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데, 난 맥주 한 잔 하고 싶었을뿐이야.'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난 정말 다른 의도는 없었다. 당장 맥주마시자는 말에 바로 콜할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었다.
근데 불려 나온 그 사람은 다른 생각을 갖고 나온 것 같더라.
맥주를 마시고 난 다음 날, 그 사람은 나와 '만나는' 사람이 되었다는 식으로 행동을 했다.
아 차 싶었다. 난 작년에도, 올해도 이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에 이 사람에게 같은 이유로 상처도 준 적이 있었기에 더더욱 완곡하게 설명했다.
현재 내 자신의 상황, 심리적 상태, 전 연인과의 헤어짐 등등을 구구절절히 늘어놓아 겨우 겨우 그 사람이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사실은 나는 그 사람을 남자로 보지 않는다.)
간신히 그를 납득시킨 그 날 새벽, 나는 단지 새벽이란 길고 긴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그와 통화했다.
사실 아무런 애정이 없기에 지나간 인연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나는 이 사람과 이런 대화조차도 나눌 필요도, 욕구도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새벽 3시에 전화를 끊었고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또 문자가 와 있었다.
시간의 간격을 두면 알아차릴까 싶어 한참 후에 할 수 있는 한 가장 간략한 답변을 했다.
답이 없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 생각보다 끈질겼다.
밤 11시경, 나중에 어딘가에 가자며 포스팅 링크를 보내왔다.
나는 곧장 확인했지만 그 날 해야 하는 일이 진척을 보이지 않아서 그 일 외에는 모든 것이 귀찮아 답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란 시간이 더 흘러, 그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질척거린단 표현을 써도 될까 싶다.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그 사람에겐 상처주는 말을 할 수가 없지만, 이 곳에나마 진심을 말하고 싶다.
'나는 그 날 그냥 술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었어. 밖에서 기왕이면 맛있는 맥주 마시면서 말이야.
그 외에는 별달리 바라는 바는 없었어. 그리고, 내가 누차 얘기했잖아.
당신이랑 나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고 둘 다 절대 바뀌지 않을거라고.
내가 당신이라면, 나라는 사람한테 더 이상 마음 안 내줄거야. 대체 뭘 믿고 그럴까 싶어.
한 번 상처준 사람은 그 다음에도 마찬가지야. 당신 이외에도 무수한 사람에게 상처를 남겼다 생각해 난.
그냥 나는 그런 인간이야. 앞으로 누굴 만나서 어떤 만남을 하게 될진 나도 몰라. 그냥 걸어온 길이 그렇단 거야.
그리고 난 사람을 잘 믿지 않아. 난 당신의 부모님이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당신 누나가 면접관이 되어 면접장에
들어간다는 등등의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0.0001도 관심이 없어.
당신이라서 그런게 아냐. 난 원래 그래. 누군가한테 크게 호기심을 가지는 일이 별로 없어.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선 나는 더더욱 온전히 나 자신한테 집중하고 싶거든.
더 직설적으로 말해도 되겠지? 당신이 이 글을 볼 일은 없으니까.
난 당신한테 반하긴 커녕, 매력적이다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미안해. 내가 이 사실에 대해 왜 미안하다고
끊임없이 사과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나는 당신이 내 상대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특히 나는 다음 상대는 그 어느때보다도 신중하게 고를거야. 그리고 이번만큼은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하는
상태에서 시작하고 싶어. 그냥 그 사람이 날 좋아한다해서 받아주는 형식말고 말이야.
그러니까 당신과 나는 더더욱 안 되는 거야.
나한테 상처받기 싫다했지? 그래서 이렇게 말 못하겠더라.
이제 진짜 내려 놓았으면 해. 나와의 관계.
나도 '그냥 맥주가 마시고 싶다'란 이유로 당신 불러내지 않을게.
잘 지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