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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by 정희주


그래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딸은 엄마와 더 친한 줄 알았습니다.

한걸음 멀리 물러난 채 바라보았습니다.

나를 보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그녀가 웃고 있으니까요.

그것만 바라봐도 좋으니까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기만 한 줄 알았습니다.

아버진 언제나 한걸음 뒤에 계셨습니다.

늘 괜찮다고만 하셨습니다.

그저 옅은 미소만 짓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것인 줄 몰랐습니다.

기쁜 날 함께 웃어주는

슬플 날 함께 울어주는

표현해야 하는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못다 전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 것인 줄 몰랐습니다.

내 방문 앞에서 서성이던 인기척이 당신인 줄

골목길 가로등에 불을 켜는 사람이 당신인 줄

밤새 무겁게 깔리던 한숨소리가 당신인 줄

보이지 않는 사랑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안 들리는 목소리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다시, 그날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자상한 목소리로 괜찮냐고 묻고 싶습니다.

미안한 일이 많았다고 사과하고 싶습니다.

다 떠나서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고마웠다고...


그럴 수 없기에

이제 제가 당신이 원하던 말을 되뇌며 살아갑니다.

흐릿한 움직임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으려 합니다.

작은 속삭임도 흘려듣지 않으려 합니다.

부끄러움 때문에 말을 삼키지 않으려 합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안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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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미술치료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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