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의 방 Nov 01. 2022

#2. 의심. 정답이 없으니 하지 않지.

<상담실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들>

새로운 진로 선택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하던 내담자는, 상담을 마치고 나가는 현관에서 제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해요. 선생님은 어떻게 의심을 하지 않으세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무언가 해야 한다, 하고 싶다, 했을 때 망설임이 없는 것 같아서요.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내담자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곧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의심한다는 것은, 정답이 있고 그게 틀렸을까 봐 하는 의심이잖아요?

근데 인생의 대부분의 일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의심할 필요가 없죠."


내담자가 나가고, 저는 저와 내담자의 짧은 대화를 오랜 시간 곱씹어 보았습니다.



내담자들은 상담실에 다양한 이야기를 들고 옵니다. 저 또한 그 이야기 안에서 같이 숨 쉬고 고민하고 움직입니다. 내담자들의 일방적인 이야기에, 제가 뻔한 일방적인 답을 내놓는 것이 상담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내담자들이 저의 말에서 저를 봐줄 때, 저는 제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 생생하게 비친 것 같아 때로는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벅차기도 합니다. 내담자의 삶과 제 삶이 생생하게 공명한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내담자가 제게 '의심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해줬을 때도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내담자의 뜻밖의 질문에 저는, 제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어떤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고, 그 후에야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지요.


만약 제가 내담자의 저 질문에 무언가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망설였다면 저는 아마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영영 저의 저 말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일단 의심 없이 그 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저는 만난 적 없는 저의 어떤 부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길이 없다고 느끼는 곳에서 제가 한 발자국을 떼기만 하면 그곳에는 길이 펼쳐짐을 경험한 셈입니다.



우리는 틀리는 것이 두렵습니다. 오답을 말했을 때 망신당할까 두렵기도 하고 무언가 소중하고 절대적인 기회를 놓치고 다시는 잡지 못할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스스로에게 해를 입힐까 봐 두렵기도 하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실망할까 봐 망설이게 됩니다. 시험지에 그어진 빨간색 빗금을 보는 일도 편하지 않은데, 하물며 내 인생에 남은 오답의 흔적이 생기는 걸 맘 편히 볼 사람이 있을까요.


인생에서 오답을 내는 것이 두려운 우리는 다양한 반응을 합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정답'이라고 말하는 길을 열심히 따라갑니다. 대학, 취직, 연애, 결혼, 육아 등등 이른바 '적령기'에 해내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이런 경우에 속합니다. 비슷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를 과도하게 따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단순한 참고나 힌트 정도가 아니라 정답이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책이나 영상, 타인의 조언 등을 다소 강박적인 모습으로 수집하기도 합니다. 다른 좋은 조언이 진짜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삼키고 소화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이 내게 맞는 것인지 확인하게 되죠. 하지만 강박적인 태도로 다른 사람의 조언을 따라가는 것은, 소화나 흡수가 되기도 전에 그저 내 몸에 꾸역꾸역 넣는 것에 불과합니다. 영양분으로 축적될 겨를도 없이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아예 그 자리에 멈춰서 버리기도 합니다. 내 인생의 시기에, 내가 자율성이라는 키를 쥐고 마땅히 선택하고 움직여야 하는 시기에 그 모든 움직임을 멈춰버리는 거죠. 정답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 틀리면 다시는 복귀할 수 없을 거라는 절박감, 무엇보다 '나'는 언제나 맞아야 한다는 조금은 어긋난 자아상이 맞출 수 없다면 멈춰버리는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이런 멈춤의 선택은 수동적인 수준부터 - 이를테면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갑자기 몸이 고장 나 버린다거나 아니면 새까맣게 잊어먹는 경우 -, 적극적인 수준까지 - 요즘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이런 극단적인 예시에 속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틀리지 않을 수 있고, '정답을 한 번에  짠, 하고 말할지도 모르는 나'라는 가능성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정해진 정답은 없다는 것을요. 정해진 답은 없고, 그저 우리가 한 발자국을 떼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시도해보고 약간은 상처받으며 만들어낸 나의 삶의 궤적만이 오로지 나의 답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펜을 들어 쓰기만 하면 그게 답인데 그 펜을 드는 것이 왜 이리 무겁고 또 두려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정답이 없기에 스스로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요. 프리스타일 배틀에서 루틴이 틀릴까 봐 걱정해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한 발자국을 어디로든 떼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들리는 무수한 외부의 소음들, 그리고 내면에서 들리는 많은 소리들은 잠시 음소거시키고 발걸음을 어디로든 떼기만 하며 됩니다. 정답은 없으니까요. 그저 우리가 가는 길만 있으니까요. 그러니 스스로를 의심하지 마세요. 그렇게 떼기 시작한 당신의 발걸음은 어느덧 당신도 모르는 당신에게 향하고 있을 거예요.  



이전 02화 #1. 상처. 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방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