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들>
장면 1. 엄마가 저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 종종 꺼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전업주부 엄마의 외동딸인 저는 엄마와 함께 하루 종일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어린이집도 문화센터도 잘 없었으니 유치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하루를 꼬박 엄마와 단둘이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는 6시쯤이 되면 속으로 생각하곤 하셨답니다.
아... 이제 쟤가 그만 말했으면 좋겠다...
그렇습니다. 저는 혼자 있는 엄마가 심심할까 봐 하루종일 쉬지 않고 떠드는 효녀였던 것입니다.
장면 2. 시간은 흘러 흘러 효녀 딸은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상담대학원의 필수 과목인 <심리검사> 수업에는 심리검사를 오래 실시하시고 심지어 만들기까지 하셨던, 선배들 사이에 점쟁이 같다고 소문났던 외부의 한 교수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수업의 일환으로 모든 학생들이 MMPI를 실시하였는데 교수님께서 저희의 검사 결과를 마치 점쟁이처럼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미래가 궁금한(!) 불안정하고 가여운 석사생인 저희들은 쉬는 시간마다 검사지를 들고 달려가 교수님께 보여드리곤 했죠. 그중 하나였던 저도 검사결과지를 가지고 갔는데, 결과지를 한 번 보고 제 얼굴을 한 번 보시던 교수님의 첫마디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자네도 상담 전공인가? 자넨 왜 여기 있나?
물론 그 뒤로 좀 더 길고 친절한 교수님의 설명, 그러니까 교육이나 강의에 어울릴만한 자네가 왜 남의 얘기 계속 들어줘야 하는 상담 전공에 와있는가, 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설명 전에도 저는 교수님의 그 한 마디에 팡,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냥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까 말이죠. 교수님의 질문에 저도 알아요, 근데 전 상담 더 많이 하고 그래서 충분히 거기서 배우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했던 것도 떠오릅니다.
그 때로부터 시간이 흘러 저는 상담으로 밥 먹고 살아가는 성실한 직업인이 되었습니다. 똑같이 상담심리를 전공해도 상담자, 교육자, 연구자, 강연자 등 다양한 갈래의 길이 생기는데 아직은 뭐 하나 만 재미있는 게 아니라 힘닿는 대로 마음 닿는 대로 여러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중에 저의 가장 뿌리, 저의 본진을 꼽자면 저는 '상담자'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담에서 만나는 수많은 진짜 삶들과 거기서 생생하게 비춘 제 모습이 자꾸만 제게 할 말과 쓸 글들을 만들어주니까요. 그것들이 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쓸 능력이 제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상담은 보통 1회기에 50분입니다. 50분간의 밀도 있는 대화가 결코 짧진 않지만 그래도 상담자들은 이 50분이 온전히 내담자의 것이 되도록, 상담자의 것이 방해하지 않도록 철저히 훈련받습니다. 하지만 상담도 관계, 그것도 정말 내밀하고 친밀한 관계인지라 어떤 내담자들과는 시간이 쌓이면 참 반갑고 사담이 나누고 싶고, 가끔은 제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 (물론 내담자들이 제 이야기를 궁금해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제 이야기는 최대한 꾹 삼키려 합니다. 5분의 사담이 뭐가 대수야, 하겠지만 5분이면 상담 전체 회기의 10프로나 써버린 것이지요. 가끔은 남은 일분일초가 아까워 상담쇼파에서 일어나며 50분이 진짜 빨리 가네요, 하며 일어나는 내담자들을 생각하면 단 1분도 저만을 위해 쓸 수는 없습니다. 그게 상담자의 윤리입니다.
상담은 온전히 온 마음과 몸을 다해 들어주는 일. 그리고 정답을 일러주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 있는 그곳까지 지치지 않고, 덜 다치고 도달하게 도와주는 일. 그래서 때로는 내담자에게 시원하게 들려주고 싶은 어떤 답안 같은 말들도, 온 맘으로 안아주고 싶은 어떤 위로도 삼켜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내담자의 울음에 같은 크기로 울어줄 수 없는 이 수다쟁이 상담자의 마음들이 어떤 날은, 내담자가 떠난 공간에 남아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마다 급하게 노트 한 귀퉁이에 짧은 한 구절을 메모하고 다음 내담자를 만나곤 합니다. 어떤 퇴근길에는 카카오톡 내게 보내는 채팅창에 메모들을 와르륵 쏟아내고야 편히 눈을 붙이곤 합니다. 그런 말들이 모여 모여 가득 차 터지기 직전일 때, 그중에 길어 올려진 어떤 말들을 글로 만들어내곤 합니다. 그렇게 길어 올린 글들이 누군가에겐 위로요 지표고 또 따끔한 한 마디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쓰는, 말하자면 수다쟁이 상담자의 대나무숲인 거죠. 그 대나무숲에 흘려보낸 말들이 어떤 날, 가장 필요한 날, 가장 필요한 당신에게 가닿길 바라며. 상담실에서 우리가 나눈, 하지만 하지 못한 그 이야기들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