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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Jan 13. 2023

아파트에서 육아공동체 세워가기

느슨한 연대를 지향하는 아사모

우리 아파트에는 ‘아사모’라 이름하는 육아공동체가 있다. 아사모는 마을주민 10명 이상이 모이면 신청할 수 있는『2020년 경기도형 아동돌봄공동체 조성사업』에 선정되어 구축 및 운영된 육아공동체이다. 보통은 마을주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사업이 시작되는데, 우리는 주민이 먼저 모인 것이 아니라 아파트 관리사무소장님이 아파트 내에 공고를 낸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업이 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관리소로 와서 이름을 적고 가라는 것이었다. 다들 이 사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육아공동체’가 세워진다는 소식에 엄마들이 ‘이런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관리사무소에 들러 엄마 이름과 아이 이름을 적어 내었다. 우리는 이름만 적었는데,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공동체 구성원이 되었다.


완전하게 자발적인 시작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사업에 큰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기에, 공동체의 운영 및 유지가 어려울 법 한데, 아사모는 사업비 지원 기간이었던 3년을 꽤 성실하고 알차게 보냈다. 그리고 3년 차 마지막 사업 성과공유회에서는 우수사례로 선정되는 기염을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이러한 공동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나누고자 한다. 


아사모의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이 되기로 자원했지만, 서로 마음이 맞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기로 합의를 도출하고 사업에 지원하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과정은 경험하지 못했다. 그 모든 과정이 생략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서로의 얼굴과 이름도 모른 채 하나의 공동체로 묶였다. 사업선정에 필요한 모든 행정 서류는 모두 관리사무소장님께서 도맡아 처리하셨으며, 공동체 이름도 나이 지긋하신 남자 어르신인 관리사무소장님께서 지으셨기에 평범하다 못해 조금은 촌스러운 이름(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임)이 되었다. 뛰어난 행정가이신 소장님 덕분에 아사모는 3년간 1억을 지원받는 나름 큰 사업에 선정되었고, 선정 결과가 공표된 이후 우리는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사업에 선정되어 첫 모임을 가지려고 하니 관리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의 공고가 엘리베이터에 붙었다. 나는 그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자리에 참석하신 세 분이 소장님의 혜안에 따라 회장, 총무, 감사로 임명되셨다. 그렇게 1기 임원진이 꾸려지게 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 출발점이 이상하리만치 신기하다. 


시작의 주체는 관리사무소장님이셨지만, 1기 임원진으로 추대된 대표, 감사, 총무님과 그 외 이사진들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 공동체를 꾸려나갔다. 우리의 첫 번째 과업은 아파트 내 지하 커뮤니티 시설에 작은 키즈카페와 같은 실내 놀이터와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한 공간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지원받은 사업비 중 5천만 원 이내에서 돌봄 공간 시설공사비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이를 우리는 아파트 내에 놀이공간 및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한 공간으로 조성했다. 우리의 돌봄 공간은 아사모에 가입 및 활동하시는 분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마을주민(아파트 주민 또는 근처 이웃) 모두가 필요하다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수많은 아이가 기어 다니고 걷고 뛰며 실내 놀이터에서 즐겁게 지냈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유익한 공간이 되었다. 나의 두 아이도 비가 오는 날, 추운 날에는 실내 놀이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해당 공간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사업비를 지원받는 기간은 끝났어도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한 이 돌봄 공간은 남아있고 열려있다. 


