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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Dec 09. 2022

사람의 이목을 끄는 사람

범인(凡人)과 비범(非凡)인 (1)

  



  열정적인 사람이 좋다. 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빌리자면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에 맞추어 살아간다. 내 소유의 집에서 정년이 보장된 직장으로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을 추구한다. 하지만 소수의 몇몇은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에 몰입할 수 있는 마음가짐의 여부이며, 그 각오가 범인(人)과 비범(凡)한 사람을 가르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이 한 가지씩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각자의 고난에 치우쳐 자연스럽게 현실에 집중하는데, 나도 모르게 잊고 사는 것을 소수만이 끝까지 붙들고 있다. 성공하면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되고 실패하면 비웃음을 사는 게임에서, 그들은 최소한 끝까지 참여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유교 격언이 자리 잡은 나라여서 그런 걸까,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할 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삶의 형식에서 벗어난 선택을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눈길이 간다. 내 세상을 무료하지 않게 하는 사람들은 모두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난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나는 언제나 몰락의 위험을 각오한 사람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고는 했다.  


  몰두하는 모든 사람이 열정에 상응하는 보상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누군가 성공의 자리를 차지하면 다른 누군가는 밀려나는 것이 세상의 순리이다. 그런 이치를 알면서도 믿음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발칙한가.

물질이 으뜸인 세상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이들은 언뜻 시대의 역행자로 보이기도 한다. 


  사회의 시스템은 뛰어난 인물을 육성하기보다는 사회에 잘 스며들 수 있는 사람을 기르도록 짜여 있다. 이것이 특정 목적을 갖고 이루어지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사회가 그러하니 기조 또한 그러하다. 다수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되고는 한다. 뒤처지는 사람보다 이상한 사람은 아예 형식에서 벗어나는 사람이다. 통장에 월급이 입금되는 직장인의 눈에 그들은 사서 고생하는 바보, 혹은 소싯적 꿈을 버리지 못한 철부지로 비칠 수도 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을 비난하려는 목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사회에 대한 효용이 뒤로 밀리는 것들이고,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빛날 무대가 앞서 필요하다. 내 꿈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방을 수호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나의 밤을 지켜줄 사람이 있어야 하고, 내가 탈 버스를 운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국가가 원활히 가동될 수 있도록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경기장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는 이유는 경기장을 최적의 상태로 관리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 소수가 추구하는 가치는 우리 사회에 효용이 뒤로 밀리는 것들이다. 밥이 없으면 3일을 못 가 죽지만 예술이 없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대중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성공의 여부가 아니라 남들은 감당 못할 불안을 감수해냈다는 용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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