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Essay_손에 쥐어진 선물은 감사히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2021년 4월 말,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발간됩니다.
이제 서점에서 만나요!
'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은 매월,
하나의 에세이와 그 달에 어울리는 꽃과 사진을 정리한 이야기, 총 2개의 글을 발행합니다.
일 년 열두 달 중 5월을 좋아한다는 건 참 흔한 말일 것만 같다.
5월은 당연히 좋지! 하고 생각하다가 5월을 싫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있다면 그 이유도.
아마 5월이 진짜 싫어서는 아닐 거야.
그냥 모두 좋아하니까 싫다! 모두 행복해 보여서 싫다! 같은 다분히 반항적인 이유일 것이라 혼자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5월을 싫어할 이유가 없으니까.
5월의 기운은 밝고, 맑고, 보송보송하다. 3월부터 봄인 것 같지만 사실 3월은 겨울에 더 가깝다. 4월에도 겨울이 조금 묻어 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4월 초입까지도 코트를 벗지 못하곤 한다. 한낮의 기온은 따스할지 모르지만 이른 아침과 저녁엔 ‘으슬으슬' 춥다. 봄인 척하는 겨울이 미처 다 가리지 못한 자신의 맨 얼굴을 실수로 드러낸 것 같은 유쾌하지 못한 썰렁함이다.
드디어 5월이 되어야 아침부터 밤까지, 온전히 봄인 계절이 된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상쾌하고 해도 길어져 저녁엔 집에 들어가기 싫다. 너무 짧아서 일 분이 아쉬운 아름다운 날들. 조금이라도 움켜쥐고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다 가지고 싶어진다.
그래서 5월엔 길거리에서 맥주 한 캔을 마셔도 이상하지 않다. 어딘가 처량맞거나 사연 있어 보이지 않고 마치 봄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낭만적이고, 무언가 좋은 일이 우연히 생길 것 같다.
계절의 힘이란.
5월의 꽃집은 단순히 ‘바쁘다'고 표현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을 정도로 바쁘다.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까지 누가 봐도 꽃이 필요해 보이는 날들이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절대 자신을 위해 꽃을 사지 않는 사람들도 그런 날에는 다른 사람을 위한 꽃을 산다.
그래서 5월의 카네이션 값은 천정부지로 뛴다. 그 마저도 미리 예약을 해 두지 않으면 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보통때의 카네이션은 그리 고가의 꽃은 아니다. 도매시장에서 장미가 10대에 한 단으로 묶여 판매되는 것과 달리, 카네이션은 20대가 한 단으로 묶여 판매된다. 그러니 한 대씩으로 계산하면 장미보다는 저렴한 편인셈.
하지만 5월 6일에서 8일 사이의 카네이션은 거의 금값이 된다. 품질이 별로인 카네이션도 없어서 못판다. 조금만 늦게 새벽 시장에 도착해도 카네이션이 모두 품절이라 평소라면 절대 사지 않을 것 같은 아이도 들었다 놨다 망설이다가 ‘빨리 가져가! 그것도 지금 산다는 사람이 줄 섰어'라는 사장님 말씀에 얼른 값을 치룬다.
그리고 5월 10일쯤 꽃시장에 가면 똑같은 카네이션을 훨씬 싸게 구할 수 있지만, 이제 더이상 누구도 카네이션을 사지 않는다. 카네이션이 지천에 깔려있지만 때를 놓친 고객들을 위한 예약 꽃바구니를 만들어야 하는 플로리스트들 말고는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질척임 없이 밝고 맑은 5월에, 나는 카네이션만은 조금 슬프게 느껴진다. 여보란 듯 피는 그 많은 꽃들 사이에서 한껏 치켜올려졌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지는 카네이션이 안쓰럽다.
하지만 나 역시도 지겹게 보고 만진 카네이션에 다시 손이 가지 않는다. 카네이션을 다시 만지게 되는 건 빨라야 6월 중순은 넘어야 할것만 같다. 혹은 더욱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가끔은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떨 땐 세상 쓸모없는 것이 된 기분도 든다.