함께 육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고 이를 활용해보고 나니 같이 모일 수 있는 공유된 공간, 공공의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봄 공간은 아이들이 모이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육아하는 부모들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소통의 장소도 되었다. 인근에 거주하고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부모들과 아이들이 ‘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공간을 통해서 주어지게 된 것이다. 육아공동체가 정부의 지원 사업으로 인해 출발했지만, 해당 사업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주민들에게도 ‘함께 육아’가 가능한 공간이 제공된 셈이다. 우리 공동체는 이 공간에서 그런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냈다. 우리의 공동체가 잘 운영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공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두 번째 과업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 및 운영하는 일이었다. 유아 오감 놀이, 5~7세 대상 미술 수업, 초등부 저학년 독서 수업, 고학년 역사 수업을 진행했으며, 이외에도 일일 강좌로 도자기 체험, 숲 체험, 아빠와의 요리 교실, 진로 교육, 핼러윈 행사, 크리스마스 케이크 만들기 등 세기에도 힘든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더욱 즐겁고 유익한 경험의 시간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물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데, 우리는 서로가 내는 아이디어를 거르고 걸려 할 수 있는 일들을 골라내기에 바빴다.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난 셈이다. 아사모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이런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니, 그건 엄마가 아니라 온전히 내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이름은 잊혀져가고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만 하며 지냈던 시간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기에 그간 감추어놓았던 열정과 역량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활기차게 발휘되었던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지만, 그 과정은 구성원 자신을 위하는 셈이었다. 우리에게 일이란 버거운 면도 있긴 했으나, 일 자체가 주는 온전한 즐거움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나라에서 사업비를 받아 진행되는 엄연한 사업인 만큼, 각종 증빙과 처리해야 하는 행정 서류가 만만치 않았다. 모든 지출과 프로그램 운영에는 수많은 행정 서류가 뒤따랐다. 한 달에 처리되는 서류들만 족히 A4 용지로 200장이 넘었다. 이러한 행정 서류 처리에 익숙한 임원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계셨다. 우리는 서로 돕고 배우며 이 일들을 해냈다. 다른 공동체는 이러한 행정 서류 처리가 버거워서 중간에 갈등을 빚고 해체된 일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관리사무소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 다른 공동체보다 많은 임원진이 분담하여 서류들을 처리했기에 고비는 있었지만, 해체의 위기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렇듯 1억 정도의 사업비를 알차게 활용했고, 그 과정에서 나름 공동체 구성원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함을 줄 수 있는 육아공동체로 구축되어 갔다. 자발적 모임도 아니고 서로가 끈끈했던 이미 구축된 공동체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먼저는 소장님께서 임의로 임원진을 뽑으셨지만, 그분들이 매우 좋으신 분들이었고 우리는 ‘육아’에 집중하고자 하는 뜻이 맞는 사람들이었으며, 서로 관계가 너무 가깝지 않았던 것을 이유로 뽑을 수 있다. 


나는 이 아사모에 2년 차 막바지 즈음 임원진으로 합류하게 되었는데, 공동체에서 깊숙이 활동하게 되면서 가장 놀랐던 점 중의 하나는 공동체 임원들이 서로 여전히 ‘존대’를 하며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흔히 엄마들 모임이라고 하면 서로 ~엄마, 또는 언니라고 부르며 편한 관계가 되기 마련인데, 여기에서는 여전히 ~이사님, ~대표님 등의 직함을 부르고 존대하며, 일 외적으로는 거의 모이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의 방학을 함께 보내고 서로의 집에 아이들을 보내며 공동육아를 했지만, 엄마들끼리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모이지는 않았다. 우리들의 모임이란 ‘아동돌봄’ 그 자체였던 것이다. 즉, ‘육아’만 하는 공동체였고, 그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서로 분담하여 잘 처리하는 ‘일로 만난 사이’였다. 우리는 사업이 끝난 지금까지 서로의 직함을 부르고 개인적인 연락은 거의 하지 않으며, 차후의 사업에 대해서만 논의한다. 물론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지만, 이 모든 것은 ‘안건’이 있을 때만이다. 흔한 아줌마들의 모임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특이한 양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공동체의 슬로건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느슨한 연대’이다. 우리의 연대는 끈끈함을 지양한다. 서로 너무 편해지지도 말고 너무 가까워지지도 말고 매일 만나는 사이는 더더욱 되지 말자고 했다. 연대는 연대이나 느슨하게 이어진 연대를 지향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아이만 성장하는 연대가 아니라 부모도 함께 성장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아사모에는 이 글 안에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아주 많은 이야기와 그 과정들이 있다. 우리라고 왜 시행착오가 없었겠는가. 아사모를 문화센터의 일종이라 생각하며 자원봉사하는 임원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셨던 참여자분도 계시고, 일을 하다보니 실수도 발생하고, 사람이 모이다보니 작은 갈등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아사모의 색깔을 덧입혀가고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단단히 다져가며 좋은 아동돌봄공동체가 되었다. 아사모는 우리에게 서로 어울리며 즐거울 수 있는 행복한 시간들을 선물해 주었다. 특별히 임원진으로 참여했던 나에게는 공동체라는 연대의식을 심어준 소속감, 가까이 사는 이웃들과 함께 힘을 모아 무언가를 해낸다는 성취감,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감사함, 그리고 아이들에게 동네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뿌듯함을 주었다. 우리 모두에게 아사모는 무엇보다 그저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덧,

현재 아사모는 사업비 지원이 끝남과 동시에 휴지기에 들어갔고, 차기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간 사업을 운영하며 겪어왔던 과정들을 돌이켜보며, 향후의 육아공동체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구상 중이다. 인근 주민 모두를 대상으로 했던 아사모의 모습이 아니라, 소수의 공동체 구성원만을 대상으로 한 소속감 확실한 공동체를 구성할지에 대한 여부가 가장 뜨거운 논의 사항이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는 계속 함께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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