무 많이 든다.


종무식을 하면서 누군가가 상을 받는 모습을 봤다.

언제까지 이 모든 것을 반복해야할까 생각했다.

20대에도 이런걸 했고 30대에도 이런걸 한다.


내가 원했던 삶이 이게 절대 아닌데 이렇게 고착화되가고 있는 듯 하다.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나아질게 없어보이는데 애써 괜찮은척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나는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내년에 기대할게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죽으면 좋겠다고 했다. 올해로서 마지막 삶을 누리다 가고싶다고.

지금도 똑같은 생각이다. 변한건 없다.


더 이상 뭔가 기대할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매달 3-4주에 한번 꼴로 눈썹 왁싱을 받는다.

요새는 2주에 한번씩 피부관리를 받고 있다.

네일은 1달~1달 1반만에 한번씩 주로 젤 네일만 받는다.


이 모든 것을 일종의 '관리'라고 하던데 나는 이 관리라는 것을 하는데 꽤 많은 시간과 돈을 소비한다.

사실 나는 이 모든 것을 왜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하던 것이니까 관성적으로 하게 된다.


적금 만기된 돈이 아직 입출금 통장에 고스라니 많이 남아있다.

처치 곤란이다. 왜냐하면 곧 있을, 그러니까 24년 4월에 있을 우리의 이사에 들어갈 돈으로 쓸 예정이라 함부로 묶어두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4년 4월엔 행복할까.

23년을 돌이켜보면 행복 또는 만족했던 나날이 4~6월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 앞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실 자신이 없다.

웃음이 다 나온달까. 지금의 현실이 내 현실이 맞나 싶다.

넷플릭스 BEEF에 나오는 주인공의 상태다.

배도 안고픈데 버거를 속에 우겨넣는 그 모습, 교회에서 갑자기 감정이 폭발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

다 이해가 간다.


어쨌든 간략하게 말하자면 아쉽게도 나는 올해가 내가 예상한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내가 가장 오래 몸담았던 회사에서 힘들게 퇴사했고 그 이후에도 줄줄이 퇴사는 이어졌다.

어딘가는 돈이 적어서, 또 어딘가는 조직문화와 원치 않는 직무 때문에, 다음 퇴사는 또 언제일까.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봐 일정을 잡아놓았지만 솔직히 후회된다.

나가기가 싫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건설적으로 살려면 나가는게 맞다.

집에만 있는다고 지긋지긋한 현실이 바뀌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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