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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을일기

쪽파 다듬기

행복한 가정은 미리 누리는 천국

by 도을 임해성

<도을단상> 쪽파 다듬기

1시 반까지 밭으로 오너라


새벽까지 이어진 통음에 이제는 휴일로 굳어진 금요일 아침을 침대에서 날리고 있는데 아버지의 호출.


얼큰한 청국장으로 급하게 해장을 하고 밭으로 달려갑니다.

5시 반까지 꼬박 4시간을 허리 한 번 안 펴고 쪽파를 다듬었습니다.


천 곡의 노래가 들어있다는 아버지의 녹음기에서는 연신 구수한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봄볕 햇살이 제법 매운 손길로 등을 따갑게 내리쬐는 가운데 4식구가 파라솔 아래 옹송거리고 앉아 두런두런 도란도란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참으로 평안한 봄날 오후를 보냈습니다.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지만 우리 집은 엄마의 뇌출혈 이전과 이후로 모두의 삶의 양태가 완전히 바뀌었지요.

온 가족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엄마는 거의 후유증없이 회복중이고, 그 덕에 남은 식구들도 깊은 가족애를 맛보며 사는 요즘입니다.


아무리 즐거워도 오늘은 가고,

아무리 행복해도 내일은 오는 것.

그래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압니다.


먹먹해진 허리를 의자에 앉히고, 광명에서 유일하게 찬 밥을 말아 토렴을 해 내는 광명국밥에서 국밥에 소주 한 잔...캬~~

저는 어제 과음한 탓에 소주는 눈과 귀로만 마셨습니다. ㅎ


한 아름 안고 온 쪽파와 대파의 매운향이 차 안에도 가득, 엘리베이터 안에도 가득하다가 이제는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제 눈물 머금은 대파와 쪽파를 먹으며 이 아름다운 봄 날이 가겠지요..


부모님들도 이젠 힘이 드시는지 내년에는 쪽파를 안 심는다 하시니 이 봄에 맛보는 쪽파에서 엄마냄새 아빠냄새가 나는 것도 마지막일 것입니다.


자꾸 트로트 자락을 흥얼거리는 게 노래방증후군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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