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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Nov 14. 2022

사랑에 관한 소고 (1)

헤어질 결심 각본을 읽고



  한 개인이 쌓아온 역사는 내가 되짚어 볼 수 없는 시간의 결과물이고, 그렇게 구성된 개인이 정확히 전달되기도 어려운 일이다. 상대의 진심과 언행이 다르다고 가정할 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잠깐의 마주침 속에서 드러나는 대상의 일부분을 바라볼 뿐이다. 과연 상대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파악한다고 해서 그 대상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사람을 대한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마주하는 것과 다름없다. 내가 알 수 없는 사건들로 정립된 미지의 영역을 나는 이해할 수 있는가. 시선은 사유에 의지하고 사유는 살아온 방식의 총체이다. 다른 장소, 다른 형편에서 살아온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이 다르다. 나는 나에게 기대어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너는 결국 본연의 네가 아닌 나로 인해 재구성된 너로 인식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내가 인식하는 나와 네가 인식하는 나는 완전히 일치할 수가 없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게끔 설계된 서로는 영원한 남으로 남을 것이다. 서로는 쌓아온 시간도 다르고 표현 방식도 달라서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는데, 혹자는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사이라면 차라리 관계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에 있어서는 어떠한 해석도 덧말에 불과하다. 사람에 대한 최신 이론, 연구 결과, 통계 등이 개별적 사랑을 가능하게 하지도, 불가능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진정 용맹한 행동이다. 사랑은 파악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 기꺼이 오독의 오류를 범하게 한다. 사랑은 해석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것이다. 사랑은 일종의 불가항력의 작용이어서 지금껏 정립한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도 가능케 한다. 사랑은 나의 역사도 부정한다.  


  그래서, 사랑은 그 외 다른 모든 것의 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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