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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Min 민연기 Apr 12. 2022

엔지니어를 위한 커피 공부: 커피 추출하기

Daddy's Toy Workshop

https://brunch.co.kr/@matthewmin/235



커피를 보관에 영향을 주는 인자는 온도, 시간, 분쇄된 커피 크기, 그리고 압력입니다. 원두 기공에 담긴 풍미는 기체 상태입니다. 높은 온도는 기체 분자의 움직임을 빠르게 만들어 보관 기간도 빠르게 줄어들지요. 보관 시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원두가 분쇄되고 나면 공기에 노출된 면적도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에 향미의 손실도 가속됩니다. 에스프레소용으로 분쇄된 커피는 15분 후면 대부분 소실된다고 해요. 그래서 원두는 가급적 분쇄되지 않을 것을 구입해서 추출 직전에 분쇄해야 합니다. 원두커피 포장에는 아로마 밸브가 있습니다. 향미는 남기고 가스는 제거하는 그럴듯한 이름의 밸브입니다. 하지만 구조를 보면 대기압 보다 높은 압력의 내부 가스를 배출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완전히 밀봉된 구조가 원두에서 발생하는 가스의 압력을 억제해서 원두의 향미 손실을 줄이는데 더 유리합니다.



이제 커피 맛을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은 추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추출은 커피 맛에 20%도 관여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사람의 미각과 후각은 이 20%에도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같은 원두인데도 맛에 차이가 크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요. 커피 추출에서 주요 인자는 온도, 수질, 섞임, 커피 가루 크기, 압력, 시간, 필터 그리고 비율입니다.



커피를 추출하기 최적의 물 온도는 90에서 96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측정은 커피 전용 온도계를 사용하면 됩니다. 아날로그 방식은 반응이 느려 디지털 온도계를 추천해요. 물론 상온보다 낮은 온도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콜드 브루 커피도 고온에서 추출한 커피와 다른 풍미가 있습니다. 펠티어 소자(전기가 흐르면 열을 이동시키는 펠티어 효과를 이용한 부품)를 이용한 더치커피 머신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발열이 충분하지 않아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https://brunch.co.kr/@matthewmin/194



커피에 물맛이 중요한 건 당연합니다 커피도 대부분 물이니까요.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A)는 가장 이상적인 물의 기준을 제시하는데 pH는 중성이 이상적이지만 알칼리성보다는 산성을 추천합니다. 커피 향미가 대부분 음전하를 띄고 있습니다. 알칼리 수의 수산화기가 커피 향미를 중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수 시스템에 사용되는 카본 필터가 물을 알칼리성으로 바꾸는 경향이 있어 정수기 물이 커피에 좋은 물이라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 시스템은 미네랄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차라리 중성의 미네랄워터가 커피에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물에 포함된 미량의 미네랄도 커피 추출에는 중요합니다. 미네랄워터의 Mg은 카페인 추출을 가속시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커피의 향미가 물에 녹는 과정은 퍼콜레이션으로 설명됩니다. 커피 세포 안에 향미가 세포 외부로 분산되고 이렇게 분산된 향미는 흐르는 물에 용해되어 이동합니다. 커피 추출에서 이 두 과정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물이 연속적으로 흐르는 핸드 드립 커피와 원두를 물에 잠기게 하는 푸어 오버 방식 중 추출 수율은 핸드 드립이 더 높습니다. 푸어 오버는 용해된 커피가 흐르는 속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추출 속도는 분쇄된 커피 세포 내에 분산만 충분하다면 빠른 편이 좋습니다. 자동 커피 메이커의 필터도 추출전에 미리 물에 적시는 것이 좋은 이유입니다.



같은 이유로 물과 접하는 커피 입자의 표면적 역시 중요합니다. 가늘게 분쇄된 커피일수록 면적의 총합은 더 넓어지기 때문에 커피 분쇄도는 커피 맛에 큰 영향을 주지요. 커피 그라인더는 크게 블레이드, 코니컬, 플랫이 많이 사용됩니다. 블레이드는 날카로운 날이 원두를 쪼개는 구조로 기계를 흔들거나 동작 시간으로 분쇄 크기를 조절합니다. 코니컬은 중력에 의해 떨어진 원두가 점차 좁아지니는 칼날을 지나면서 분쇄되는데 이 간격을 조절해 분쇄 크기를 정할 수 있습니다. 플랫은 가운데 들어간 원두가 원심력에 의해 밖으로 이동하면서 분쇄되는 구조입니다. 원심력을 발생할 만큼 고속 회전해야 하기 때문에 대량의 원두를 분쇄하기에 유리하지요.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식당의 전 주인이 훔쳐 가려던 커피 그라인더가 바로 플랫 타입입니다. 분명히 비싼 그라인더일 거예요.



