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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Aug 02. 2024

그 사랑의 이름





*[타로카드 읽는 가게]는 소설입니다. 모티브나 컨셉외의 모든 인물과 나오는 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

















오늘 손님은 더이상 없을 것 같았다.

이 카페는 신혼 부부나 노 부부들이 주로 사는 작은 빌라가 대부분인 골목 안 쪽에 있었다. 그래서 저녁 식사시간 쯤 되면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눈에 띄게 줄어 들고 손님도 거의 들고나지 않았다.

주인 언니도 그걸 알고 있어서 해가 저물고 나면 좋아하는 책을 보거나, 좋아하는 꽃을 만졌다. 꽃집은 아니지만 늘 꽃을 들여놓고 예쁜 꽃을 들여온 날은 그냥 그녀의 꽃놀이가 계속 되었다.

그녀는 아침에 출근 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면 크게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늘 자기가 할 일을 하고, 그 일에 집중하고, 손님이 오면 차를 내주었다. 종종 심심하거나 말동무가 필요한 날은 커피 두 잔을 내려 내게 한 잔을 내밀며 나의 낡은 책상 맞은 편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타로점'을 봐달라고 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우리는 그냥 저냥 사이가 좋은듯,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듯, 필요한 듯 아닌 듯하게 미적지근한 관계로 6개월을 지냈다.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 탓인지 나는 그 관계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다행이 그녀 역시 마찬가지인 듯 했다. 보통 이런 저녁 시간이 되면 나는 내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그녀에게 오늘 내가 마신 차값을 낸 뒤 퇴근을 했다. 내가 이 자리의 임대료로 내야할 금액이었다. 아무리 친한 선배의 친한 언니라지만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어서 자리 이용료에 대해 말을 꺼내봤지만 그냥 '잘되면 더 내.'라고 할 뿐이었다. 내 덕에 손님이 늘어나면 본인도 좋다면서.






오늘도 언제나의 저녁처럼 시끌시끌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시던 손님들이 약속이나 한듯 저녁 시간을 기준으로 스르르 빠져나가고 더 이상 타로점을 보고싶은 사람들이 올 기미가 없어보이길래 펼쳐 놓은 융단천을 천천히 반으로 접는데, 여자 손님 하나가 터벅터벅 걸어들어왔다. 나는 들어서는 그녀와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카드를 실크 주머니에 빠짐 없이 넣었다.

나는 책상위에는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는다. 어차피 들고 다닐 짐은 타로카드 한벌과 보자기만한 융단천 뿐이니 작은 가방에 한꺼번에 넣고 다니는 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였다. 종종 주인언니가 작은 찻잔에 줄기가 부러져 짧아진 꽃 한두 송이를 담아 올려주기도 하지만 그 외에 나의 짐은 하나도 없었다.

짐을 다 정리하고, 의자를 밀며 일어서려는데 저녁식사를 대신할 요기거리를 주문하고 자기 자리를 찾아 가던 손님이 나를 불렀다.


"저......혹시 여기서 타로카드도 볼 수 있는 거에요? 오늘은 끝났어요?"


나는 잠시 내가 얼만큼 배가 고픈지, 오늘 집에 가면 무엇을 먹을게 있는지 떠올려 보다가 그녀를 마지막 손님으로 받고 오늘은 햄버거를 사먹기로 결정했다.


"봐드릴게요. 여기 앉으세요."


내 맞은 편의 의자를 꺼내 자리를 권하고 나도 다시 자리에 앉아 가방 속에 넣은 타로카드와 융단천을 주섬 주섬 꺼냈다. 어느새 토스트와 뜨거운 커피를 만들어 온 주인 언니가 옆 테이블 위에 쟁반을 내려놓으며 '여기에 둘게요, 손님'이라고 하더니 총총 사라졌다.

꽤 배가 고픈 것 같았던 손님은 내게 말을 건 순간 식욕 자체가 사라진 것인지 옆에 놓인 토스트와 차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이 '빨리요, 빨리!'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나는 판판하게 주름 없이 융단 천을 테이블 위에 펴고, 이제는 꽤 능숙해진 손길로 카드를 차박차박 섞으며 물었다.


"어떤 게 궁금하세요?"


손님의 눈빛에는 경계는 아니지만 약간의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 익숙한 표정과 상황이다.

