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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Nov 19. 2020

프리지아

잊을 수 없는 추운 겨울의 프리지아.

나는 꽃을 참 좋아한다. 많은 꽃들 중에서도 유독 프리지아를 정말 좋아한다. 노오랗게 숨 막히는 그 예쁨도, 다른 꽃과는 다른 아주 독보적인 향으로 '안녕? 나는 프리지아야.' 얘기하는 듯한 꽃.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는 그 꽃을 나는 좋아한다. 무채색의 추운 겨울, 조금 이른 계절에 만나면 더 반짝이는 꽃, 프리지아. 향이 강해 추위에 언 코로도 향을 느낄 수 있는 꽃.


이 꽃을 사랑하게 된 또 다른 이유. 스물아홉, 아니 스물여덟의 끄트머리서 시작된 연애. 내 20대의 마지막을 가득 채운 사람. 사실 돌아보면 그 많은 좋은 기억들을 한방에 다 내쳐버릴 만큼 나쁜 기억으로 끝이나 버린 사람이지만, 좋았던 부분을 모두 부정하기엔 내가 너무 안타까우니까.


스물여덟의 겨울 친구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러 간 동대문에서 처음 만난 그 사람. 키는 멀대같이 큰데 앙상한 마른 몸매에 소매가 짤따란 파란 코트를 입고 나타났다. 코트 입은 남자가 좋다는 내 말에 오래돼 작아진 코트를 입고, 연회색 백팩에 감색 스니커즈를 신고 나타난 사람. 숫기 없는 얼굴로, 날보고 수줍게 웃더니 춥다고 꼭 안아주던 너. 소개로 알게 되고 한 달이 넘게 연락하다 만났지만,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던지. 그렇게 처음 날 만나러 오면서 친구와 몇 시간을 고르고 골랐다며, 내 맘에 꼭 들었음 한다며 내민 디퓨저. 우린 그렇게 손을 잡았고, 함께 나란히 걷기로 했다.


장거리 연애여서 종종 기차를 타고 나를 만나러 오던 그 사람은, 기차를 놓쳤다는 새하얀 거짓말로 일찍 오겠다더니, 퇴근 때쯤 도착할 것 같다고 했고, 서운해하고 있던 나를 달래며 그 추운 겨울 두어 시간을 뛰어다니며 찾았다는 프리지아. 친누나가 ' 여자가 꽃 한 송이 받고 싶다고 하면, 세상 가장 풍성하고 비싸게 ,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예쁘고 고급지게 포장해서 선물하라' 고 했다며, 내게 건넨 근사한 프리지아 한 다발. 빨개진 얼굴과 얼어버린 손. 그 손에 들려있던 종이백 속의 프리지아는 내생에 잊지 못할 가장 예쁜 꽃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에게 받은 프리지아가 프리지아 꽃 중에서도 가장 예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날 이후로 프리지아를 보면 유독 더 생각나는 사람. 그 사람을 만나는 내내 꼭 무슨 날이 아니어도, 한 번씩 꽃다발을 안겨주곤 했다. 가지고 다니기 힘든 손이 시린 계절에는 꽃을 선물하고 내내 본인의 손이 어는 것도 모른 채 들어주더라도 꼭 선물해줬다.


꽃이라는 게 사실 다발로 꼭 커야만 좋은 것은 아니다. 많이 들어봤겠지만, 꽃을 사랑하는 것도 있지만, 그 꽃을 꽃집을 가서 나를 생각하며 고르고, 나를 생각하며 예쁘게 포장해서, 부러운 눈의 사람들을 지나 내게 안겨주는 것. 꽃 자체보다, 그 꽃을 내게 선물하려는 그 마음. 그게 받고 싶은 거니까. 한송이를 받더라도 내가 사달라고 해서가 아니라, 나를 만나러 오는 길에 내 생각이 나서.


꽃을 선물 받고 싶다. 나를 만나러 오는 길에 내 생각이 나서 선물한다는 그 예쁜 마음을 선물 받고 싶다. 다시 또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선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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