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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Oct 22. 2024

가까이 본다. 마음이 흔들린다.

몸은 그 흔들림을 기억하며 삶을 일으킨다.

1.

제가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날은 2015년 가을이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마음을 굳게 먹어야 미술관에 갈 수 있었죠. 미술관에 가는 것은 늘 마음을 먹어야 되는 일이었습니다. 만원정도 하는 미술관 티켓값이 부담되었기 때문이었죠. 퇴사를 하고 난 뒤로 대출금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빠듯했기에 나를 위해 쓰는 돈은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어쩌다 미술관에 한번 가기 위해서는 전시된 작가에 대해 꼭 공부를 하고 갔습니다. 어렵게 간 전시인만큼 모두 씹어먹고 말겠다는 각오였던 거죠. 그만큼 미술은 좋아하는 것인 동시에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독서모임에서 헤르만헤세의 책을 읽고 나서 함께 헤세전시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문학가이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전시는 헤세의 그림과 그의 글귀들을 나란히 전시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약속 당일 아버지께서 급히 입원을 하시게 되어 저는 함께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암투병 중이시던 아버지의 병세는 계속 악화되어 갔고 앞으로 병간호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한참인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제 삶도 붕 떠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멤버 중 한 분께서 혼자라도 다녀오라며 티켓 한 장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홀로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지하계단을 통해 내려가가서 첫 번째 작품을 보는 순간 마치 '어떤' 세계의 관문을 열은 것 같았습니다. '어떤'이라는 단어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었습니다. 입구에서 만난 작품은 헤세의 삶이 영상으로 펼쳐진 것이었습니다. 헤세가 청년시절 서점에서 일하던 것에서 중년기, 노년기까지의 삶이 하나의 영상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한 편의 영상에 닮길 정도의 짧은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름답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아름답게 살고 싶어 졌습니다. 


그날 이후 제가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고, 그해 시립미술관에서 도슨트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술을 많이 접할수록, 미술관에서 오래 머물수록 미술과 마음사이에는 뭔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대학원에 입학하여 미술치료를 전공하게 되었고 지금은 사설기관에서 미술심리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직업이 바뀐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로가 바뀌었습니다. 인생의 길이 새롭게 열리게 되었습니다.



"내 생애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처음으로 시도한 그림 그리기가 나를 위로하고 구원하지 못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내 삶은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 헤르만 헤세


2.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미술을 좋아합니다. 좋은 예술작품은 우리의 마음을 고양시킵니다. 균형감과 조화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색채는 우리의 마음의 따스하게 평화롭게 그리고 영광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또 미술관에 가는 일도 즐거운 일 중 하나입니다. 미술관에 있을 때는 우리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미술을 접한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근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예술작품에는 예술가의 삶이 들어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예술가의 삶은 작품을 떠나 삶 자체로도 매력적입니다. 이렇듯 미술을 좋아할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지적인 이유, 미적인 탐구, 휴식, 위로 등 말이죠.


저는 힘들 때마다, 즐거울 때마다, 그리고 별일이 없어도 그림을 보러 다녔습니다. 지금은 언제나 그림과 함께 있습니다. 저는 그림 속의 거닐며 수많은 나와 만나게 되었고 예술가를 비롯한 타자의 세계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의 어둠에 잠겨 심연 속을 헤매기도 했으며, 고통스러운 장면을 보며 내 마음의 상처를 다시 파헤쳐 긁어내기도 했으며, 부드럽고 따스한 색채를 보며 사랑하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으며, 희미하게 퍼지는 그림을 보며 이별한 것을 애도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미술을 거리 두며 바라보는 미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저를 비추었고 저를 안아주었으며 저를 통과했습니다. 거리 두고 바라보는 작품이 아닌 나의 몸을 나의 감정을 나의 삶을 변화시켰던 바라보기였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바라보는 과정 속에서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은 그림을 보며 내가 잃어버린 것, 내가 감춰 두었던 것, 외면받았던 것, 나조차 다 꺼내보기 힘들었던 것들과 마주한 기억들이며 그 기록입니다. 


이 기록들은 논리적이지도 지적이지도 매끈하지도 않습니다. 내 마음이 혼란스운만큼, 복잡한 만큼을 그대로 마주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혼란스러움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이 정돈되어 갔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치유되었으며 나를 괴롭히던 집착은 휘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기억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마주한 만큼 나를 알게 되었으며 내가 걸어간 만큼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모여진 글들은 제가 흔들린 이야기이며 삶이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소중한 기억으로 만든 액자. 아버지의 유품인 작은 이미지, 아이들이 만들어준 선물, 좋아하는 노랫말 그리고 전시 티켓을 모았다. 그 날,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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