타로카드에 질문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현재 숨기고 싶은 욕망, 부끄러운 사건 사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에 대해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두 가지 양가 감정이 발생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어쩌면 나의 치부일지도 모르는 것을 드러내야 하는 가, 얼마만큼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오히려 나와 접점이 없는 타인이기 때문에 그냥 다 터놓아도 되지 않을까?하는 달콤한 유혹에 대한 고민이다.

돈을 받고 누군가의 고민이나 문제를 듣고 조언을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공간으로 치자면 제3의 공간 같은 존재들이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업적 공감이 가능한 직장 동료도 아니다. 다시 만날 수는 있지만 친분을 나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에게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는 곁다리 대화 없이 바로 내 문제에 대한 해결만을 요구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 손님의 결정이 어떤 방향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거의 대부분의 손님들이 자신을 얼마나 오픈해야 하는지에 대해 초반에 치열하게 고민한다. 일단 다 털어놓기로 마음 먹으면 부담스러울 정도로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지지만 정말 폐쇄적인 사람을 만나면 나는 추가적인 질문에 질문에 질문을 몇번이고 더 던져야 한다.


"저......연애....에 대한 부분인데요."


그녀는 조금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연애 어떤 거요?'라고 바로 되물었지만 이제 나는 잠시 가만히 듣는 쪽을 선호한다. 그리고 눈으로 말한다. 그래요, 연애의 어떤 부분이 궁금한가요. 세상의 연애는 수도 없이 많은 종류가 있는데요.


"제가 지금 만나는 분이 있는데."


그녀는 목이 타는지 옆 테이블로 손을 뻗어 자신의 커피를 한 모금 꿀꺽 삼켰다. 우리가 서로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뜨거운 커피는 미지근하게 식은 듯 했다.


"음......지금 만나는 분이 있는데, 전에 헤어진 분이 자꾸 더 마음에 들어와요."


"......"


"그러니까, 연락이 오면 만나요. 만나면 좋고. 하지만 지금 만나는 분도 좋은 분이거든요. 좋은 분이고......잘해주시고, 다 좋은데......"


"그런데요?"


"그런데 헤어진 분도 만나면 또 좋거든요. 연락이 오면 제가 안 받으면 되죠. 그럼 되는 거 아는데, 제가 또 받아요. 받고나서 만나고, 그럼 마음이 또 안 좋고, 지금 만나는 분한테도 죄짓는 거 같고. 그런데 또 연락을 끊으려고 하면 또 연락이 오거든요."


그녀는 도돌이표 같은 이야기를 아주 괴로운 표정으로 읊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연애가 있고 연인이 있지만 그 카테고리는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그래서 질문자의 경우는 굳이 분류하자면 '양다리'였다. '이 분', '저 분'이라고 아무리 극존칭을 쓴다 해도 결국, 어떤 이야기를 붙여도 이 이야기는 '양다리'코너로 분류될 것이다.

그러니 굳이 덧붙일 필요 없는 '저도 알아요.'라던가, '좋은 분인데'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거겠지.


"그럼 궁금한 게 지금 만나는 분을 정리하고 이 전 분을 다시 만날까하는 건가요?"


마치 염불처럼 중얼중얼 반복되는 그녀의 일상 고백에 내가 끼어들었다. 둘 다 손에 쥐고 있어도 되나요?가 질문은 아닐거잖아, 설마.


"......아......그렇게 질문을 해야하나요?"


그녀의 눈빛 뒤쪽에 불이 꺼진 듯 좀 탁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그럼 반대인가요? 헤어진 분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지금 만나는 분에게 올인할까 하는 질문이세요?"


설마.

설마 진짜 양다리 계속 걸쳐도 되냐는 질문이야?


"아......그럼 그렇게 해야 하나요?"


왜 다들 자신의 고민을 질문으로 정리하려고만 들면 이렇게 모국어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맹해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글쎄요. 어떤 게 궁금한지 먼저 자신의 질문을 정리해 주셔야겠죠? 저는 점쟁이가 아니니까요. 저는 이미 타고난 사주팔자를 들려드리거나, 신이 내려서 막 뭔가 줄줄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내 마음 나도 모르는데 내 마음이 뭐죠?라고 하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어요. 궁금한 것, 답을 정해야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카드를 직접 뽑으시면, 저는 그 카드에 대한 상징을 풀이 해 드릴 뿐이죠."


