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본 건 엘리베이터에서였다.
그녀를 마주치는 건 거의 엘리베이터가 다인지라 딱히 특별할 건 없다.
우리는 아주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안녕하세요" 인사만 건네는 사이다
내가 그녀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얼굴 그리고 그녀가 사는 층수 그리고 그녀의 자녀가 아들 둘이라는 것이다. 이게 끝.
그녀의 첫인상은 아주 청순한 여대생 이미지였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긴 생머리였고 단정한 긴치마를 입어서였던 것 같다.
옷 차림새를 보았을 때 젊어 보였고 그리고 예뻤다.
안녕하세요 하고 건네는 목소리도 참 얌전했고 조용했다.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아하고 예뻐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아이 엄마라고 하기에는 참 젊고 예쁘다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아들이 둘 있는지 몰랐다.
처음 본 몇 번은 큰 아이랑만 있어서 처음에는 아이가 한 명인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둘째랑도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첫째와 둘째를 같이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녀는 아이들을 단속하느라 바빴다.
"좀 옆으로 붙어"
"싸우지 마"
"조용히 해"
"그렇게 탕탕 소리 내는 거 아니야"
6층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아주 짧은 시간만 보는 거라
아이들이 어떤지 그녀가 어떤 엄마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천방지축 아들이 둘이라 밖에서 아이들 케어하는 게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 아이들이 유별나게 못되게 굴고 장난꾸러기도 아니었고
그녀도 특별하게 엄하거나 까탈스러운 엄마 같지는 않았다.
여느 엄마와 아들들.
나도 둘째가 조금만 더 커도 저런 모습이겠지 하는 상황들이라 크게 신경 쓰이지도 기억에 남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아아악~~~~~~~~~~~"
하는 여자 비명 소리가 들렸다.
공포와 무서움이 깃든 목소리라기보다는
화남과 짜증과 깊은 한숨이 배어 있는 비명.
엄청난 빡침이 몸 밖으로 나올 때 내는 소리.
나는 그 비명을 아주 잘 안다.
나는 아주 가끔 나 혼자 그런 비명을 지르기 때문이다.
말 못 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기르다 보면 그런 비명이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절로 나올 때가 있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익숙한 비명.
1층 문이 열리고
6층 여자와 아이들 둘이 내렸다.
순간 눈이 마주친 아이들과 6층 여자의 눈에는 당혹과 당황이 비쳤고
거기에 서있는 내가 갑자기 너무 미안해졌다.
봐서는 안 될 걸 봐버린 상황.
들키고 싶지 않은 그녀의 일부를 내가 목격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는 서로 비켜 제 갈길을 갔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와 아이들은 1층 현관을 향해 갔다.
황급히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도 전에
그녀의 짜증 섞인 고함이 또 들려왔다.
"제발 빨리 좀 가라고!!!"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남아 멍해졌다.
가끔은 그녀가 힘들 거라고도 생각했지만
그녀의 비명과 고함을 듣고 그녀가 한없이 안쓰러워졌다.
그녀는 지금 힘든 것이다.
나도 안다. 그 힘듦을.
그녀도 안다. 아이들에게 그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남한테 그런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힘듦이 몸 안에서 못 버티고 비집고 나와 버린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런 순간을 언젠가는 꼭 맞닥뜨리고 만다.
내 화와 감정을 숨길 틈도 없이 봇물 터지 듯 폭발하고 마는 날.
처음엔 정말 당황스러웠다.
나한테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에 부끄럽고 황당하고 자책했다.
나는 어른이지 않은가. 왜 나의 감정을 이렇게 숨기지도 다스리지도 못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또 반복이 되었고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는 인격이 저질인 인간만 남아
자책을 하고 반성을 해도 도통 좋아지지 않는 극악스러운 엄마구나 나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알았다.
어린이 집에 아이를 맡기고 내가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 생기니 알았다
내가 많이 지치고 힘들어 견디지 못한 경계선에 다다랐구나.
쉬어야 하는구나. 마음을 들여다보고 위로해 주고 나아지기를 기다려줘야 하는구나.
아이들과 붙어 있을 때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몰랐다.
아니 힘들다는 것을 알아도 나를 돌보지 못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말은 진리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나의 행복에 관심을 가졌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엄마는 아이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화나도 화내지 않아야 하고
침착하게 차분하게 아이에게 말해야 한다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나도 그랬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공공장소에서 아이에게 큰 소리 내고 엄하게 꾸짖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본인의 화를 왜 다스리지 못하고 아이에게 저럴까. 부모의 자격이 없다고 너무나 쉽게 생각해 버렸다.
지금은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에게 화를 내는 행위가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밖에 행동하지 못한 그 엄마나 아빠에게도 어떤 사정과 힘듦이 있을 거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는 엄마나 아빠를 보면 조금은 안타깝다. 조금은 애달프다.
경계선에 다다른 6층 그녀도 조금 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다행일 텐데.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그녀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즐겁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면...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 한없이 비루한 오지랖일 수 있는 마음이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내 마음이 그녀에게 다 달아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수다거리
공공장소에서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엄마를 보면 어떤 생각하세요?
아이를 키울 때 힘들면 어떻게 하나요?
화를 가라앉히는 방법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