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삶이 사랑으로

아이야,

by 바스락

아이야, 엄마는 사랑이 뭔지 몰랐단다. 관심이 없었는지 몰라, 상처받는 게 싫어서 처음부터 회피하며 살았단다. 그런 엄마가 너에게 사랑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 묻고 또 물었단다. 그 흔한 사랑 따위, 그 방대한 사랑, 작고 크고, 주고받고, 정의할 수 없는 무한한 의미를 품고 있는데, 너를 낳고 그 의미를 조금씩 알아 가고 있더라.


그래서 엄마만의 언어로 표현해 보려 해, 엄마가 알게 됐고, 또 알아갈 사랑을 말이지?


며칠 전 작은 이모 전화를 받았단다.

"막내야, 엄마가 많이 우셨어."

"그렇게 많이 우신 걸 처음 봤는데, 너한테 많이 미안해하시더라."


할머니는 엄마를 잘 챙기지 못한 지난날을 회상하며, 미안함에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내고, 긴장이 풀린 사람처럼 종일 주무셨다고 해.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단다. 할머니와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엄마는 무척 많아, 서로의 아픔을 들추지 않기 위해 벽 하나를 새워두고 살아왔단다.


할머니와 엄마는 보편적인 모녀 사이는 아니었어.

할머니는 엄마를 어려워했고, 엄마는 할머니를 가여워하며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단다. 쉽게 이해되지 않겠지만, 가끔 너도 엄마의 무표정을 보고 "엄마, 화났어요?"라고 묻잖아. 엄마도 그랬어! 할머니 인생은 거의 침묵이었으니까, 언제나 먼저 손을 잡아야 했어.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행사에 엄마는 늘 혼자였단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투정 부리지 않았고, 짜증 낸다 한들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견디는 것도 엄마 몫이었어. 오롯이 혼자인 세상.


할머니와 엄마는 그저 살아가는 거, 살아내야 하는 버티는 삶을 살았단다. 십수 년이 지났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엄마에게 가여운 존재며, 할머니 역시 엄마가 편한 딸은 아닌가 봐, 그렇게 목 놓아 울고 싶은 마음을 지금까지 꾹 참고 버티신 걸 보면,


"독하고 고집스럽게도 힘들다는 말을 안 해, 그래서 막내가 힘들다고 하면 진짜 너무 힘든 거야, 그래서 겁이 나" "독하디 독한 게 지 아버지 그렇게 술 드시고 살림살이 다 때려 부수어도 기여기 그 옆에서 잠을 자더라"


삶은 닮아 가더라, 버티고 기다리며,


언젠가부터 삶은 버티고 이겨내는 숙제 같았다. 온 힘을 버티는 곳으로 쏟았기에 삶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원망하고 후회하기보다 잘 살아내는 게 내가 살아온 과거에 대한 복수라 생각했기에 다른 건 관심이 없었다. 그 마음에 지각변동이 일기 시작한 건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부터였다.


‘내가, 네 엄마야’


아들이 아프다는 전화를 받고,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웬만하면 아파도 스스로 이겨내는 아이가 지금 와줄 수 있냐는 말에 바로 집으로 향했다. 체했는지 소화제도 먹은 상태였는데, 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겠다고 했다.


"엄마 그냥 옆에 있어 주면 안 돼"


힘겨운 아들 목소리에 외로움이 묻어 있었다.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머리는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몇 번을 화장실로 뛰어가 속에 있는 걸 괴어냈지만, 상태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 몸을 쓰다듬고, 마사지하는 거 예외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 잠을 자고 싶은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잘 수가 없어요, 엄마 화장실" 아이 등을 두들기며 주책맞게 눈물이 글썽거렸다. 등을 토닥이는 손바닥 힘마저 조심스러웠다. 가슴이 찢기는 기분이었다.


어릴 적 나는 유독 잔병치레가 많아 매번 엄마 단잠을 깨웠고, 물수건을 갈아가며 엄마는 내 옆에서 밤을 꼴딱 새우는 날이 많았다. 조심스레 내 손을 잡고 만지작거리는 엄마의 체온이 느껴져 아들 손을 만지작거렸다.


엄마의 체온은 늘 조심스러웠다. 내가 엄마 품을 파고들 때, 멈칫했고, 엄마는 자식을 안아주는 법도 표현하는 법도 잘 몰랐다. 엄마의 삶은 매 순간 투쟁이었고, 나 또한 책임져야 하는 하나의 투쟁이었음을 젊은 엄마의 외로움을 나는 목격하며 자랐다.


백발이 된 엄마는 왜 그토록 울었을까? 엄마 안에 무엇이 그토록 엄마를 서럽고 아프게 했을까? 그 깊이를 알 수 없지만, 엄마의 눈물이 고마운 건 왜일까? 엄마는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아이야, 너를 키우면서 엄마는 알았단다. 엄마는 사랑받아본 적이 없었던 게 아니라,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을 너를 키우면서 엄마는 애써 웃으려 노력했고, 못하는 표현을 연습했었지, 지금은 많이 자연스러워졌단다.


"사랑해"라는 말이 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말은 통해 마음이 열리니, 입도 열리고 표정도 열리고 표현도 열리더라. 그때는 몰랐지만 너를 키우면 알게 된 사랑을 너에게 알려주고 싶었어.


사랑은,

버티는 순간에, 기다리는 순간에, 누군가의 옆에 가만히 있어 주는 모든 순간에 머물러 있더라,


엄마가 단단하게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건, 엄마 삶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야, 널 아끼고 네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면, 지치고 힘든 날이 있더라도 충분히 이겨낼 힘이 있다고 믿는단다. 엄마의 버티는 삶의 노력은 너였어.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책임과 버팀이더라, 버티는 마음에 사랑이 있더라,



#사랑#아이#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