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dy's Toy Workshop
조금 더 진지하게 커피를 마셔볼까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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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로마를 거쳐 서양 역사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커피 역시 인류 문화 역사와 함께 성장한 음료니까요.
와인은 얼마나 중요한 음료였던지 예수님의 첫 기적이 와인 제조였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마시면 취하지요. 커피는 반대로 정신을 맑게 하는 역할 덕분에 이슬람 문화로 퍼지게 됩니다. 아랍인의 하루 커피 소비량은 평균 25잔이나 된다고 해요.
하지만 커피는 1차 세계대전의 군수품으로 시작해서 스타벅스에 이어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됩니다. 커피의 맛과 향을 정량화하고 품질 좋은 커피를 고민하면서 커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지요.
커피 맛은 정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답은 있지요.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때 엔지니어는 피쉬본 다이어그램을 그립니다. 문제를 발생시키는 인자를 나열하고 각 인자의 영향을 도식화하는 기술입니다. 커피 맛을 결과로 판단하면 원두, 가공, 로스팅, 보관, 추출로 주요 인자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습니다.
커피는 커피 열매의 과육을 제거하고 그 씨앗으로 만든 음료입니다. 크게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품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 로부스타 품종은 병충해에 강하기 때문에 앞서 살펴본 커피 역사에서도 다른 전파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맛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다양한 품종과 교차 교배되어 어떤 품종이 더 뛰어나다고 이야기하기 힘들지요.
커피는 남위 25 도와 북위 25도 사이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이 지역을 커피 벨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환경 조건만 맞으면 화분에서 키울 수도 있어요.
이렇게 재배된 커피는 과육을 벗기고 씨앗에 껍질을 제거하는데 물로 세척하는 습식, 건조한 후에 껍질을 제거하는 건식이 있습니다. 건조 후 원하는 풍미를 유지할 만큼 껍질을 제거하는 펄프드 내추럴 방식도 있습니다. 커피콩에 곰팡이 같은 균류에 오염되면 커피 전체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런 콩은 일일이 확인해야 합니다.
커피 가공 방식은 이렇게 커피팩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정보로 어떤 향미를 가진 커피일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지요.
진짜 커피의 맛과 향은 로스팅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맛있게 구워진 고기 처럼 커피의 맛과 향도 마이야르 반응으로 만들어집니다. 커피콩의 설탕이 다양한 아미노산과 반응해서 만들어진 향미들은 커피콩 내부 기공에 저장됩니다.
구워진 정도에 따라 그 향과 맛이 달라지는데 신맛은 점차 줄어들고 스모키 한 향과 쓴맛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로스팅 된 원두의 색상을 보고도 맛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원두는 향과 맛 그리고 밸런스로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깁니다. 기준에 맞춰 분쇄한 커피의 향을 평가하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수증기의 향과 맛을 봅니다. 이 과정을 커핑이라고 하는데 큐그레이더라는 전문가가 평가하지요. 경험상 원두에서 나는 향기보다 분쇄했을 때 나는 향기가 추출된 커피의 향과 가장 비슷합니다.
이렇게 원두는 크게 농부와 로스터 그리고 큐그레이더의 손을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검토한 피쉬본 다이어그램에서 엔지니어가 해볼 수 있는 것은 사실 별로 없습니다. 로스팅은 전문 자격이 없어 직접 해 볼 수 있지만 고르게 인자(가스 양, 공기 흐름, 로스팅 드럼 회전 속도, 무게, 로스팅 시간)를 제어하며 로스팅 하기 위해서는 전문 장비가 필요합니다.
차라리 이런 고민보다 좋은 원두를 선택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멋진 요리가 그렇듯 커피도 원두가 맛의 80%를 차지한다고 하니까요. 요즘 판매되는 원두는 대부분 좋은 품질을 가지고 있지만 추천을 한다면 스페셜티입니다. 80점 이상의 평가를 받은 커피로 전체 원두 시장에 상위 20%에 해당하지요.
스페셜티가 원두 시장의 20%를 차지한다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다는 스타벅스 커피의 특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느 매장이나 일관성 있는 맛을 선보여야 하는 프랜차이즈 특성상 많은 매장에 같은 품질로 원두를 공급할 수 있는 단일 커피 산지는 찾기 힘듭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산지의 원두를 섞어야 하고 누가 추출해도 비슷한 맛을 유지하려면 향미가 단순해질 때까지 로스팅을 해야 합니다.
테라로사 커피 대표님이 추천하는 국내 스페셜티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리브레 커피, 프랃츠 커피, 그리고 모모스 커피입니다. 제 경험으로 리브레는 고소하고 진한 맛, 프랃츠는 산뜻한 산미, 모모스는 균형 있는 맛과 향이 인상적이었어요. 브랜드마다 다양한 맛이 있으니 나에게 꼭 맞는 커피를 찾는 것도 커피를 즐기는 즐거운 여정이 되겠지요.
이렇게 선택한 원두는 마시기 좋은 최적의 시기가 있습니다. 원두 안에 향미는 로스팅이 끝난 다음 계속 공기 중으로 사라지니까요. 과도한 가스가 사라지는 4일부터 원두 향은 10일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듭니다. 그래서 로스팅 날짜는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마트의 대형 원두는 대략 1년의 유통기한을 가지고 있는데 그 날짜에서 1년을 빼면 로스팅 한 날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스페셜티라고 최고의 커피는 아닙니다. 스페셜티로 선정되면 해당 지역의 같은 품종의 원두가 모두 스페셜티로 선정 받기 때문에 농부의 기술과 관리 능력은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비영리 기관인 COE가 있습니다. COE는 농장 단위로 출품된 원두를 평가하기 때문에 그해 생산된 최상의 커피라고 알려져 있지요. 물론 가격이 비쌉니다. 전문 카페에서조차 만나기 힘들 정도지요.
그런데 정말 비싼 원두가 좋은 원두일까요? 비싼 와인이라도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느 커피 유튜버의 인상적인 실험이 있습니다. $3, $6, $25 가격의 커피를 무작위로 블라인드 테스팅을 했는데요. 60%가 비싼 커피를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선택하고 싶은 커피로 $3 커피가 50%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비싼 커피는 있어도 나에게 맞는 좋은 커피는 정답이 없는 거죠.
안타깝게도 여기까지 엔지니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입맛에 맞는 좋은 원두를 선택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항상 생산 원가를 고민해야 하는 엔지니어의 입장에서는 가성비 높은 원두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나 맛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달라 정량화할 수 없으므로 최선의 선택은
‘남이 사준 공짜 원두’입니다.
이제 남은 커피 맛에 대해 우리 엔지니어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은 20%뿐입니다. 어떻게 보관할지, 어떻게 커피를 추출할지 고민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