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거슬릴 용기
작은 키에 날다람쥐처럼 날렵한 몸매를 지녔다. 오밀조밀 귀여운 눈,코 새초롬한 입술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달리기를 좋아해서 걷는 것보다 뛰는 게 좋았다. 바람을 벗 삼아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달리다 넘어져 무릎 성한 날이 없어 할머니한테 많이 혼났지만, 천천히 걷는 건 왠지 답답했다. 달리기만큼 내가 좋아했던 건 나무 오르기였다.
우리 집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집은 본채와 안채 그리고 뒷마당에는 무화과나무, 감나무가 많아서 가을이면 동네잔치를 하고도 남을 만큼 감이 많이 달렸다. 뒷마당 감나무를 좋아해서 심심하면 나무에 올라 하늘 보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동네 나무 타기로 나를 이길 친구는 없었다.
그날도 친구들과 나무 타기를 했다. 아침부터 속이 울렁거리고 현기증이 나더니 평소와 다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고 나뭇가지를 잡고 있던 손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그대로 나무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데 다리가 뻐근하고 욱신거렸다. 아픈 것 보다 창피하고 친구들이 놀릴까 봐 울음을 꾹 참고 ‘씩’ 웃어 보였다. 겨우 몸을 일으켜 걸음을 떼는데 식은땀이 나더니 묵직한 통증이 밀려와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몸은 바닥에 내팽겨졌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나를 보고 웃던 친구들이 달려와 걱정하는 손길로 나를 일으켜 주었고 친구들 부축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고 다리가 빨갛게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아픈 다리를 끌어안고 몸을 동글게 말아 새우처럼 누워 보려 했지만, 터져 나오는 신음은 막을 수 없었다. 옆에 자고 있던 할머니가 초롱불을 켜고 뜨거운 이마에 손을 얹더니 이내 차가운 수건을 머리에 얹어 놓으셨다. 다행히 다친 다리는 들키지 않았다.
방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다친 다리가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은 새어머니 말처럼 붓기가 빠지면 괜찮아질 거라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다리에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았고 똑바로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었다. 살을 뚫고 나오는 통증에 눈물만 찔끔 거렸다.
한 날은 아버지가 누워 있는 나를 보고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 괜찮냐고 묻지도 않아서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부지 다리가 이상해라, 영 힘을 못 쓰것는디”
“시방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어라.”
“오른쪽 다리를 끌고 기다시피 아부지 옆으로 가서 다리 보여줌시로 말했는디, 아부지는 버럭 화부터 내분디, 무서워서 암말도 못 했당게”
'엄마가 보고 싶은디, 그라고 아픈디, '
새어머니는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속이 탄 할머니만 다친 다리에 된장 바르고, 초록즙이 뚝뚝 떨어지는 약초를 찧어 발라줬다. 아버지는 무섭고, 새어머니는 쌔해서 혼자 아픈 다리를 끌어안고 며칠을 훌쩍이며 보냈다.
한 달이 지나갔고 아픈 다리는 여전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답답한 마음에 꺾어진 감나무 가지로 몸을 지탱하고 한발 한발 걸음을 떼어 보기로 했다.
“철퍼덕” 두어 발짝도 못 가고 다리 힘이 푹 꺼지더니 몸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믿겨 지지 않았다. 멀쩡했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무릎 밑으로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심이 불구덩이에 떨어진 거만치로 아파왔는디, 옆에 아무도 없는 디야, 그라고 아부지는 빙신이 되어 부렀다.”
“시방 생각하믄, 그때 아부지 다리는 부러졌는디 멍충이 맹키로 그걸 몰랐으야”
긴 안개 속에 있는 사람처럼 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옛날 옛적 이야기하듯 하고 있었다. 꿈 많던 개구쟁이 소년은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아부지 애껴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했던 말이 있당게”
“니를 그때 핵교에 못 보낸 것이 시상 환이 되어 부렀다.”
“할머니 돌아가싱게, 그냥 찬밥 신세 되브렀제, 핵교는 뭔 핵교냐 그 길로 아부지는 농사일만 했제, 느그 큰아부지, 작은아부지 핵교 다닐 때 아부지는 일했제, 운이 겁나게 없으야 아부지가, 무자게 매정한 시상을 살았으야”
꺾여 버린 삶은 짙은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었고 집안의 미운 오리 새끼가 된 운 없는 아이는 동생 앞길 막지 말라고 혼나기 일쑤였다.
부잣집 셋째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운 없는 아이가 되었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는 그 당시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졸업했고 잘 사는데 왜 아버지는 국민학교(지금 초등학교) 졸업도 못 했냐고 차마 나는 묻지 못했다. 왜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건강하지 못하냐고 묻지 않았다. 버릇처럼 질문을 삼켰던 그 아이는 여전히 삶에 질문이 없다.
아버지는 가족 품에서 떨어진 외톨이가 되어 엄마를 만났고, 원하지 않았던 결혼으로 죄 없는 엄마가 아버지 불행 속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 불행의 긴 터널은 아버지가 떠난 지금도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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