사실 나는 그대론데.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전, 지나치듯 누군가의 SNS 피드에서 자존감을 높여주는 글 몇줄을 읽고나면 웅크리고 있던 가슴 한가득 헬륨가스라도 훅 불어넣은 듯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한번밖에 없는 인생이야. 삶은 짧아. 최고로 행복하게 지내야지!’라고 부풀어 오르다가 잠들 때쯤이 되면 ‘오늘도 어제 같았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심지어는 하려던 일을 다 끝내지도 못했지. 다이어트 한다 그래놓고 또 치킨 먹었어. 세상에 나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게으름뱅이가 있을까. 되게 많겠지? 나도 그 중에 하나겠지? 집에만 있고싶다.’ 라며 더할 수 없이 부정적인 히끼꼬모리가 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상한나라의 앨리스와 붉은 여왕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래전 지나가듯 읽은 이야기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기억 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붉은 여왕님이 사는 곳은 런닝머신처럼 바닥이 계속해서 뒤로 흘러가고 사람들은 ‘제 자리에 머무르기'위해 계속해서 움직인다. 그리고 여왕님은 앨리스에게도 이 바보야! 제 자리에 있고싶으면 계속 움직여!라고 충고한다.
나는 제 자리에 머물기 위해 멈추고, 앞으로 가기위해 바삐 움직이고 싶은데 세상은 그 만큼의 게으름도 용납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나를 어딘가 더 뒤에 쳐 박아 둔다.
5월은 짧고 한껏 들뜬 기분도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진다. 6월과 7월이 되면 공기보다도 가볍고 산뜻한 5월의 햇살에 묵직한 질량이 얹어지는 기분이다. 여름은 태양의 무게를 등에 짊어진 계절이니까.
기분은 너무 쉽게 날씨와 계절의 영향을 받아 5월의 햇살마냥 가벼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봄날의 작심삼일은 매일 바뀌는 날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위로 솟구쳤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카네이션처럼, 어쩜 이렇게 나 자신의 의지완 상관없이 모든 것이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가벼운 그 무드에 가만히 머무르고 싶지만 모든 게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꼭 5월처럼. 하지만 그렇다고 즐기지 않을 이유는 없잖아?
생각해 보면, 가만히 선 채 뒤로 밀려가던 앨리스는 어쩌면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서 제 자리를 쉼 없이 뛰고 있는 붉은 여왕님을 다시 만났을지도 모른다. 제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뛰는 여왕님을 발견하고는 ‘어머, 여왕님 아직도 뛰세요?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요. 다시 돌아올 수 있어요. 조금만 쉬세요.’라고 말했을 지도.
이상한 나라는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구는 둥그니까, 한 바퀴 돌면, 다시 돌아와 시작할 수 있다. 하루도, 일년도.
스무살에 생각할 때는 서른살의 5월은 이렇게 설레지 않을 줄 알았다. 마흔살의 5월은 너무 늙어서 아름답다는 것도 모를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늙지 않는다. 살아만 있다면 그 누구도 계절을 느낄 수 없을만큼 늙지는 않는다. 아직 겪지 못했지만 쉰살의 5월도, 환갑의 5월도 지금까지의 5월처럼 짧고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걸 깨닫는 게 조금 오래걸렸을 뿐,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순간은 너무나 짧지만 꼭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걸 아니까 허무해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매년의 5월을, 언제나 보송보송하고 아까운 계절을 모른 척 하지 말자. 한껏 들떴다가 곤두박질 치더라도 내 손에 쥐어진 선물을 굳이 떨어뜨릴 필요는 없지. 일년에 한번이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게 어디야. 가장 안타까운 건 잠시라도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는 그 달의 에세이를 써서 발행합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그 달에 어울리는 꽃, 직접 만든 꽃, 찍어 놓은 사진을 정리하여 발행합니다.
저의 글과 꽃과 사진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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