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s Toy Workshop
세상 모든 사람은 크게 2가지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뭐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굳이 찾아 먹지는 않으니 그런 분은 고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MBTI 보다 더 확실하게 구분됩니다.
저는 고수를 좋아하는 부류이기 때문에 고수 모종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어서 자라렴 물도 주고, 아침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 주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란듯하면 잘라먹고, 키가 조금 자라면 또 잘라먹고 그러다 고수는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잘라먹어 사라진 고수들에 대한 추억을 남겨야겠습니다.
고수와 쌀국수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콤비네이션입니다. 이 조합을 별점 5로 기준을 삼은 개인적인 평가를 기록합니다. 쌀국수처럼 국물과 고수가 서로의 맛을 더하면 5점, 서로의 맛과 향이 서로를 해치면 0점입니다. 가능한 객관적인 주관 평가입니다.
고수와 맥주 : ★★★★☆
초기 맥주는 홉 대신 생산 지역의 향신료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집트를 비롯해 초기에는 고수로 향을 내기도 했죠. 지금도 고수 맥주가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구할 길이 없어 맥주 안주로 고수를 먹었습니다. 맥주의 풍미와 고수의 향이 서로가 서로를 부릅니다.
고수와 삼겹살 : ★★★☆☆
고기 국물이 고수와 잘 어울렸으니 당연히 삼겹살과도 어울릴 거라 기대했지만 그 기대가 너무 컸나 봅니다. 고수는 고수 맛, 삼겹살은 삼겹살 맛입니다. 삼겹살에 쌈장은 지방의 고소한 풍미를 높이지만 쌈장과 고수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쌈 채소에 살짝 더하면 다른 식물과 함께 풍미가 살아났을까 이제 와서 후회해 보기도 합니다. 고수와 깻잎의 대결을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고수와 삼겹살 그리고 와사비 : ★★☆☆☆
쌈장에 질 수 없어 와사비에 도전합니다. 기름이 많은 고기는 와사비의 매운맛이 잘 어울리죠. 그게 고수와 그리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까울 뿐입니다.
고수와 비빔면 : ★★☆☆☆
고수는 원래 면 요리와 함께 먹어야 하는 법, 그러나 고수와 어울리는 새로운 조합을 찾는 여정에서 되려 가까운 면 요리는 평가에 대상에서 멀어져 버린 듯합니다. 비빔면입니다. 마치 쑥갓을 올린 듯 익숙한 장식입니다. 고추장의 쏘는 맛이 이게 고수인지 그냥 섬유소인지 구별하기 힘든 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매운맛 끝의 고수 특유의 향이 아시아 향신료의 자존심을 지킵니다.
고수와 소고기 : ★★★☆☆
본래 소고기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소고기입니다. 그건 비싸서 그런 것일 테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수와 함께 먹어볼만합니다. 그러나 쌈 채소와 함께 먹은 삼겹살을 기억하게 합니다. 고수와 소고기의 조화는 고수와 삼겹살과 비슷하지만 삼겹살과 소고기를 비교하면 소고기가..... 소고기 승!!!
고수와 소시지 : ★★★★☆
향이 강한 고기라면 이미 다양한 향신료로 맛을 낸 소시지를 지나치면 안 됩니다. 당연히 고수와도 잘 어울립니다. 고수의 향신료가 소시지의 향기를 돋우고 어딘지 아쉬운 섬유질을 보강합니다. 여기에 시원한 맥주를 더하면 고수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게 됩니다. 다만 소시지에 겨자나 머스터드소스 같은 건 고수의 깊은 향에 상처만 입힙니다. 이렇게 우리는 초딩 입맛에서 어른 입맛으로 성장합니다.
고수와 삶은 달걀, 거기에 비장의 칼레스 : ★☆☆☆☆
고수에 이것저것을 먹기 시작했을 때 하나둘 곁을 떠난 가족이 여기까지 왔을 때는 모두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방이 고작 6g 정도밖에 없는 달걀과 고수의 조합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고수와 비장의 명란 마요 소스 칼레스와 어울리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고수 향은 온데간데없고 명란젓의 짠 여운만 남습니다.
칼레스가 뭔지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 보세요.
https://brunch.co.kr/@matthewmin/180
고수와 꽃게랑 : ★★☆☆☆
그렇게 먹으면 왜 안되는데!!! 이게 고수 맛 나는 꽃게랑이다!!! 와하하하
https://brunch.co.kr/@matthewmin/274
고수와 하몽 : ★★★★☆
와인과 함께 먹으면 좋은 하몽은 고수하고도 잘 어울립니다. 하몽의 강한 향과 맛은 와인과 잘 어울리지만 그 사이 간극을 고수가 채워줍니다. 이 조합은 또 다른 강점이 있는데 고수 향에 하몽을 노리는 다른 사람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반대 효과를 보일 수 있지만 그때는 칼레스를 하몽에 짜주면 효과가 있습니다.
고수와 라면 : ★★☆☆☆
국물 요리라면 실패하지 않을 거란 기대를 저버린 슬픈 조합입니다. 라면 국물의 깊이를 고수가 더할 거라 기대했지만 라면의 깊이에 고수는 풀데기에게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 힘을 쓰지 못한 고수의 아쉬움 너머, 빨간 국물 라면이 아닌 사리곰탕면이나 나가사키 짬뽕 같은 하얀 국물 면은 어떨까 하는 희망을 봅니다.
고수와 양념치킨 : ★★★☆☆
현대의 치킨은 짧은 생장 시간 때문에 닭의 깊은 풍미를 잃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튀기거나 양념을 더한 치킨이야말로 하얀 캔버스 같은 식재료입니다. 이미 양념의 강한 풍미와 고수는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아빠! 이제 그만해!!! 아니야 이거 정말 맛있어.
고수와 포크 베이크 : ★★☆☆☆
맥주는 마시는 빵이라고 합니다. 중세 맥주 중에는 빵을 잘게 찢어 끓여 만든 사례도 있을 정도니까요. 당연히 맥주와 고수가 어울리면 빵과도 어울려야 합니다.
안 어울립니다. 그냥 빵이 아니라 고기빵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빵과 고기 사이를 고수가 끼어든, 그래서 마치 삼각관계의 난처함을 입안에서 목격하는 기분입니다.
이렇게 맥주와 고수를 함께 먹어보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에서 세상 모든 음식을 고수와 먹어보겠다는 야망은 고수가 꽃을 피우고 그 푸른 잎을 모두 잃어버리면서 끝났습니다. 고수 씨앗이 잎보다 더 강한 향을 가지고 있다기에 씨앗을 뿌려 먹어야지 기대하며 퇴근했는데...
누가 다 뽑아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