"......"


손님은 다시 한번 커피를 호르륵 들이켰다. 이번에는 큰 숨을 들이키듯 길게 후르르르륵 하고 들어갔다. 1~2분 정도 말없이 내리 깔고 있던 그녀의 멍한 눈빛이 일순간 탁하고 불이 들어오는 듯 다시 생기를 찾더니 말했다.


"네, 그럼 그걸 질문하고 싶어요. 지금 만나는 분을 정리하고 헤어진 그 분을 다시 만나면 다시 잘 만날 수 있을지."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다시 손을 움직여 카드를 섞으며 물었다.


"그럼 혹시, 그 분과는 왜 헤어졌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어요?"


손님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다시 속으로 어디까지 솔직해져야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냥.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저는 자주 연락하고, 만나고, 표현하고 그런 게 좋은데 그분은 그걸 좀 부담스러워했어요. 그래서 다시 만나도 제가 똑같이 또 외로워지지 않을까 걱정이되고, 똑같은 문제로 또 싸우고 그러진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지금 만나는 분은 다정하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않거든요."


"그런데 왜 헤어진 분이 다시 만나고 싶어요?"


"모르겠어요. 거절하지 못하겠어요. 연락이 오면.......만나고 싶고, 만나야 할 것 같고. 그런데 그 분도 지금 만나는 분이 있거든요."


"네?"


나는 갑자기 뒷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너무 띠용하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는지, 손님은 합!하고 입을 다물었다. 괜히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내어준 것은 아닌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런 남자는! 자기도 지금 사귀는 연인이 있으면서, 이미 다른 연인이 있는 헤어진 애인에게 깔짝거리듯 연락을 던지는 그런 남자는! 절대! 어떤 경우에도 좋은 남자가 아니에요!


나는 소리쳤다. 속으로. 그리고 아마도 눈빛으로. 그녀 역시 내 눈빛을 들었을 것이다.


"그럼 질문을 바꿔야 하지 않나요? 그 남자분이 질문하신분이 마음만 정하면 현재 만나는 분을 정리하고 오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아니요. 그런 얘긴 안했어요."


"그런데 왜 다시 그분을 만나도 될까요라고 질문을 하죠? 그분은 현재 사귀는 사람과 정리할 의사가 전혀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이 질문은 성립 자체가 안되는데."


"아.....그런가요? 그럼 어떻게 질문을 하면 되죠?"


여자의 눈빛이 불안함이라는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일렁거렸다.


"그 남자분을 떼 버릴 수 없다면, 지금 현재 연인을 버리고 나에게 올 가능성이 있는지, 그 남자의 마음에 내가 있는지가 먼저 확인이 되어야겠죠."


그리고 그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죠.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는 지금 혼자일테니까.


"네, 그럼 그 질문으로 할게요."


나는 카드덱을 그녀에게 넘겨줬다.


"질문을 생각하면서 섞고 싶은 만큼, 섞고 싶은 방법대로 섞어서 저에게 다시 주세요."


그녀는 작은 한숨을 훅 내쉬고 천천히 카드를 섞었다. 저 카드에는 지금 그녀의 마음이 쌓이고 있을 것이다. 본인도 정확히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 그가 나를 다시 찾아줬으면 하는 미련과 그런다고 해도 채워지지 않을 자신의 공허함이 이 카드의 결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희망 같은 것들이 말이다.

아주 탁하고도 끈적거리고, 지저분한 감정이다. 감정은 물감처럼 여러가지가 섞이면 섞일 수록 색이 탁해진다. 처음의 것은 무엇이었는지 찾아볼 수도 없이 그냥 모두 다 뒤섞여 빛을 잃어버린다.

나는 그녀에게서 돌려받은 카드를 펼치고 그녀는 신중히 자신의 카드를 골랐다. 뒤집는 카드마다 빛을 잃은 감정들이 엉겨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좀 권위적이고, 제멋대로이고, 나쁜 남자였을 것 같아요. 매력있지만."


나의 첫 마디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자는 어린아이같진 않지만 다정하고 감성적이고 세심하기 때문에 그런 남자분에게 외로움을 느꼈을 거구요."


"네."


