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끝에 긴 밤

그림자가 만든 밤, 너무 오래 잠기지 않았으면

by maudie

우리는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때에 따라 그림자가 길어지기도 했다가, 다시 짧아지기도 한다. 쨍하게 해가 머리 위에서 바로 내리쬘 때에는 기분이 좋아 그림자가 발밑에 아주 조그맣게 되다 못해 거의 사라졌다가, 해가 지쳐 조금씩 아래로 쳐지다 이내 흘러내리면 해를 따라 그림자가 늘어졌다가, 나를 아주 덮어버리기도 한다. 긴 그림자가 다시 짧아졌다가 길어지는 그동안의 시간은 그나마 견딜만하다. 어쨌든 해가 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림자가 아주 나를 덮어버리는 긴 밤이 오면, 한동안은 그림자에 덮여, 그림자 바깥으로 고개를 내미는 일조차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허우적 대느라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그림자에 잠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지쳐 흘러내렸던 해가 다시 고개를 내밀면 해를 따라 다시 그림자가 짧아진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는 가끔 그림자를 착각하기도 한다. 아주 조금 그림자가 길어진 것을 보고서, 긴 밤이라 착각을 하기도 한다. 착각을 하는 동안 정말로 긴 밤이 찾아오면, 그다음에 다시 그림자가 생길 때마다 잔뜩 움츠러든다. 해가 조금 더 오래 머물러도 괜히 눈치만 보게 된다. 다시 금세 긴 밤이 오지 않을까란 생각에 그림자가 짧아져도 짧아졌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착각이 만든 긴 밤에 갇혀 해가 뜬 줄 모르고 시간을 보내면 그다음 오는 긴 밤을 견디고 나서야 해가 지나갔었구나 생각한다. 참 아리다. 착각이 만든 긴 밤의 그림자가 머무는 동안은, 그림자에 잠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주 여린 존재가 된다는 것이 참 아리다. 그래도 그 시간을 견디고 나면, 해는 조금 더 오래 머물고, 그림자는 조금 더 짧아질 테니까 괜찮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 동의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보니 어쩌면 시간이 약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우리, 그림자를 밤으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긴 밤이 와도 다시 해는 뜨고 그림자는 언제고 다시 짧아질 테니 너무 오래 잠기지 않았으면 한다.


밤이 가고 다시 우리의 해는 뜰 테니까. 시간이 조금 필요한 그뿐이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사랑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