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끝이 허무하지 않도록
치아와 비아는 남매예요.
치아는 12살 여자아이, 비아는 10살 남자아이
둘은 불행하게도 부모가 없답니다.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없었고 엄마는 1년 전에 헤어졌어요.
1년 전 겨울
엄마는 치아와 비아를 어느 시골의 고아원에 데려가서는 말했죠.
"엄마가 당분간은 치아와 비아를 못 돌볼 거 같아.
그래서 치아랑 비아 둘이 여기 고아원에 있어야 하는데 잘 지낼 수 있겠니?"
치아는 물었어요.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요?"
"글쎄.. 하지만 분명한 건 엄마는 꼭 치아랑 비아를 데리러 올 거야~"
비아가 물었어요.
"꼭 올 거죠? 오늘처럼 하얀 눈이 올 때 꼭 올 거예요?"
"눈? 그래 하얀 눈이 내릴 때 엄마가 꼭 올게."
셋은 손을 마주 잡고 약속했지요.
그렇게 치아와 비아는 엄마랑 헤어졌어요.
그리고 1년이 지나
또다시 겨울이 되었고 창 밖엔 지금 눈이 내리고 있어요.
올해 다섯 번째 내리는 눈이에요.
첫눈이 오는 날은
치아 비아 모두 창밖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저 멀리서 엄마가 오면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얘진대도
엄마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눈이 그쳐 다 녹을 때까지도 엄마는 오지 않았어요.
두 번째 눈이 오던 날도 마찬가지였죠.
치아는 화가 났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만 들려도 치아는 저도 모르게 엄마가 이번엔 오지 않을까 내심 기다렸어요.
그렇지만 세 번째 네 번째도 엄마가 오지 않자 실망은 거듭되었고 화는 쌓여만 갔죠.
하지만 엄마를 기다리는 일은 멈출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오늘도 엄마가 오지 않을 거라고 아침 내내 이야기하고서는 창 밖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거든요.
반면에 비아는 매번 엄마가 오지 않는데도 늘 이렇게 말했어요.
"다음번 눈이 올 때 엄마가 올 거야 눈 올 때 오신다고 했잖아 꼭~"
그런 비아를 보고 치아는
"바보~ 지금까지 보면 모르니? 엄마는 우릴 벌써 잊은 거라고"
하고 말했어요.
그래도 비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꼭 오실 거라 믿었죠.
1년 2년 3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고 시간이 흐를수록 치아는 화가 늘어만 갔어요.
눈이 내리는 날이 너무 싫었죠.
"아니 눈은 왜 이렇게 자주 내린담"
차라리 눈이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엄마를 기다리지 않을 텐데 하고 말이죠.
기다리는 것 자체가 너무 지루하다 못해 고통스러웠어요.
차라리 포기하고 안 기다리면 그만일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고
눈이 오지 않는 계절에도 마음은 가시 방석이었죠.
반대로 비아는 눈이 오는 날이 가장 좋았어요.
"오늘이 엄마가 오시는 날이려나~~?"
룰루랄라 콧노래도 불렀지요.
눈이 오는 일기예보가 있으면 한 주간을 즐겁게 보냈어요.
늘 말끔한 옷차림에 엄마가 오시면 기뻐하실 수 있도록 이런저런 얘기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죠.
설령 이번에 오시지 않더라도 다음번에 오실 때까지 그동안 성실하고 착하게 잘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엄마를 기다리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죠.
어느 날은 치아가 비아에게 물었어요.
"넌 엄마가 원망스럽지도 않니? 온다 해놓고 지금까지 안 오는데 뭐가 그렇게 즐거워?"
"오신다고 했으니까, 믿고 기다리는 거야 언제고 꼭 오실 건데 이번이 아니라고 누나처럼 화낼 게 뭐람"
"지금까지 안 왔는데 어떻게 온다고 믿니?"
"엄마잖아. 엄마가 온다고 했으니까 꼭 와. 우리 약속도 했잖아"
비아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자 치아도 마음이 좀 너그러워졌어요.
'그래 엄마니까, 약속하셨으니까 오시겠지?'
그날부터 치아도 비아처럼 믿고 기다리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이상하게 마음이 참 평온 해졌어요.
눈만 오면 화나고 짜증 나던 마음도 어느새 사라졌고요.
엄마가 꼭 오신다고 믿고 나서부터는 눈이 온다는 일기 예보만 들려도 설레고 행복해졌어요.
같은 시간을 기다리는 건데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느냐에 따라
참 많은 게 달라졌어요.
치아는 비아처럼 시간을 알차게 보냈어요.
나중에 엄마를 보게 되는 날 착하고 바른 치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잘 지내고 있어야겠다 생각했거든요.
엄마랑 헤어진 지 5년이 지나고
세 번째 눈이 내리는 날
치아랑 비아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어요.
예전에 엄마랑 살았을 때 엄마가 해주시던 크림수프,
셋이 같이 했던 게임 등 즐겁게 지난날의 추억들을 회상했죠.
그리고 5년 동안 엄마를 기다리며 고아원에서 지난 이야기도 나눴고
따끈한 코코아 한 잔도하고 음악도 들으며 잔잔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냈어요.
눈은 어느새 그쳐가고
길은 소복이 눈이 쌓였어요.
멀리서 그 새하얀 길에 발자국 하나하나를
남기며 엄마는 치아와 비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죠.
이제 치아와 비아의 행복한 기다림은 끝이 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