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에 당신이 존재한다

by Minnesota

일요일 오후 나는 목적지 없이 길을 나섰다.


가다보니 덕수궁 근처, 조용하게 시간을 보낼만한 장소를 찾아 걸었다.


날씨는 8월말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무더웠다.


너무나도 익숙한 서울 풍경.


2014년 광화문에서 인턴을 할 때 자주 걸었던 그 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레 인턴 때가 떠올랐다.


아, 바로 그 전에 작년 6월 회사 행사 차 들렀던 플라자 호텔을 보면서 작년 그 무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계속해서 걸었다.


걷다 보니 플라토 미술관이 보였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자친구와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를 그 미술관에서 함께 했었다.


조금 더 걷다보니 Fraser's Place가 나왔다. 2013년에 만나던 그 사람과 기념일을 보냈던 곳(200일 즈음이었던 것 같다)이 보였다.


그 때 나는 아이스크림 케익을 준비했고 그 사람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마셨던 모에 샹동 샴페인을 준비했다.


서울 곳곳에 나와 함께 했던 누군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나와 함께 보낸 그 시간이 흐릿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계속해서 걸으며 생각했다. 최근 헤어진 사람과는 서울에서 보낸 시간이 적어서 참 다행이라고.


어쩌면 그와 함께한 대부분의 시간이 서울이 아니었기에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까페에서 두어시간을 보낸 후에 나는 다시 또 정처 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내가 인턴으로 근무했던 빌딩이 보이고 나는 아침마다 출근길에 들르던 까페에 들러서 음료를 주문했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작년 내 생일에 함께 했던 누군가와 들렀던 상점이 눈에 보였다.


커피빈에 들러서 초코 케익을 샀고 맥도날드에 들러서 그 때 출시된 바나나 쉐이크와 감자튀김을 샀다.


정크푸드만 골랐던 기억.


하루 종일 나는 서울 곳곳에서 나의 이십대의 조각 조각을 주어 담았다.


그래, 그 때는 이 사람과 있었지.


그래, 그 날은 무지 추웠는데.


그래, 그 날 나는 그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래, 그 때 우리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지.


그래, 그래도 그 사람이 참 잘해줬어.


그래, 뜬금없지만 그 때 그 사람은 나한테 구세주같았어.


그래, 우리는 그 날 빨간 목도리를 했지.


.......


다른 사람들 눈엔 그저 평범한 빌딩일 뿐일 수도 있는 곳이 나에겐 추억의 일부분이다.


거창한 의미를 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또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떤 곳에서 추억을 만들까.


지금 가장 궁금한 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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