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사람도. 사라질 오늘도.
어릴 때에는 분명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분명했다.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다. 선명히 그림을 그리곤 했다. 언제쯤 무엇을 하고, 언제쯤 무엇을 할 것이라 분명히 계획했고, 그것을 위해 관련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이용해 발판을 마련하려 애썼다. 배우려고 애썼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듣는 것. 어떤 것도 쉽게 흘려듣거나 스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꿈은 꿈이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도저히 벗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떤 것들 해도 부딪혀 부서지기만 했다. 꿈은 A를 꾸고, 내가 하는 건 B로 자꾸 가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그 길에 들어설 수 없었다. 이게 사회생활인가 싶을 정도로 달랐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서 일이 재미가 없어졌다. 거짓말처럼 다 사라졌다.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조차도 구분할 줄 모르는 나로 살았다. 그렇게 꿈과 멀어져만 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는 사랑을 했다. 어떤 것을, 어떤 사람을, 어떤 시간을 사랑하던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늘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랑만큼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던 것들은 언제고 멀어지고 사라지게 마련이니, 내 곁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그리고 믿었다.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하고 나면 후회가 덜 할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역시 그런 것들은 쉽지 않았다. 최선을 다 해서 사랑을 하고 나서도, 조금 더 사랑할 것을 하는 후회로 물드는 줄 알았더라면 조금은 남겨두고 사랑할 것을.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어떤 것을 사랑하더라도 같은 후회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평생을 살았는데, 이젠 나 자신의 눈치도 좀 봐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밤이 또 온다. 하늘은 까맣게 물들고, 어둠은 또 나를 삼키려 든다. 해가 있는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조그맣던 그림자는 나를 다 삼킨다. 그렇게 또 밤은 온다. 시간은 흐른다. 꿈에서 멀어지고, 사랑에서 멀어져도 밤은 오고, 다시 해는 뜬다. 아침이 되면 그럴 걸로 시작하고 밤이 되면 그래도 그럴 걸로 마무리하겠지. 매일을 그렇게 살았고,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지. 그렇다고 최선을 다해 살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너무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운 것도 분명히 존재하니까. 요즘은 딱 그런 생각에 멈춘다. 어쩌면 다행이 아닐까.
꿈을 꿨고, 사랑을 했다. 내가 꿈꾸고 사랑한 것들이 모두 멀어지고, 사라졌다. 남아있는 것들이 나를 얼마나 행복한 사람으로 느끼게 해 줄지 모르겠단 말도 안 되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을 차츰 벗어나는 중이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꿈을 꿨으니 이제 다른 꿈과 사랑을 찾아야 한다. 언제고 그럴걸과 그래도 그럴걸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꿈도 사랑도 없는 흑백의 세상을 그리고 앉아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다쳤던 몸도 마음도 괜찮아질 때쯤 새로 나는 사랑하는 것들이, 꿈꾸는 것들이 생겼다. 그 사랑하는 것들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중에도 밤은 오고 어둠은 나를 또다시 삼키려 들겠지. 하지만, 분명한 것에 대해 알아버렸다. 밤이 오고, 어둠이 오지만 그 뒤에 반드시 다시 해는 뜬다는 것. 내가 그럴 껄에 멈춰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같은 자리에 후회하고 앉았다 얼른 털고 새로운 꿈을 꾼다는 것. 그렇게 멈추지 않은 자신의 세상을 그린다는 것.
나는 사랑을 한다. 다시 꿈을 꾼다. 그게 사람이었던, 시간이었던. 심지어 그 어떤 것이었던. 그것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다시 움직이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어떤 것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을 사랑한다. 멈췄던 나를 움직이게 하는 오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