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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천 Nov 22. 2022

'우리', 그리고 '당신들'의 이야기

우리와 당신들

당신은 한 마을이 무너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마을이 그랬다.
당신은 한 마을이 일어서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마을이 그랬다.
당신은 정치가 됐건 종교가 됐건 스포츠가 됐건 다른 무엇이 됐건 뭐 하나라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온 사방에서 달려 나와 오래된 술집의 불을 끄려고 애를 쓰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그랬다. 어쩌면 당신도 그랬을지 모른다. 어쩌면 당신도 생각보다 우리하고 비슷할지 모른다.
우리는 최선의 최선을 다했다. 그날 밤에 가진 모든 것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패배했다.  
 - 프레드릭 배크만, <우리와 당신들> 중



  이번 책은 <베어타운>의 후속작, <우리와 당신들>이다. 이 책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에 대해서는 그의 대표작 <오베라는 남자>를 읽고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에게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소설에 잘 녹여내면서도 끝에는 따뜻함과 뭉클함을 선사하는 놀라운 재주가 있다. 분명 2022년의 첫 날이 밝아올 때 당직을 서면서 <베어타운>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어느덧 11월이라니 시간이 정말 빠르다. 아무튼 <베어타운>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었기에(내 인생 소설 중 하나이다.) 이번 작품도 큰 기대를 하며 읽었고, 그 기대에 걸맞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저지르는 끔찍한 잘못은 대부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날수록 실수는 더 커지고 결과는 더 끔찍해지며 자존심에 더 엄청난 금이 가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배크만, <우리와 당신들>, p. 31


-> 틀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거짓말을 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나아가 타인을 부정한다.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 추한 행동은 드문데, 이를 소설의 내용에 적절히 녹여낸 작가의 필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만해! 너는 여기서 탈출할 거야. 왜 그런 줄 알아? 네가 포기하건 안 하건 여기 이 아이들은 네가 하던 대로 할 테니까. 그러니까 연습해! 네가 NHL 선수로 뛰고 인터뷰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중계되면 여기 출신이라고 얘기할 수 있잖아. 할로 출신이고 네 인생을 허송세월하지 않았다고. 그러면 이 동네 아이들은 전부 네 얘기를 들을 거야. 그러면 내가 아니라 너처럼 되고 싶어할 거야." (중략) "너랑 같이 달릴게. 그래야 네가 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여기 있는 미친놈들이 전부 여름 내내 너랑 같이 달릴 거야."(중략) 그에게는 팀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그의 동지가 되어 주었다.
- 프레드릭 배크만, <우리와 당신들>, p.172


-> 이 책에서 가장 큰 울림을 느꼈던 구절이다. 마지막 문장의 '그'는 아맛이다. 그는 재능 있는 아이스 하키 선수로 인정받았었지만, 그의 팀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달리고, 맨몸 운동을 하지만, 어느 순간 지친다. 그래서 할로의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맥주와 대마초를 하고 있는데, 그의 오래된 친구인 리파가 그를 말린다. 리파는 어렸을 때 같이 하키를 했던 게 사실은 재미가 없었지만, 아맛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봤기에 하키를 계속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라도 같이 연습을 해주겠다고 말하고, 실제로 다음 날부터 리파와 다른 20여명의 할로 친구들이 아맛과 같이 달린다.

이 구절을 읽고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며, 누군가가 함께해준다는 것이 나에겐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볼 수 있었다.


부모의 품을 절대 벗어나지 못한 채 그들의 나침반을 따라가고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다.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도로 변하지만 바위로 변하는 사람들도 있다. 파도는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바위는 꼼짝 않고 견디며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프레드릭 배크만, <우리와 당신들>, p.265
 


-> 이런 표현들은 어떻게 생각해내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계속 감탄하게 된다. 수많은 시련을 견뎌낸 훗날 나는 파도가 될까? 아니면 바위가 될까? 기왕이면 단단한 바위가 되고 싶다.


어쩌면 나중에 그는 남들과 다른 그 느낌을 표현할 만한 단어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게 얼마나 몸으로 느껴지는지를 말이다. 겉도는 것은 뼛속까지 소진되는 느낌이다. 남들과 같은 사람들은,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다수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 프레드릭 배크만, <우리와 당신들>, p.407


-> 여기서 '그'(벤이)는 훌륭한 아이스 하키 선수이자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스 하키라는 마초적인 스포츠에서 동성애는 속된 말로 '호모'라 불리는 경멸의 대상이기에, 그는 이를 철저히 숨기며 살아간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대체 정상적인 건 뭘까? 다수가 비슷한 생각을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비정상인 걸까? 왜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고, '정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할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너무나 재미없고 따분한 세상이 될 텐데, 어쩌면 우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더욱더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어보지 못한 게 너무 많다. 죽음이라는 게 그런 식이다. 전화 통화와도 같아서 항상 끊으면 바로 그 순간 하지 못한 말이 정확하게 떠오른다. 이제 저편에는 추억으로 가득한 자동 응답기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미해져가는 목소리의 파편들뿐이다.
- 프레드릭 배크만, <우리와 당신들>, p.516


-> 나에게 소중한 사람을 영영 볼 수 없다면 이런 기분일까. 앞으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나중에 미련과 후회 대신 그와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기 때문이다.


서로 미워하도록 부추기는 건 워낙 쉽다. 그래서 사랑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다. 증오가 워낙 간단하기 때문에 항상 이길 수밖에 없다. 불공평한 싸움이다.
- 프레드릭 배크만, <우리와 당신들>, p.593


-> 어렸을 땐 정말 사소한 계기로 친구가 되었던 것 같다. 옆자리에 앉아서, 같은 동네에 살아서, 놀이터에서 놀다가 만나서 등등... 하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조건이 늘어난다. 처음엔 재밌는 친구, 그 다음엔 재밌으면서도 약속을 잘 지키는 친구, 그 다음엔 재밌고 약속도 잘 지키면서 배울 점이 많은 친구....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어렵게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맺어도 쉽게 깨진다. 단 하나의 사건으로 10년지기가 원수가 되기도 하고, 서로 죽고 못 살던 커플이 헤어지기도 한다. 왜 항상 좋은 것은 어렵고 나쁜 것은 이렇게나 쉬울까. 살아가기가 이렇게나 힘들다.



  

  전 작이었던 <베어타운>에서는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에서는 섬세하게 다양한 갈등과 화해를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공동체가 회복되고 가족이 가까워지고 개인이 성장하는지 그려낸다. 그래서 분명 책 내내 각종 폭력과 권모술수가 오가지만 다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저마다 백 가지로 다르지만 남들은 보통 이를 단 두 가지 범주로 단순화시킨다. 그들과 같은 편인지, 아니면 다른 편인지로 말이다. 그렇게 같은 편인 사람은 '우리', 다른 편인 사람은 '당신들'이 된다. 이렇게 단순화시키고 나면, 어쩔 때는 '당신들'도 똑같이 감정이 있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인간임을 잊는다. 그래서 때로는 서로 싸우고, 상처 입히고, 적대시하며 더욱 더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그래서 이 책의 원 제목은 <vie mor et>, 즉 <우리 대 당신들>이다.  그러나 막상 모든 걸 내려놓고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우리는 깨닫는다. 저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란 걸, 그래서 견해나 삶의 방식에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함께 공존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래서 한국판 제목은 <우리와 당신들>이다. 두 제목 다 작품의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내지만, 나는 한국판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갈등과 오해보다는 언제나 사랑과 평화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최근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줄어들면서 '나'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관계의 소중함을 새겼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새롭게 정의됨을 항상 생각하며, 사람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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