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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맫차 Feb 19. 2020

곁에 남아 있는 사람

임경선 단편 소설집

책을 사면 평소처럼

책을 감싸고 있는 커버를 벗기고, 

딱딱하거나 조금 더 손에 잘 감기는 코팅된 재질의 겉면을 양손으로 가볍게 쥐고 읽어나간다.


작가 임경선이라는 이름보다

캣우먼이라는 닉네임이 나에겐 더 친숙하다.

벌써 10년, 아니 14~15년쯤은 되었을 김C 아저씨의 심야 라디오에서 일주일에 한 번

사랑과 연애에 관한 솔직하고 직설적인 캣우먼만의 상담 이야기는

수능시험을 어설프게 준비하는 수험생에게 그 어떤 과목보다

궁금하고, 또 궁금하고 언젠간 풀어나가야만 하는 중요한 시험문제 해답지를 미리 보여주는 것 같았다.


김C 아저씨의 라디오는 끝이 났고,

대학교를 갔고, 일이라는 걸 하게 되었고.

그렇게 살다보니 10년이 훌쩍 넘게 시간이 지났고

다시 돌아와 캣우먼, 임경선 작가의 책을 읽었다.


어렵지 않게 읽혀나가는 소설 하나하나의 문장들 속에서

딱히 짐작하기 어려운 '이유 모를 저림'이 있는 건

어느새 나도 이렇게 나이를 먹었으니까-

앞으로도 Keep Calm and Carry On.


 

p.245

인생은 그리 단순하지도, 의도대로 풀리지도 않다 보니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각자의 장소에서 필사적으로 투쟁을 벌인다. 그들은 용기 있는 선택을 내리고 스스로 상황을 움직이는가 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결기 있게 받아들여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기도 한다. 혹은 아예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기도 하는데, 이런 정직한 항복이라면 견고한 껍질을 깨고 새로이 시작하게 하는 내면의 힘을 길러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고 그것을 지켜가며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일 - '곁에 남아 있는 사람'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온전히 내가 주인인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가장 좋았던 작가의 말속 한 구절. 


그리고 소설 속 문장들-


p.41

"너는 이해하기 힘들 거야. 아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것은 나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가족은 제아무리 지옥 같아도 타인이 절대 재단할 수 없는 신성한 그 무엇일까.


p.79

먹고 마시면서도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영욱은 지적이면서 상냥했고, 희진은 호기심과 재치가 넘쳤다.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았던 두 사람은 같이 있을 때 더욱 즐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90

한때는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그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데 절망했다. 이제는 제 사람이 되었는데도 그의 전부를 가질 순 없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웠다. 희진은 음지에서 시들시들 생명을 잃어가는 식물이 된 기분이었다.


p.122

"네가 책을 좋아해서 이렇게 속 깊은 사람으로 컸나 보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듯 우리 어머니도 자기 자식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전혀 속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


p.203

그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으면서 일상을 단정하고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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