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rl+c, ctrl+v가 필요할 때
이제 원고는 그만 보고, 글을 써야지.
편집자는 글을 다듬는 일만큼이나 글을 쓰는 일도 많다.
작가에게 보내는 출판기획서부터, 원고의 콘셉트를 정하고 마케팅팀과 원활한 소통을 위한 편집회의, 제목과 카피를 정하기 위한 제목회의, 세상에 나온 책을 포장하는 보도자료까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홍보를 위해 네이버 포스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올리는 글도 편집자의 몫일 때가 많다.
그런데 편집자에게 글 쓸 시간은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편집자에게 우선시되는 것은 ‘신간 출간’이다. 출판사에 있어 신간 매출이 중요한 만큼 정해진 출간 일정에 맞추다 보면, 책을 알릴 글을 쓰는 데 주어지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여유가 생기더라도 인쇄 발주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탓에 숨 돌리느라 바로 글이 써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글을 다듬다가 글을 쓰는 것으로 역할을 바꿀 때는 그렇게 많이 본 원고인데도 과부하가 걸린 듯 머릿속이 하얘질 때가 많다. 더군다나 편집자는 한 권의 책만 오로지 맡고 있지 않다. 첫 번째 책이 인쇄에 들어갔으면, 두 번째 책은 현재 조판 중이고, 세 번째 책은 원고가 들어와서 확인하는 셈이다(네 번째 책은 번역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책이 답이 되면 좋겠지만, 답 없는 책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당연히 책에 대한 글을 쓸 때는 그 책이 소재가 된다. 그러기에 편집자는 원고를 살펴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하고, 아이디어도 틈틈이 모은다. 이렇게만 해도 웬만하면 SNS에 올리는 글까지 완벽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책이 훌륭하지 않다. 아무리 훑어봐도 도저히 결론을 낼 수 없는 책도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써낼 수는 있지만, 책을 알리기에는 조금 아쉬운 상황이 펼쳐진다. 콘셉트가 분명하지 않거나 억지로 만들어낸 책 같은 경우에 특히 그렇다.
낙엽을 긁어모으듯 여기저기서 아이디어를 가져와야 한다.
가끔, 편집자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출판사가 엮어낸 책은 분석이 필요한 경쟁자이자 때로는 영감을 주는 길잡이가 된다. 같은 분야의 같은 소재를 다룬 책을 여러모로 들여다보면, 마치 업어가듯 여러 소스를 얻을 수 있다(가장 좋은 것은 그 책을 다 읽어보는 것이다). 특히 도움이 되는 곳은 뒤표지와 보도자료. 이 두 곳에는 편집자가 그 책을 알리고자 하는 의지로 아이디어를 긁어모은 흔적이 드러난다. 아직 경험치가 부족한 나는 이 두 군데에서 많은 도움을 얻는다.
가끔 책만으로는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여기저기 다 뒤진다.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와 칼럼은 물론이고, TV 예능프로그램의 자막부터 SNS의 소소한 글까지. 과격한 표현일 수 있지만, 나의 경우 어느새 뒤지는 게 특기가 되었다. 뒤지는 게 진짜 목적은 아니고, 작가를 찾거나 다른 출판사의 SNS를 구경할 때 좋은 단어를 얻을 때가 많다. 아이디어는 주로 ‘단어’에서 얻는다. 문장 자체는 베껴서는 곤란하다. 머릿속 한구석에 너무 잘 박혀 있는 탓에,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단어가 다른 사람의 글에서 튀어나온다. 그럴 때는 따로 메모해두거나 인터넷 국어사전 단어장에 저장해놓는다. 이렇게 편집자는 단어 수집가가 된다.
편집자로 일하다 보니 ctrl+c, ctrl+v가 필요할 때가 많아졌다.
물론 단어에 한해서만. 책이든 기사든 읽는다는 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런 핑계를 대며 오늘도 단어를 싹싹 긁어모은다. 풍부한 어휘가 녹아든 책을 찾다 보니, 나름 책을 잘 고르는 눈도 생겼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책이란 자신에게 훌륭한 국어사전이 되어주는 책이 아닐까 한다.
커버 사진 : Photo by Todd Quackenbush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