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하지만 그래도,

by Minnesota

요새는 남아 도는 게 시간이어서 그런지 눈 뜬 순간부터 잠들기 전 까지

시공간을 넘나들어 기억 속을 헤맨다.


오늘은 유독 첫 남자친구에 대한 잔상이 떠오르더니

역시나 가장 최근 사람이 눈에 다시 밟힌다.


그 사람 말마따나 나는 더 이상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어떻게 그렇게 무 자르듯이 안녕하냐고 울며불며 하던 나는 그 때가 벌써 낯.설.다.


흐릿하게나마 종종 떠오르는 건 그래도 최근 사람이다.

예상했던 것보단 적은 횟수지만, 그래도.


놓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그렇게도 놓기가 어려웠을까 싶다.

내 생활에서 싹싹 지우고서부턴 이상하게 그렇게도 잘 울던 내가 울지도 않더라.


그래도 나는 사랑다운 사랑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

3번째와 6번째는 사랑다운 사랑이라고 할 만 하다.


데이트라 부를만한 것을 한 번도 안 하고 지낸 지 한 달 조금 못 된 것 같다.

지난 해엔 참으로 얽히섥히 섞인, 자유 연애를 불사른 한 해였다.


데이트 없는 하루하루는 덕분에 덧없이- 고요하게만 흘러간다.

딱히 나쁘지 않다. 데이트란 게 결국은 내가 좋아서하기보단, 그 사람이 싫지 않아서였던거 뿐이니까.


시간이 켜켜히 쌓여가는 그 지루하고 권태로운 과정을 물끄러미 지켜보기 싫어서

나는 딱히 좋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사람과 마주하곤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불꽃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었다.

정말 잠깐 만난 사람일지라도 시간이 흘러 한 장면 정도는 기억에 남아 있다.


낯 간지러운 애칭으로 불렸던 때가 바로 몇 주전인데, 나는 그 애칭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그 애칭으로 불러주지 않는 다는 사실이 딱히 나를 불편하거나 슬프게 만들지 않는다.


나는 결국 또 한번, 권태로운 연애로부터 '생존'한 것이다.


계속 읽고 계속 쓰다보니 서서히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예전의 나는, 정말 많이도 읽었다. 그리고 정말 많이 썼다.


한 동안 나는 읽고 쓰는 일을 멈추었다.

내가 진정 '생존'하기 위해선 읽고 쓰는 일임을 무의식 중에 이미 알고 있으면서 나는 끝내 외면했다.


그냥 사람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밥을 먹고 웃고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했을 뿐이다.

지쳐서 잠들기 전까지 누군가와 있기를 반복하다보니 나는 더 이상 본래의 내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책을 읽고 몸을 씻고 잠을 자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하며 살아 간다.

내가 나 스스로를 돌보는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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