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Minnesota

어제도 10시 조금 넘어 잠들었던 기억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무렵 항상 잠든다.

9시쯤 눈을 떠보니, 언제나 그렇듯 피로가 가득 쌓여서 몸은 두들겨맞은듯 무겁다.

다들 그런건지 나만 그런건지 알수가 없다.


남편은 강아지 산책을 다녀왔고 개를 부르니 세상 행복한 얼굴로 뛰어온다.

오늘 아침도 맥모닝이다. 남편은 어제 밤에 내가 잘때 혼자 치토스랑 과자 한봉지를 더 뜯고 페트병 맥주 하나를 비웠다고 한다.


강아지 목욕을 시켰고 빨래를 개고, 그새 쌓인 빨래를 돌린다.

오랜만에 팬더마우스 두 마리를 지켜봤다. 한마리는 꼭 쳇바퀴 뒤에 숨어서 아주 작은 손으로 아주 작은 음식을 갉아먹는다.


남편은 세탁소에 내 옷 두벌을 맡기고 정수기 필터를 갈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각자 맡은 바 묵묵히 하는 토요일 아침이다.


Incubus의 drive라는 곡을 계속 듣는다. 그 곡에 꽂힌지 1년이 넘어간다.

넷플릭스 드라마 beef에서 나오는 노래인데 유달리 그 노래가 좋다.

어제 직장동료랑 밥을 먹으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한다길래 나에게도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나도 항상 그 고민을 하면서 살지만, 일에 매몰된 채 하루를 마치고 낡아비틀어진 걸레 조각 신세로 집에 들어오면 항상 어김없이 그 고민의 끝은 물음표로 끝난다.


그나마 영화를 보고 강아지를 보고 팬더마우스를 보고 남편의 농담에 승질을 부리면서 사는게 낙일까.


돈을 아낀다고 해놓고선, 비싼 공연을 1월에 두 차례나 보는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도 결국은 시발비용이겠지.


살아내려면 뭐라도 해야하니까라는 자조적인 변명을 한다.

이런 생각조차 평일에는 할 여유가 없다. 그렇게 매일을 보내고 있고 1월도 곧 끝이 난다.

명절에 대한 계획도 당연히 없다.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다보니, 매주 주말 계획 세우기에도 벅차다.


2012년도 이무렵 나는 미국 미네소타에 있었다. 그래서 항상 이 무렵이 되면 나는 언제나 미국이 그립다.

그래서 그때 많이 듣던 노래를 자연스럽게 듣게 된다. 그때 듣던 노래에 그나마 추억이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찍은 사진을 봐도 이젠 낯설기만 하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면서 살았겠지.

그때의 나는, 학교 근처 까페에서 언제든 먹고싶은 모카를 사마셨고 언제든 수업을 안가고 wilson library 쇼파에 혼자 잠적하고 글만 읽었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살수가 없다.


그곳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 있고 이것에 대해 남편을 포함해 어느 누구에게 이야기해도 추억을 공유하긴 어렵다.

다시 돌아가도 그때의 그 모습, 그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 더 이상 내가 22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무감각해진 성인이다.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싫고 짜증나게 하는 인간들은 아예 투명인간화하고 살고 싶은 사람이다. 순수하게 사람을 만나 순수하게 그들과 대화를 나누던 그 모습의 나는 이제 없다.

나이를 먹었으니 어쩔 수 없다.


오늘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내볼까. 절에 가고싶긴 한데 너무 멀어서 걱정이다.

도선사는 집에서 1시간 거리다.

남편은 그냥 집콕 하고 싶은가보다.


18시경에 영화를 예매해두었다.

그전까지 무얼하면서 보낼지 생각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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