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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Nov 16. 2022

결국 은행잎은 낙엽이 될 운명인가?

낙엽수와 소나무에 대한 생각



  가을에 부는 큰 바람 한 번에 은행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은행나무는 나뭇가지를 요란하게 흔들어 이파리를 떨어뜨리는데, 그럴 때면 은행잎은 가지에 붙어 있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가볍게 떨어진다. 은행잎은 낙엽이 될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풋풋함으로 표현된 이파리들이 어느샌가 익어서는 온 지면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만큼 잎새 한 장 붙어 있지 않는 나무들도 보인다. 옆 소나무가 풍성한 잎을 뽐낼 때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낙엽수들은 왠지 모르게 처연한 풍경이다. 봄의 벚꽃나무와 가을의 단풍나무 · 은행나무 같은 낙엽수들은 짧은 시간 동안 화려했고 남은 시간은 숨죽이며 살아갈 처지다. 낙엽수들의 가지 아래에는 한때의 화사함이 가득하다. 또다시 그럴 때가 되면 잠시 가지에 찬란함을 틔웠다가 끝내 발밑에 아련함을 남겨두기를 몇 번이고 반복할 것이다.


  화려한 시간이 지난 낙엽수들을 바라보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 말대로 열흘 붉은 꽃이 없다면 꽃은 삼백 오십일 동안은 붉지 않을 텐데, 붉었던 시간보다 붉지 않았던 시간이 더욱 길다면 평범했던 시간 동안 보이는 모습이 꽃의 본질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낙엽수와 소나무는 다를 바가 없이 느껴진다. 소나무는 늘 푸르고 낙엽수는 잠깐 화려할 뿐이다.


  두 나무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할지언정 사람들은 낙엽수들로 계절을 기억한다. 벚꽃과 단풍이 계절을 상징하는 이유는 한순간의 화려함을 각오하고 피어나기 때문이다. 낙엽수들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싹을 틔우던 그 순간부터 종자 단위로 각인된 운명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낙엽이 될 순리를, 얼마 지나지 않아 추락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피어난다. 꽃이 피고 지는 이치는 작년에도 그랬고 내년에도 그럴 것이지만, 매년 피어나는 것들은 매년 떨어지기에 사람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떨어질 위태로운 꽃들을 보러 가는가.


  사람들은 인파를 감수하고 기어코 여러 명소로 꽃구경 간다. 봄에는 제주도와 진해로 벚꽃을 보러 가고 가을에는 내장산과 무등산을 올라간다.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은 작년과 다를 바 없어서 내년에도 다를 바 없을 텐데, 사람들은 그러한 자연의 순리를 알면서도 어김없이 피어난 것들을 보러 이곳저곳 다닌다. 사람들이 계절마다 벚꽃과 단풍을 보러 다니는 이유는 한 철 머무는 꽃들의 화려함과 낙엽이 될 순리를 통해 순간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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