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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에서 복직했는데 또 어딜가

복직의 어려움과 적응기, 그리고..

by 제미쓴 일단 해봐

행복했던 육아휴직의 시기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했다.

육아휴직은 아빠로서의 나에 집중하고,

나 자신으로서 사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너무나 행복했지만..

회사 일에 대해서 만큼은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어서 모든 것을 잊게 해 주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업무시스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사번, 이메일 주소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아예 시스템 접속 방법도 모르겠고

업무 문서 작성법은커녕 문서 프로그램의 단축키조차도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bethany-legg-75nbwHfDsnY-unsplash (1).jpg 사진: Unsplash의Bethany Legg


이렇게 되자 내가 복직을 한다한들 밥값을 할 수 있을지 두려워졌다.

사람들은 내가 1년 반을 쉬고 왔다고 생각할 텐데

그 기대에 부응하려면 오히려 일을 더 잘해야 할 텐데


오히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꼭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아마 수많은 육아휴직 경험자분들,

경력 단절을 겪으신 분들도

이 과정을 겪으셨을 것이다.


지금도 복직을 한 사람만 보면 그 감정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


어쨌든 복직 후에 잘할 수 있을지,

아니 기본적인 업무나 할 수 있을지 매우 두려웠다.




복직을 2~3주 앞둔 시점부터는

밤잠을 설치다가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 마침 <미라클 모닝>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거, 미라클 모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복직 후에 금방 원래의 사이클로 돌아왔다)


막상 복직을 하자 긴장된 마음에 집중력이 좋아졌다.

업무 문서를 한 두 번만 봐도 기억이 되는 신기한 일을 경험했다.

복직 첫 달을 초긴장 상태에 보내고 나니

조금씩 다시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jason-strull-KQ0C6WtEGlo-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Jason Strull


아이들도 다행히 엄마 아빠의 풀타임 근무를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마침 코로나로 인해서 갑자기 확진자가 발생하면 바로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야 하는 일들이

종종 생기기는 했지만

아이들 친구 부모님들의 도움과, 당시 일했던 부서에서의 배려로

그때그때 최대한 대응할 수 있었다.


반년쯤 지나고 나니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회사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아이들은 새로운 육아 스케줄에 맞춰서 잘 움직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문득

복직이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목표가 희미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분명 육아휴직 중에는

주도적인 삶,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삶에 대해

엄청난 행복을 느꼈고

그 행복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5년 안에는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저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니

원래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거와 똑같이 살면서

미래가 바뀌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뚜렷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내 삶은 지금 모습 그대로 반복될 것이며

행동하지는 않은 채 환경을 탓하며

불만과 푸념이 늘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해야 했다.


nick-fewings-aHr40GPT3MI-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Nick Fewings


다시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지만,

출퇴근과 육아, 집안일을 하고 나면 잠들기 전 30분도 쉽지 않았고,

모든 이동시간과 쉬는 시간을 합해도 시간이 모자라기만 했다.


마침 3개월 정도 하원을 도와주시던 시터분께서

일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해오셨다.


그러면 엄마나 아빠, 둘 중 한 명의 시간이 필요했다.




복직 후 9개월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회사에 아무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제도인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했다.


시간에 비례해서 급여가 깎이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미안했지만

한 명 한 명에게 상의를 하며 양해를 구하고

아내에게도 이런 결심을 이야기했다.


급여의 25%를 삭감받고

하루에 2시간을 벌었다.


4시에 이른 퇴근을 하여 스터디 카페에서 재테크 공부를 하고,

아이들의 저녁을 해주는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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