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크기를 정하는 방법

숫자가 아닌 책으로 말한다

by 나른히
charles-rfV9hLhg_pY-unsplash.jpg Photo by Charles PH on Unsplash

책의 판형은 어떻게 정할까? 판형은 보통 원고 교정이 끝나고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이 이루어질 때 정해진다. 한 번에 정해지는 때도 있고 반대로 오랜 고민 끝에 결정되는 때도 있다. 정해지는 과정에서 판형의 실제 숫자보다 그 판형을 가진 책이 주로 언급된다. 즉, 주로 기존 출간 도서와의 비교를 통해 책의 얼굴이 정해지는 것인데, 여기에도 숨은 몇 가지 규칙이 있다.


1. 베스트셀러를 따라 한다.

많은 출판사가 베스트셀러 도서의 흥행 요인을 여러모로 살핀다. 그중 하나가 판형이다. 즉, 책을 직접 펼쳐보았을 때 한 손에 잘 들어오고 읽기 쉽다면 이 또한 독자에게 매력으로 다가갔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같은 분야의 책을 내게 될 때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베스트셀러 도서는 편집자나 디자이너가 윗사람에게 판형에 대한 의견을 물을 때 요긴하게 쓰인다. “이런 크기의 판형이 어떨까요?”라고 묻기보다 “○○○ 책과 같은 판형이 어떨까요?”라고 물으면 해당 판형이 머릿속에 잘 떠오르기 때문이다.


2. 분야마다 주로 쓰는 판형이 다르다.

1번과 관련 있는 경우다. 분야마다 독자층이 다르다 보니 판형도 분야별로 어느 정도 굳어진 면이 있다. 한 예로, 에세이 같은 경우에는 간편하게 책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작은 판형이 인기다. 반대로 경제경영이나 사회과학 쪽 도서의 경우 집에 책을 두고 읽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큰 판형이 쓰인다. 또, 어린이 도서의 경우 아이들이 쉽게 들고 있을 수 있도록 비교적 넉넉한 판형을 선호한다.


3. 원서를 따라 한다.

번역 도서, 주로 일러스트나 사진이 많이 들어가며 원서의 디자인 틀을 그대로 가져오는 도서에 해당한다. 보통 이러한 도서는 계약 단계에서 원서의 데이터에 대해 비용을 낸다. 그리고 원서의 디자인을 따라가는 형태에서 국내 실정에 맞게 조절하며 편집 작업이 이루어진다. 판형의 경우 원서의 것을 그대로 적용하는 때도 있지만, 내부 의견을 거쳐 가로세로 길이를 조금 바꾸는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인쇄소가 해당 판형을 출력할 수 있는지와 종이 로스율(인쇄 시 재단하며 버려지는 종이의 양)에 따라 결정하거나 조금만 크기를 키우거나 줄여서 다른 출간 도서와 같은 판형으로 작업하는 것이다.


4. 출판사마다 선호하는 판형이 있다.

서점에 가서 같은 출판사의 책 여러 권을 나란히 세워보았을 때 판형이 같은 경우가 종종 있다. 출판사마다 선호하는 판형이 있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인쇄소에서 추천해서다. 보통 새로운 판형으로 책을 만들 때 거래하는 인쇄소에 종이 로스율을 묻는다. 인쇄소가 최적의 판형을 말해주면, 그 판형으로 인쇄가 진행되며 같은 분야면 그 판형이 계속 쓰이며 굳어진다.

둘째, 잘 팔리는 책의 판형을 쓴다. 앞서 말했듯이 책이 잘 팔리는 요소 중에는 판형도 있다. 어떤 책이 잘 팔리면, 출판사에서는 독자가 그 판형을 선호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별일이 없는 이상 같은 판형을 고집한다.

셋째, 작업하기 편해서다. 익숙한 판형으로 작업하면,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다. 표지의 경우, 꽉 차 보이지 않을지 파악하며 카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본문 또한 원고의 양을 살펴 몇 페이지 정도 나올지 짐작할 수 있다. 디자이너의 경우 판형의 특성을 잘 알게 되다 보니 판형에 알맞은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다.

넷째, 시리즈 책일 때다. 특히 시리즈 책은 하나의 판형 기준이 되어 다른 책에서도 시리즈 판형이 쓰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1번에서 말한 대로 “○○○ 시리즈와 같은 판형이면 어떨까요?” 하고 의견을 제시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5. 원고의 양에 따라 결정한다.

보통 출판사에서는 책 한 권이 200쪽이 넘도록 작업한다. 200쪽이 넘어야 독자에게 어느 정도 내용을 갖춘 책으로 보이기 쉽고, 마케팅 입장에서는 가격을 적당하게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200쪽 미만이면, 200쪽이 넘는 경쟁 도서와 같은 가격으로 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 때문에 간혹 페이지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여유를 두거나 글씨를 크게 넣는 책들이 있다. 이 경우는 판형을 잘못 정한 것이다. 또는 편집 초반에는 적당한 판형을 정했으나 교정을 거치면서 원고가 많이 다듬어졌을 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원고의 양이 적은 경우, 먼저 작은 판형으로 결정하고 편집자는 디자이너에게 넉넉한 디자인을 요청한다.



표지 커버: Photo by Charles P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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