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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Jan 26. 2023

오늘을 사는 것 같았다.

늦은 밤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직업 특성상 퇴근 시간이 늦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퇴근을 하면 항상 집에 가기 바빴다. 집 바깥으로 나오는 것부터 이미 에너지 소모에 포함이 되는 나로서는 그 외의 선택은 없었다. 오래 아프면서 바뀐 루틴이다. 조금만 피곤해져도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미리 잡는 약속 같은 건 당연한 사치였다. 오래된 친구가 서운해할 만큼 지독하게도 피했다. 누군가로 인해 평소보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쓰게 되면 그날 잠은 다 잔셈이었으니까. 피곤해질수록 잠은 더 못 자고, 바깥은 그저 에너지가 닳기만 하고 충전되지 않으니까. 그래서 항상 퇴근을 하면 바삐 집에 가기 바빴다. 택시비 아까운 것보다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가 더 급했으니 열심히도 택시비를 썼다. 퇴근하고 누군가를 만나 술 한잔 기울인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잊고 살았다. 누가 만나자고 할까 봐 그렇게 싫어하는 거짓말을 할 정도로.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퇴근하고 함께 일을 하는 언니들과 술 한잔을 기울였다. 정말 딱 컨디션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고 별것도 아닌 일에 깔깔거리고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은 술자리였다. 피곤하고 도망가고 싶었던 자리가 아니었다. 닳은 에너지가 오히려 조금은 채워진 듯한 자리. 함께 한 언니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겐 그랬다.


짧지만 길지 않았던 그 자리를 파하고 역대급 한파로 인한 무서운 추위에 급하게 택시를 타고 그 동네를 벗어났다. 이상하게 오늘은 집까지 오는 길이 술자리보다 재미없고 길게 느껴졌던 것 같다.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을 요즘 하나씩 다시금 떠올리고 보고 느끼고 있다. 이제야 조금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제야 남들처럼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사는 것 같다. 괜히 기뻐 울컥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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