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들>
아주 오래전, 제가 아주 초보상담자였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제가 만난 대학생 내담자는 주 7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몸을 움직이는 일과는 도통 거리가 먼 제게 그 내담자의 운동 루틴은 정말 대단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 내담자의 호소문제가 우울과 불안이었는데 그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이렇게나 열심히 한다고! 여기에 내담자의 강점이 있구나! 신나서 칭찬도 많이 해준 기억이 납니다.
이 사례를 가지고 슈퍼비전을 받던 저는 내담자의 자원으로 7일 내내 절대 빠지지 운동하는 성실함을 들었는데요. 제 이야기를 듣던 슈퍼바이저 선생님은, 오히려 이 부분의 위험성을 지적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마치 하루라도 빠지면 큰일이 날 것 같은 태도로 운동에 매달리는 내담자의 태도는 '성실'이 아닌 '강박'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마음에 크게 남아, 내담자들을 만날 때에도 그리고 제 삶을 바라볼 때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갓생이 표준처럼 된 시대. 갓생이 자기 홍보의 콘텐츠가 된 시대. 갓생이 아니면 게으르고 뒤쳐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성실과 강박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운동을 주 7일이 나가는 게 문제냐고 물으신다면,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운동을 싫어한다 해도, 억하심정에라도 그런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거니까요.
여기 주 7일 운동을 나가는 두 사람, 영희와 순희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두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도록 합시다. 주 7일을 빠지지 않고 운동하는 영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진심으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자신이 더 건강한 몸을 가지고 나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삶을 위한 방식으로 운동을 선택한 거죠. 그렇기에 운동을 하면 할수록 영희의 마음에는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더 기뻐할 수 있는 마음들이 샘솟을 것입니다.
이번엔 주 7일 운동을 나가는 또 한 사람 순희의 마음을 보죠. 주 7일을 빠지지 않고 운동하는 순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운동을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건강이 나빠질 것 같고, 건강이 나빠지면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강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순희에게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성취가 아닌 당연한 것일 뿐이고 하루라도 운동을 빠지게 된다면 스스로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금세 근거 없는 강한 두려움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영희와 순희는 똑같이 주 7일 운동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두 사람다 '갓생'을 사는 성실한 운동인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영희의 운동은 즐거움과 건강함을 기반으로 합니다. 전적으로 본인을 위한 운동이기에, 운동을 계속하는 것이 자신을 해친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그 속도도 정도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즉, 행동의 주도성이 온전히 영희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죠.
하지만 순희의 운동은 두려움과 불안을 기반으로 합니다. 내 삶이 이 운동이 아니면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기에, 운동을 계속하는 것이 자신을 해친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운동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운동이 주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새도 없이 끝없는 두려움과 불안을 피해 달려가기에 급급합니다. 즉, 행동의 주도성이 순희에게는 전혀 없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성실과 강박을 가르는 한 끗, 입니다.
우리는 아주 쉽게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특히 세상에 던져졌지만 이룬 것은 한 줌뿐인 것만 같은 20대에는 하루에도 밥 먹듯이 두려움과 불안이 우리를 잠식하곤 합니다. 그 두려움과 불안을 직면하기보다는 도망치기 위해 하는 선택을 우리는 '강박'이라도 부릅니다. 열심히 살지 않는 20대를 찾기 힘든 이 시절, 그 열심이 진짜 자기를 위한 것이 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 강박에 기반한 열심이 우리를 뒤쫓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충분히 열심히 사는 자신을 칭찬할 수 없다면, 잠시만 멈춰서 뒤를 돌아봅니다. 내 뒤를 쫓아오는 건 정체 모를 두려움과 불안이 아닐까요. 그러느라 놓친 수많은 기쁨과 성취감과 벅참이 있지는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