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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별 Jan 26. 2024

하얀 발자국을 기다리며

기다림의 끝이 허무하지 않도록

치아와 비아는 남매예요.

치아는 12살 여자아이, 비아는 10살 남자아이

둘은 불행하게도 부모가 없답니다.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없었고 엄마는 1년 전에 헤어졌어요.


1년 전 겨울

엄마는 치아와 비아를 어느 시골의 고아원에 데려가서는 말했죠.

"엄마가 당분간은 치아와 비아를 못 돌볼 거 같아.

그래서 치아랑 비아 둘이 여기 고아원에 있어야 하는데 잘 지낼 수 있겠니?"

치아는 물었어요.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요?"

"글쎄.. 하지만 분명한 건 엄마는 꼭 치아랑 비아를 데리러 올 거야~"

비아가 물었어요.

"꼭 올 거죠? 오늘처럼 하얀 눈이 올 때 꼭 올 거예요?"

"눈? 그래 하얀 눈이 내릴 때 엄마가 꼭 올게."


셋은 손을 마주 잡고 약속했지요.

그렇게 치아와 비아는 엄마랑 헤어졌어요.


그리고 1년이 지나

또다시 겨울이 되었고 창 밖엔 지금 눈이 내리고 있어요.

올해 다섯 번째 내리는 눈이에요.


첫눈이 오는 날은

치아 비아 모두 창밖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저 멀리서 엄마가 오면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얘진대도

엄마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눈이 그쳐 다 녹을 때까지도 엄마는 오지 않았어요.


두 번째 눈이 오던 날도 마찬가지였죠.

치아는 화가 났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만 들려도 치아는 저도 모르게 엄마가 이번엔 오지 않을까 내심 기다렸어요.

그렇지만 세 번째 네 번째도 엄마가 오지 않자 실망은 거듭되었고 화는 쌓여만 갔죠.

하지만 엄마를 기다리는 일은 멈출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오늘도 엄마가 오지 않을 거라고 아침 내내 이야기하고서는 창 밖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거든요.


반면에 비아는 매번 엄마가 오지 않는데도 늘 이렇게 말했어요.

"다음번 눈이 올 때 엄마가 올 거야 눈 올 때 오신다고 했잖아 꼭~"

그런 비아를 보고 치아는

"바보~ 지금까지 보면 모르니? 엄마는 우릴 벌써 잊은 거라고"

하고 말했어요.

그래도 비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꼭 오실 거라 믿었죠.


1년 2년 3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고 시간이 흐를수록 치아는 화가 늘어만 갔어요.

눈이 내리는 날이 너무 싫었죠.

"아니 눈은 왜 이렇게 자주 내린담"

차라리 눈이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엄마를 기다리지 않을 텐데 하고 말이죠.

기다리는 것 자체가 너무 지루하다 못해 고통스러웠어요.

차라리 포기하고 안 기다리면 그만일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고

눈이 오지 않는 계절에도 마음은 가시 방석이었죠.


반대로 비아는 눈이 오는 날이 가장 좋았어요.

"오늘이 엄마가 오시는 날이려나~~?"

룰루랄라 콧노래도 불렀지요.

눈이 오는 일기예보가 있으면 한 주간을 즐겁게 보냈어요.

늘 말끔한 옷차림에 엄마가 오시면 기뻐하실 수 있도록 이런저런 얘기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죠.

설령 이번에 오시지 않더라도 다음번에 오실 때까지 그동안 성실하고 착하게 잘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엄마를 기다리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죠.


어느 날은 치아가 비아에게 물었어요.

"넌 엄마가 원망스럽지도 않니? 온다 해놓고 지금까지 안 오는데 뭐가 그렇게 즐거워?"

"오신다고 했으니까, 믿고 기다리는 거야 언제고 꼭 오실 건데 이번이 아니라고 누나처럼 화낼 게 뭐람"

"지금까지 안 왔는데 어떻게 온다고 믿니?"

"엄마잖아. 엄마가 온다고 했으니까 꼭 와. 우리 약속도 했잖아"

비아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자 치아도 마음이 좀 너그러워졌어요.


'그래 엄마니까, 약속하셨으니까 오시겠지?'

그날부터 치아도 비아처럼 믿고 기다리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이상하게 마음이 참 평온 해졌어요.

눈만 오면 화나고 짜증 나던 마음도 어느새 사라졌고요.

엄마가 꼭 오신다고 믿고 나서부터는 눈이 온다는 일기 예보만 들려도 설레고 행복해졌어요.

같은 시간을 기다리는 건데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느냐에 따라 

참 많은 게 달라졌어요.


치아는 비아처럼 시간을 알차게 보냈어요. 

나중에 엄마를 보게 되는 날 착하고 바른 치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잘 지내고 있어야겠다 생각했거든요.


엄마랑 헤어진 지 5년이 지나고

세 번째 눈이 내리는 날

치아랑 비아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어요.

예전에 엄마랑 살았을 때 엄마가 해주시던 크림수프, 

셋이 같이 했던 게임 등 즐겁게 지난날의 추억들을 회상했죠.

그리고 5년 동안 엄마를 기다리며 고아원에서 지난 이야기도 나눴고 

따끈한 코코아 한 잔도하고 음악도 들으며 잔잔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냈어요.


눈은 어느새 그쳐가고 

길은 소복이 눈이 쌓였어요.


멀리서 그 새하얀 길에 발자국 하나하나를

남기며 엄마는 치아와 비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죠.


이제 치아와 비아의 행복한 기다림은 끝이 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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