분쇄된 원두의 크기는 레이저 분광기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라인더의 분쇄도 설정에 따라 분쇄된 원두의 크기 분포를 살펴볼 수 있지요. 그래프를 보면 설정된 분쇄 크기에 대해 종 모양의 표준편차 분포를 가지지만 더 가는 크기에 미분이 별도로 도드라져 분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두의 분쇄는 잘리는 커팅과 부서지는 크러싱으로 나누어집니다. 크러싱의 경우 프랙털의 형태로 미분이 점차 가늘게 발생합니다. 크기를 제어하기 힘들지요. 측정이 안되는 미분 크기 분포까지 감안하면 크러싱으로 발생한 미분은 제어할 수 없습니다. 이런 미분은 목표한 커피 맛에 편차를 일으키기 때문에 지향해야 하지만 추출에 압력이 필요한 에스프레소에는 반대로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크러싱은 원두의 취성이 높을수록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중배전으로 로스팅 원두에서 미분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퍼콜레이션에서 분산은 압력과 비례합니다. 커피를 꽉 짜내면 더 진하겠구나 추측할 수 있어요. 그래서 대기압보다 9배나 높은 9 bar의 압력으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는 중력의 힘으로만 추출하는 핸드 드립 커피 보다 짧은 시간에 더 효율적으로 원두의 향미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원두의 향미는 추출하는 시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추출량을 확인하기 위해 커피 저울에는 타이머 기능이 함께 있지요. 일반적으로 추출 시간의 길이에 따라 쓴맛, 신맛, 단맛 순서로 추출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추출 시간이 긴 콜드 브루의 경우 같은 원두인데도 단맛이 훨씬 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원두를 얼마나 로스팅 했느냐에 따라 다른 경향을 보이는듯해요. 콜드 브루의 경우 우리는 분쇄된 커피에 찬물을 아주 천천히 떨어트리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미국은 필터에 담긴 원두를 찬물에 넣고 우리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두 방법 모두 비슷한 맛이 납니다. 미국에서 진공을 이용한 콜드 브루 추출 법을 연구하기도 했고 최근 국내 기업에서 콜드 브루의 시간의 단축하기 위해 진동을 더하는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필터도 커피 맛에 영향을 줍니다. 필터는 크게 금속으로 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핸드 드립 커피에 사용하는 종이 필터는 커피의 기름기를 흡수해서 커피의 맛을 좀 더 가볍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분이 많이 포함된 커피를 보통 보디감이 높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그보다는 가벼운 맛이 특징인 필터 커피가 분쇄된 커피의 미분을 더 효율적으로 거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커피 맛에 영향을 주는 마지막 인자는 비율입니다. 에스프레소는 원두와 물의 비율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합니다. 핸드 드립 커피 역시 물과 원두의 비율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요즘은 저울을 두고 추출된 커피의 무게를 측정하면서 물을 더합니다. 그래서 커피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꼭 사야 할 아이템으로 정밀한 저울을 추천하기도 해요.



커피 추출에 영향을 주는 8가지 인자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각 인자가 커피에 영향을 미치는 최적의 함수와 인자 간의 영향을 분석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DOE(실험계획법)는 다양한 인자가 시스템에 영향을 줄 때 효율적으로 시험을 설계하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DOE에 따라 우리의 고민을 단순하게 정의하면 원두를 넣으면 맛있는 커피가 나오는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인자를 제어하기만 하면 되지요. 이 제어를 통해 시스템의 특징을 수식으로 만들면 됩니다. 이제 어떤 시스템으로 커피를 추출할지 정하기 위해 각각의 인자를 제어하기 좋은 추출 방법을 선택할 차례입니다.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은 그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이브릭은 원두를 끓는 물에 우리는 오래된 방법입니다. 커피 가루를 따로 필터링하지 않기 때문에 텁텁하지만 그만큼 진한 커피를 맛볼 수 있습니다. 물에 바로 커피를 녹이는 건 프렌치 프레스도 비슷하지만 필터를 눌러 커피 가루를 아래 붙잡아 두는 점이 다르지요. 찬물에 추출하는 콜드 브루는 낮은 온도로 커피의 향미가 물에 녹는 효가가 떨어지지만 긴 시간으로 그 점을 보강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커피보다 향미의 수율이 더 높다고 평가하기도 해요. 독특한 구조의 사이펀은 커피 가루를 위쪽 글라스에, 물은 아래쪽 글라스에 넣고 가열합니다. 아래쪽 글라스에 가열된 수증기가 물을 누르고 그렇게 올라간 물이 위에 커피와 섞입니다. 불을 끄면 수증기가 수축되면서 커피를 추출하게 됩니다. 사이펀은 독특한 추출 법이지만 오래된 추출 법이기도 해요.



