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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Min 민연기 Sep 13. 2022

커피가루로 필터 만들기

MAtt's Toy Workshop

세상을 지배하는 수많은 법칙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지간하면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있다는 만유인력의 법칙, 방은 아무리 청소해도 어질러진다는 엔트로피의 법칙, 그리고 무슨 짓을 해도 원래 무게는 변하지 않는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있지요.


커피를 즐겨마시기 시작한 이후로 이 에너지 보전의 법칙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습니다.


https://brunch.co.kr/@matthewmin/236


저는 에스프레소 한 잔에 원두 15g을 사용하거든요. 여기 들어간 물과 커피 콩에서 추출한 향미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제 복부지방을 구성하겠지요. 커피에는 칼로리가 별로 없다고 하지만 숨만 쉬어도 체중이 불어나는 요즘이라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에요. 그래도 추출하고 남은 커피 찌꺼기는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두와 물이 나의 복부 지방과 커피 찌꺼기 변화하는 과정에 커피가 가진 에너지 총량은 변화가 없어야 하는 거죠. 원치 않게 나의 일부가 된 커피는 그렇다고 해도 남은 커피 찌꺼기는 무의미하게 남았습니다. 어디에 쓸지 또다시 고민이 생겼습니다.


https://brunch.co.kr/@matthewmin/233


벌써 장난감 만드는데 한번 쓰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장난감만 만들 리도 없고 뭔가 다른 용도가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한참 전에 만든 '시리어스 바비큐 벤트 머신 마크-원', 줄여서 '시바'가 생각났습니다.


https://brunch.co.kr/@matthewmin/216


'시바'는 기름 필터를 가진 환풍기입니다. 유증기는 간단하게 필터가 되지만 나머지는 팬 뒤로 그냥 날려버리는 구조입니다. 창문을 열고 고기를 굽는다면 유용하지만 밖으로 빼지 못하는 겨울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건물 밖으로 바람을 보낼 수 없는 구조는 흡입한 공기를 다시 실내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여기에 다양한 필터가 사용되지만 성긴 스펀지 구조에 카본을 입힌 필터를 많이 사용하지요. 카본 내부에 기공에 냄새 분자가 흡착됩니다. 고성능의 공기청정기부터 간단한 환풍기까지 대부분 비슷한 구조와 원리를 사용합니다.



이때 카본은 보통 코코넛 껍질을 태워 만듭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코코넛 숱이 냄새를 흡착하는 카본이 됩니다. 커피도 커피콩을 구워 만든 다음 안에 향미를 추출하면 남은 기공으로 냄새를 흡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냉장고 냄새 제거에 커피가루를 사용하기도 하니까 억지는 아닌 거 같아요.



그래서 지난번 만든 '시바'를 꺼내 이렇게 벨크로 테이프를 붙였습니다.



마침 아내가 주방 후드 부직포 필터를 사고는 조금 남은 부분은 '옜다! 너 써라'하고 주셨거든요. 벨크로 테이프도 그 부직포 필터 세트에 들어있었고요.



주방 후드는 공기를 빨아드리는 양이 중요해서 이렇게 막아도 '시바'는 잘 돌아갑니다. 물론 막히는 만큼 성능은 떨어지겠지요.



이제 카본 필터를 만들 탄소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커피를 또 마셔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부직포에 달라붙을지 감이 오지 않아 두 잔 마셨어요.



잔뜩 모아두면 말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잘못하면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으니 전자레인지에 살짝 가열합니다.



이렇게 준비한 커피 카본을 부직포에 펴 바르고



손으로 문지릅니다. 그럼 부직포 사이에 커피 카본이 들어가겠지요.



박박 문지르다 보면 손바닥이 흙장난한 어린아이같이 되지만 에너지 보존법칙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입니다.



이제 얼마나 냄새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지 고기를 굽기만 하면 끝입니다.


https://youtu.be/6VnhdyqI2Xw


물론 여기에 커피를 분쇄하기 위한 물리 에너지와 커피를 물을 데우고 추출 압력을 만들기 위한 열량, 그냥 내버려 둬도 잘 말랐을지 모를 커피 가루를 빨리 말리기 위해 동원된 전자레인지 에너지까지, 원래 커피가 가진 열량에 더 많은 열량이 소모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손실은...


이 커피 가루 탈취 필터는 성능이 형편없어요. 원래 있던 주방 후드가 '시바'에 갈 바람을 거의 흡수해서 필터가 잘 동작하는지 미심쩍은데 고기를 다 먹고 난 후에도 집안은 온통 고기 굽는 냄새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이제 커피가 가진 열량과 커피를 추출하기 위한 에너지, 커피 가루를 말린 전자레인지 전력에 고기 그리고 고기를 구웠던 레인지의 가스 열량과 '시바'의 구동 전력은 열과 바람과 소리로 사라지고 그리고 남은 에너지는 나의 복부에 보존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정상적인 탈취 필터 원단을 잔뜩 주문하게 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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