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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Nov 18. 2022

밥벌이의 굴레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는 노동에 대하여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하다. 애완견들은 사람 마냥 옷도 입고 염색도 하고 윤기 나는 털을 뽐낸다. 걸을 때도 주인의 발걸음 속도에 맞추어 우아하게 걷는다. 다른 야생동물처럼 사냥감을 잡으러 뛰어다니지도 않고, 사냥에 실패해 생존의 위협을 느낄 일도 없다. 사람 식사보다 비싼 간식을 먹는 애완견들은 웬만한 사람보다 나은 생활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개 팔자가 상팔자다. 


  애완견들의 모습은 보기에 아름답지만 동시에 괴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개들의 가꿔진 외모는 개들이 직접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옷을 입은 개는 종종 보았지만 스스로 옷을 입는 개는 본 적이 없다. 멋진 털을 가진 개를 본 적은 있지만 직접 거품 내고 몸을 씻은 후 말리는 개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다. 목줄을 차고 산책하는 개가 입고 있는 분홍색 줄무늬 옷은 직접 고른 것이 아니다. 개들의 외적 아름다움은 고삐를 쥐고 있는 주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더 이상 생존의 문제는 개들에게 화두가 아니다. 이제 개들은 추위에 떨며 밤을 보내지 않는다. 사냥에 실패해 굶주리거나 다른 동물로부터 위협을 느끼지도 않는다. 개들은 때에 맞춰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고,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집에서 잠을 잔다. 사람에게 받는 혜택만 본다면 개들의 삶은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듯하다. 개의 풍요는 어떤 노력도 없이 거저 얻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개들이 영위하는 삶은 신체의 자유를 포기하고 얻어낸 결과물이다. 


  목줄은 개의 육체적 행동을 구속함과 동시에 다른 위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이제 개들의 밥벌이 수단은 예전과 완전히 다르다. 목숨을 걸고 사냥을 하거나 시체의 고기를 먹지도 않고, 주인이 비운 집을 외부 침입자로부터 지키고 보상으로 밥을 얻어먹지도 않는다. 더 이상 음식을 얻는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경우는 없다. 그 대가로, 개들은 신체의 권한을 사람의 손에 쥐어주었다. 사냥 대신에 사람의 곁에서 애교를 부리고 아양을 떤다. 위험한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풍족한 구속을 선택한 것이다.


  개들의 밥벌이는 사람의 옆에서 밥을 빌어먹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밖에 나갈 때 먼저 입마개를 씌워달라고 부탁하는 개는 없다. 중성화 수술을 요구하는 개는 더더욱 없다. 개들이 마음대로 걷거나 짖지 못해도 반항하지 않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인간사회에 해가 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서이다. 개들의 감내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거리에 애완견이 지나가도 놀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야생성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야생성을 제거하고 사람의 곁에서 귀여움을 제공하는 모습이 개의 노동이요, 밥벌이다. 마냥 상팔자를 타고난 줄 알았던 개들도 나름의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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