핸드 드립은 분쇄된 커피 위로 뜨거운 물을 부어 중력으로 내려 추출하는 가장 인기 있는 방법입니다. 핸드 드립 커피만 전문적으로 연구한 논문도 수없이 많이 있지요. 모카포트는 끓어오른 고온 고압의 물이 에스프레소처럼 가늘게 분쇄된 커피를 거쳐 진하게 추출하는 방법입니다. 높은 압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커피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에스프레소는 고온 고압의 물로 가늘게 분쇄한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입니다. 이름처럼 추출 시간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원리는 모두 동일합니다. 로스팅 한 커피에 향미를 물로 녹이는 거죠. 다만 앞서 살펴본 인자를 제어하는데 유리한 추출방법이 있지요. 낮은 온도에서 추출하려면 콜드 브루 외에 다른 방법은 그리 효율적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에스프레소가 다양한 인자를 다루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핸드 드립도 다양한 인자를 조절하기 좋은 추출 방법이지만 이미 지름신이 내려 급하게 결제를 마친 다음이니 아내에게 등짝을 맞기로 했습니다.



이제 DOE는 에스프레소 추출 법을 시스템으로 접근하면 됩니다. 물론 제어 인자 외에 제어할 수 없는 인자도 있지만 이것은 시스템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시험을 반복하면서 찾기로 했습니다. 이제 각 인자를 변수로 실험을 반복하면서 상관관계를 찾으면 됩니다. 그렇게 최고의 커피를 위한 함수를 도출하는 일만 남은 거죠.



준비된 시험 세트입니다. 각각의 인자를 제어할 수 있는 도구들입니다. 아쉽게도 온도는 제 저렴한 에스프레소 머신 특성상 제어가 불가능합니다. 온도는 고정하고 다른 인자를 먼저 살핀 후 에스프레소 머신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이었어요. 이미 한번 질렀으니 다음 지름은 좀 쉽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요.



일단 제어가 불가능한 노이즈 파라미터를 최소화하기 위해 추출 절차를 표준화해야 했습니다. 동일한 양을 입력했을 때 항상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아주 사소한 인자들 예를 들어 원두를 포타 필터에 넣고 실수로 충격을 주거나 그라인더 날의 온도가 첫 잔과 둘째 잔에 영향을 준다거나 하는 문제와 싸우느라 거의 1년을 소모했습니다. 게다가 커피 맛을 판단하는 저도 기준이 일정하지 않아 과음이라도 한 날 다음 아침에는 영 커피 맛을 모르겠고요. 결정적으로 변수가 8개나 되는 시스템은 아무리 잘 설계해도 시험 횟수가 어마어마 한데 이 횟수를 계속해서 시험했다가는 카페인 중독이라도 걸릴 듯합니다.



결정적으로 동일한 입력에 동일한 맛을 만드는 것만도 쉽지 않다 보니 제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지고 말았지요. 이렇게 현타를 겪다가 지난번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한 재미있는 실험을 발견했습니다. 저 같은 초보자에게 $30,000 짜리 에스프레소 머신을, 그리고 전문 바리스타에게 $400짜리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주고 어느 쪽 커피가 더 좋은지 시합을 합니다. 예상하셨겠지만 도구를 탓하지 않는 프로가 더 맛있는 커피를 추출했습니다. 좋은 커피는 인자를 다루는 경험과 솜씨에 달려 있었던 거지요.



다시 표준 에스프레소 추출에 전념하다가가 더 멋진 에스프레소 머신을 봤습니다. 지금까지 다뤘던 인자들을 디지털로 제어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 무선으로 연결된 저울이 추출된 양을 정밀하게 측정해서 추출량을 제어합니다. 이 제품만 있으면 제 완벽한 커피를 위한 추출 함수 연구 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겠지요. 물론 저는 캡슐 커피 머신도 사용합니다. 직접 내려 마시는 에스프레소보다는 못하지만 캡슐 커피 머신도 원두의 양만 다를 뿐 에스프레소 머신과 동일한 추출 방법을 사용합니다. 전문가가 이미 검토하고 설정한 추출 인자를 가장 손쉽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그래서 최고의 커피를 위한 방법론만 한참 고민했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험을 시작하려고 해요. 물론 어떤 결론을 얻더라도 커피의 맛은 절대로 게이지 R&R (누가 언제 측정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지 보증하는 방법)을 만족하지 못할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감각도 사그라질 테니까요. 그리고 이미 커피의 맛은 이미 원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너무 당연해서 식상한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커피'입니다. 그러나 엔지니어는 언제나 생산 원가를 포함한 생산 효율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 점이 유일하게 정량화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최고의 커피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준 공짜 커피입니다.





긴 저의 경험은 아래 영상으로도 정리했습니다.

https://youtu.be/S3TSEHayK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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