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생각나는 사람

(1화) 춘자 씨가 사는 그 집

by 함예

내가 살고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도 봄이 찾아왔다. 지난해 여름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처음 맞이하는 봄이다. 평소에도 나무와 꽃이 많은 도시라 이곳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곤 했다. 얼마나 낯선 꽃들이 이곳의 봄을 알려줄지 궁금했다. 그런데 기다림도 무색하게, 이곳에 봄이 왔다고 알린 꽃은 ‘목련’이었다. 나뭇가지에 새하얗게 핀 하얀 목련을 보니 친숙함이 느껴졌다. 언제나 봄이 찾아오면 나의 머릿속엔 자연스럽게 할머니네 정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flowers-g23a941d7b_1920.jpg 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목련의 꽃. 출처: pixabay


할머니네 집은 1970년대 지어진 양옥집이었다. 집 내부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동룡이네 집처럼 나무로 이뤄져 있었는데, 집에 들어가면 따뜻하고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다. 집 자체의 면적은 크지 않았지만 집을 둘러싼 정원과 텃밭을 고려하면 부지가 작지 않았다. 그 한가운데에는 목련 나무가 있었는데 집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마주 보이는 자리였다. 할머니네 정원에는 목련 말고도 산수유, 개나리, 철쭉, 금낭화까지 다양한 꽃들이 있었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은 할머니의 장독대 근처에 있던 산수유였다. 그 노란 빛깔을 볼 때면 할머니는 “봄이 오는구나”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아직 쌀쌀함이 느껴졌던 그 계절, 할머니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할머니가 말한 대로 볕이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하더니 봄이 금세 찾아왔다. 봄이 왔는지 안 왔는지 헷갈릴 무렵, 목련 나무에 하나 둘 새하얀 꽃봉오리가 펼쳐졌다. 그 뒤를 이어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고 앵두나무에서 벚꽃을 닮은 하얀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완연한 봄이 오면 철쭉이 색색별로 정원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철쭉나무 아래에는 분홍빛 하트 모양의 금낭화가 그 여백을 채웠다. 그러면 그해 봄은 완전히 피어난 것이었다.


20130508_132403.jpg 봄이 오면 생각나는 할머니네 집. 출처: YE SOL


목련을 보면 떠오르는 기억이 또 하나 있다. 목련의 하얀 잎이 지고 나면 초록색의 둥글고 길쭉한 열매가 생긴다. 나무 아래로 떨어진 이 열매를 주워 마당의 디딤돌 위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 그렇게 잘 그려졌다. 친척 동생들과 목련 열매를 마치 분필처럼 사용하며 그릴 수 있는 돌엔 죄다 낙서해 놓았던 것 같다. 나중에 마당에 나와 이 흔적을 발견한 할머니는 마당을 어지럽혔다고 꾸지람하시곤 했다. 그럼 우린 실실 웃으며 열매를 손에서 내려놓고 뒷걸음질 치기 바빴다. 찰나의 순간이었을 그때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어릴 적 내가 맞이하던 봄은 매년 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잊지 못해 내가 봄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봄볕에 따라 하나둘 차례로 피어나는 꽃들을 기다리던 설렘을 매년 기다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취향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우리 할머니가 특별히 엄선해 심어 놓았던 우리 할머니 정원의 봄꽃들을 통해서 말이다.


nature-g533c851c8_1920.jpg 앙증맞은 금낭화. 출처: pixabay


할머니가 떠 난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그해 봄, 우린 알았을까. 이 봄이 함께 봄꽃을 만끽하는 마지막이었다는 걸. 할머니가 사랑했던 꽃들을 모두 기억한다. 그 꽃을 볼 때마다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머니와 나를 연결해주는 이 매개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30년이 지나 내가 할머니 나이가 됐을 때 내 정원에서 그 꽃들을 전부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background-gcd5e01239_1920.jpg 내가 할머니가 됐을 때 내 정원엔 어떤 꽃이 피어있을까. 출처: pixabay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혜원의 엄마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다시 도시로 돌아가지 않고 아빠의 고향에 남아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혜원을 이곳에 심고 뿌리내리게 하고 싶었다고. 혜원이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이다. 20대 시절,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다. 하지만 그땐 정확하게 이게 어떤 감정일지 공감하진 못했다. 그런데 30대가 되고, 낯선 미국 땅에 와 살게 되고 난 후, 이 말이 계속 생각난다.


타지의 봄을 보면서도 어릴 적 뛰어놀았던 할머니네 집 마당을 떠올리고, 산책을 하다가 만난 꽃과 나무를 통해 과거 나의 고향 모습을 상기한다. 매일 요리를 하며 왜 진작 할머니에게 그 모든 요리의 레시피를 배우지 못했는가 후회하며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선명해진다. 이건 아마도 어린 시절 나의 뿌리가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과 정성을 주었던 할머니와의 정서적 교감 덕분이겠지. 본래 살던 익숙한 곳에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나의 뿌리가 심어지던 그 시절에 대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방인으로 지내며 '정'이 그리워지니까 '정'이 가득했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분들도 기억 속 어딘가에 있을 그 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꺼내 볼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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