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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Jan 24. 2023

잔상

 나는 밤마다 당신을 베고 누워 눈을 감습니다. 감은 눈에 눈물을 겨우 가두고, 결국 그리움으로 잔뜩 밝은 밤을 보냅니다.


밤을 숨겨 베개 아래 두고, 나는 멀리 달아나는 상상을 합니다. 가끔은 상상에 그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아납니다. 달아날 채비도 하지 못하는 날은 온전히 밤과 함께 당신을 맞습니다. 온 밤을 헤집는 당신은 참 집요하게도 나를 찾아옵니다. 모르는 척을 할래야 할 수 없고, 당신과 밤이 차마 찾아올 수 없는 대낮이 되어서야 깜박 조는 것으로 아쉬운 잠을 채웁니다. 당신으로부터 오는 까만 밤 밝은 달빛은 꺼질 줄을 모릅니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아니 내일도. 밤이 당신을 안고 올 테지만 나는 그것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밤을 베개 아래 숨겨 두고 최대한 멀리 달아납니다. 그러지 못하고 다시 돌아올 것이 분명하지만, 오늘도 잊지 않고 당연히 실패하고야 말 시도는 해 봅니다. 사실, 매번 다시 돌아오는 당신이 조금 두렵습니다. 어차피 밤과 함께 나를 찾아오는 당신은 그저 내게 남은 잔상일 뿐이니까요. 그것을 물론, 슬프게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지워지지 않고, 아주 오래 묵은, 당신이 아닌 당신. 가끔은 그것만으로도 나를 살게 해, 고마운 마음이 들다가도 이내 모든 설움이 쏟아지는 밤입니다. 긴 밤이 지나면 그것마저도 떠나고 없겠지요. 분명, 바래왔던 일이지만은 서운함은 감출 길이 없겠지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도망해 보렵니다. 언젠간 도망하지 않아도 찾아오지 않을 당신이 아닌 당신을 바라면서.


여전히 잔상마저 사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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