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규정하는 행위
다리가 땅을 박차고 나아갈 때, 눈앞의 풍경이 내달린 보폭만큼 다가온다. 두 걸음에 숨을 빨아들이고 또 두 걸음에 내뱉기를 반복한다. 점점 호흡이 가빠오고 근육들이 피로해짐을 느낀다. 발바닥이 뻐근하고 허벅지가 무거워진다. 한계에 치닫는 몸 상태를 느낄 때,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나는 그저 달린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제법 멀리까지 왔음을 깨닫는다.
문명사회가 들어서기 이전의 사람은 오래 달리기로 사냥을 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최고속도는 네발 동물의 그것보다 떨어지지만 지구력만큼은 남다르기에, 인간은 우월한 연비를 바탕으로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쫓아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즉 달리기는 생존에 필수적인 행위이자 가장 인간다운 행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은 몇 백만 년 동안 달리며 살아왔다. 말이 가축화된 시기가 기원전 5000년 전후라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원시적인 생활에서 벗어난 후에도 꾸준히 뛰어왔다는 말이 된다. 즉 진화의 기간에 비추어 볼 때, 이토록 비활동적이게 되고 좁은 행동반경을 가지게 된 것은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는 가장 인간다운 외적 행위를 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대상을 규정할 때는 그 대상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혹은 꾸준히 하는 것 등을 말미암아 대상을 파악한다. 그런 의미에서 달리기는 가장 인간다운 행위 중 하나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달리기를 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오래 달리기를 잘하게 되었고, 끼니는 계속해서 돌아오니까 또 달릴 수밖에 없었다. 달리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우리 몸에 정립되어 있다. 쭉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발생하는 문제는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이전에 해왔던 것들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달리기가 있다. 지금껏 진화해 온 방식에 가장 근접한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현대인의 고질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면, 정신건강에 문제를 느낀다면, 지금 당장 달리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