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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방 Jul 31. 2023

#14. 회복. 구겨지지 않은 버전의 나를 그리는 일.

<상담실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들>

저는 평소 웹툰을 즐겨 보는 편입니다. 그림에는 도무지 재능이 없는 저는 좋은 메시지가 담긴 웹툰을 볼 때면 그래, 이미지의 파급력이 이렇게 큰 거야!라고 생각하며 부러워하곤 합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개념들을 적절한 그림과 대사로 표현하는 웹툰들을 볼 때마다 감탄하곤 하죠. 부럽다, 저 재능!


이런 제가 참 좋아하는 웹툰 중 하나가 천계영 작가님의 <좋아하면 울리는>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되어 방영되기도 했던 이 웹툰은 작가님의 사정으로 연재 사정이 순탄치 않았던 비운의(!) 작품이지만, 저는 초반부로도 이 웹툰의 할 일은 다 했다, 생각하며 처음으로 제 돈으로 만화책을 사기도 했습니다.


 



웹툰의 여주인공은 조조는 어린 시절 엄청난 트라우마를 경험한 후 이모네 집에 얹혀사는 인물입니다. 눈에 띄는 외모와 밝고 씩씩한 성격, 강인한 생활력을 가진 조조는 말하자면 흙수저 of 흙수저인 거죠. 그에 반해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남주인공 선오는 이런 조조가 어쩐지 끌리고 또 어쩐지 못 마땅합니다.


시비인지 플러팅인지 모를 이상한 짓을 하며 조조 옆을 맴돌던 선오가 조조와 조금 더 가까워진 후, 선오는 조조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듣게 됩니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선오는 말합니다.


"난 네가 굉장히 좋은 부모님께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스타일로 보이는데. 하도 구김 없어서."


그러자 조조는 대답합니다.


"일단 마음속에 그림을 하나 그리는 거야. 내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 세상의 때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순수한 원래의 나. 만약에 그 순수했던 내가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나에 대한 작은 칭찬들이 모여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그렇게 자라서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당당하고 깨끗한 마음의 나. 난 그 모습이 '진짜 나'라고 믿어.


사람들이 와서 나에게 상처 주고 나를 구기고 발로 차고 그러면 내 모습이 일그러지잖아. 그러면 나는 자꾸만 펴는 거야. 나의 진짜 모습이 구겨지지 않게. 다른 사람들이 망가뜨린 모습대로 살지 않게."


제게 강한 인상을 남긴 조조의 말은 그 후로도 종종 저의 상담에서 인용되고 있습니다. 바로 내담자들이 '회복은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을 던질 때입니다.



우리는 회복이 마치 완전히 다른 내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마치 나비의 이전 모습이 번데기나 애벌레라는 것을 예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조금 더 나아가서, 내게 이런 고난이 닥쳤다면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나로의 환골탈태가 응당한 대가가 아닐까 마음속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회복을 기회 삼아 왜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고 싶어 할까요. 그 마음 뒤에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넘어서, '좋지 않다'라는 가치 판단이 있습니다. 어떤 성격이나 행동이 다른 것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게 만든 거죠.


우리는 모두 고유한 원작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걸 심리학적 용어로는 '기질'이라고 부릅니다. 좋고 나쁨의 가치판단이 불가능한 원래부터 그러한 것인 '기질'에 왜 좋고 나쁨이란 이름표가 붙게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외부의 목소리를 안으로 들이고(이를 '내사'라고 부릅니다) 그 결과 나만의 목소리가 희미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나만의 목소리가 희미해진 것을 우리는 정체성의 상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환경은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둡니다. 어떤 가족에서는 힘든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힘든 일을 말하는 것은 가족을 배신하는 행위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이런 메시지를 오랜 시간 내사한 사람이 학교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게 된다면, 친구들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어려움을 절대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친구 무리의 메시지는 어려움을 나누지 않는 이 사람이 친구들을 충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배신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상황을 두고 가족과 친구들은 다른 훈수를 둡니다. 여기선 맞았던 것이 저기선 맞지 않는 이 혼란은 불안을 부르고, 불안한 우리는 더 많은 '훈수'를 찾아 나섭니다. 주변 사람의 말일수도 있고 좋은 책이나 유튜브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와 가족이 맞다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론 내가 속한 종교의 교리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훈수의 홍수 속에 갇혀 진짜 내 모습, 내 원작을 잃어버리게 된 우리는 점점 스스로를 지킬 힘을 잃어갑니다. 말하자면 마음의 면역력이 약해져 있는 상태이지요. 이런 상태에서 만약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어려움이 찾아오면 우리는 우리를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를 우리는 '상처받았다'라고 하고 조금 더 심하면 '트라우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선 이러저러한 훈수를 걷어내고 진짜 내 원작을 찾아나가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상담에 오시는 어떤 분들은 상담자가 회복에 대한 정답을 가지고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마치 처방전 같은 거죠. 아, 이러한 상처를 입으셨으니 이것 3번 저것 2번,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라는 식의 마음 처방전이 있다면 저 또한 얼마나 간편할까 상상해 봅니다. 내담자의 회복을 위해 어디로 가는 것이 맞을지 몰라 두려운 마음은 상담자에게도 동일하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무릎에 힘을 주고 용기를 내어 말합니다.


나는 당신의 회복으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 몰라요.

정답은 당신 안에 있죠.

당신이 당신다워지는 것이 회복의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어요.


상담은 그저 당신의 원작을 복원하는 일일 뿐이니, 어쩜 좋은 상담자는 아주 실력이 좋은 복원 전문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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