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지금 어디니?"
"뭐 하는 거야, 아이들이 걱정돼서 잠도 못 자고 전화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알아, 지금 서울 가는 중이야."
"전화기 확인해 봐 아이고 참나!"
별안간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성난 어머님 목소리 순간 잠들어 있던 세포들이 일렬종대로 집결하며 상황 정리에 들어갔다.
시원한 바다가 시원함을 안겨준다.
금요일 늦게 도착한 남편에게 무거운 침묵을 선물했다. 드라이브 가고 싶다는 말에 어디든 갈 수 있다며 씩 웃어 보인다. 아이들에게 을왕리 가서 조개구이 먹자고 했더니 콧방귀만 뀔 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엄마 아빠 데이트하고 오라며 등 떠민다. 아이들 속내는 알고 있지만, 못 이기는 척 두 번 요구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을왕리를 향해 달렸을 뿐인데 숨통이 트이는 기분 신기하게 굳어 있던 근육들이 흐물흐물 풀리기 시작하더니 입가의 주름이 씰룩거렸다. 옆에서 남편이 촉촉하게 옹알거리고 있다.
그렇게 신나게 달려 도착한 을왕리 밤바다는 어둠으로 꽉 채워져 있었지만,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기묘함을 느끼는 날이었다.
깜깜한 바다가 환하게 비추는 시원함에 아이들에게 영상통화를 하며 같이 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 했다.
"엄마, 아주 아주 늦게 오세요"
"엄마, 그냥 아빠랑 자고 오세요"
"우리 걱정은 하지 마시고 천천히 오세요"
어이없는 아이들 반응에 서운함이 느껴졌지만, 남편과의 데이트를 즐겨 보기로 했다.
야구 배팅 연습장에서 날아오는 공을 향해 무작정 배트를 휘둘리고 "탁" "탁" 경쾌한 소리를 내며 공이 날아오를 때 느껴지는 짜릿함. 발가락에서부터 끌어올린 힘을 손가락으로 가져와 야구 배트를 냅다 휘둘리고 있는 내 옆에서 남편은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고마워 남편.
밤바다를 마주하며 마신 커피 한잔에 흥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왔어야 했었다.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맥주 캔을 사서 차로 향했다. 봉인 해제된 입을 통해 조잘거리는 나와 달리 남편은 조용히 잠이 들어 있었다. 종일 일하고 올라왔는데 뾰로통한 와이프 기분 맞추려 밤 운전까지 했으니, 체력왕인 남편도 피곤했을 테다.
남편의 단잠을 지켜주려 조용히 맥주 한 모금 친구 삼아 시간의 여유에 흠뻑 취해 보기로 했다.
은은하게 밀려오는 기분 좋은 졸음에 잠깐 눈을 감았는데, 어머니 호통이라니 억울했지만, 차창 밖은 이미 해가 둥실 떠 있고 달콤한 여유는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새벽에 남편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고 잠시 드라이브만 하고 들어갈 거라 나는 핸드폰도 챙겨 오지 않았었다. 남편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여러 사람에게 전화가 왔었다. 아들딸 엄마 동생까지 앞다투어 받지 못한 번호가 튕겨져 있었다.
뭐야, 전화가 이렇게 많이 왔는데 우리가 못 들었다고 말도 안 돼. 나는 분명 남편 깨기를 기다리며 맥주 한 캔 더 마셨을 뿐인데, 왠지 억울했지만 지금 상황은 암흑이다.
"어이구 내일모레 50인데 외박했다고 엄마한테 혼났내." 남편의 허허실실 한 마디에 덩달아 헛웃음이 나긴 했지만, 걱정은 태산처럼 쌓여 갔다. 새벽에 집에 도착한 부모님, 새벽 내내 초조했을 아이들 마음, 어젯밤 홀가분하게 달렸던 도로를 근심 걱정 가득 안고 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들이 엄마, 아빠 가출했다고 여기저기 다 전화했나 봐"
(실컷 게임하고 잠도 안 잘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늦게 오라더니, 녀석 어지간히 걱정되었나 보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복잡했지만, 남편도 나도 왠지 모를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PS : 이후 알게 됐지만 남편 핸드폰은 일정 시간 수면모드로 전환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그 많은 부재중 전화는 고요 속 외침으로 사라졌었다.
한 줄 요약 : 달콤.살벌한 가출로 가족의 소중함을 한 번 더 느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