"만약 그게 헤어진 이유라면, 그는 바뀌지 않아요. 지금 현재 질문자 분에 대한 마음 역시 깊게 느껴지지 않구요. 여전히 제왕적이고, 제멋대로에요. 질문자분의 감정과 상황에 상관 없이 연락을 하고, 또 끊잖아요. 만약 정말 질문자분을 생각한다면 지금 만나는 분을 정리했겠죠. 그리고 돌아오라고 했을 거구요."


"그렇죠."


"이 관계에서 현재 가장 잘 풀릴 수 있는 건 딱 하나에요. 둘 다 서로 현재의 연인과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것. 하지만 서로의 성향의 차이로 헤어졌기 때문에 그 성향이 변화하지 않는 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시간을 되돌려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긍정적인 결과입니다."


"......"


"하지만 한번 헤어졌다 만난 연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또 하나의 관계가 시작되는 거에요. 헤어졌었다는 과거를 가진 관계죠. 또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똑같은 문제로 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관계요. 하지만 이건 최악이 아니에요. 최악의 관계는 둘 다 현재의 연인을 유지한 채 몰래 또 다른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죠."


"......"


"지금 헤어진 남자분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다른 사람들한테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나요? 그 관계를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나요?"


"......"


"아니요. 없을 거에요. 그러니까 괴로운 거구요. 이 문제는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난다 해도 좋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거에요. 질문자 분은 현재의 연인을 헤어진분 보다 사랑하지 않아요. 더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더 잘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애정은 느껴지지 않아요. 그런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죠. 그렇다고 헤어진 연인에게 돌아간다해도 그가 나를 다시 받아줄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그렇다 해도 이전의 괴로운 기억만 반복될 뿐이구요. 적어도 그는 질문자 분을 현재 연인보다 사랑하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럼 그녀는 사랑하는 건가요?"


이번엔 내가 한숨을 쉬었다. 사랑은 언제나 사람을 바보로 만들지만, 이건 아니잖아.


"그건 다시 카드를 뽑아봐야겠죠? 또 다른 질문이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한 눈을 파는 남자가 있을까요? 적어도 그 남자분은 사랑을 모르거나, 사랑을 할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랑 안해 보셨어요?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에게 쓸 에너지가 남아 있던가요? 온통 그 사람만 생각나고, 시간이 나면 그 사람만 만나고싶고, 그렇지 않아요? 이 관계를 무엇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그냥 사랑인가요? 당당하게 사랑이라고 이름붙일 수는 있을까요? 그게 질문자분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


손님은 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값을 치룬 뒤 옆 테이블로 건너가 식어버린 자신의 저녁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고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왔던 모습 그대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나는 그녀가 왜 그렇게 힘이 없어보였는지 알것 같았다.

사랑은 그 어떤 감정보다도 순순하고 촘촘한 에너지를 주고받는 과정이다. 양다리를 걸치는 것 역시, 진짜 사랑은 아니더라도 그 비스무레한, 유사한 감정을 양쪽으로 분배해야 하는 것일테니 남는 게 없었을 것이다. 주는 것만큼 받아야 채워질텐데, 주는 곳과 받는 곳의 주파수가 영 맞질 않았다. 오른쪽으로 100을 보냈는데 돌아온 건 왼쪽이었다. 왼쪽에서 오는 것이라도 제대로 받았으면 모를까, 그녀는 들어오는 애정도 그냥 흘려 보내버렸다.


"그런 자식들은 왜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을까?"


그녀가 두고 간 접시와 컵을 치우며 주인언니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그녀는 듣지 않는 것 같지만 듣고 있고, 보지 않는 것 같지만 보고있었다.


"글쎄요. 갖고 싶은데 가져지지 않는 소유욕을 자극해서?"


다시 펼쳤던 그대로 융단천을 접으며 내가 말했다.


"소유를 할 수 있니, 사람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사람. 내 사랑. 내 연인. 내 모든 것.

나 역시 그렇게 애지중지 모시던 감정이 있었고, 그것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그 사람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그 감정의 방향은 공기중에 흩어져버렸다. 사람도, 그 사람에 대한 감정도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체에 친 밀가루처럼 뿌옇고 가볍게, 어디론가 흩어져버렸다. 하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그게 내 괴로움 중 하나였고.


"집으로 가니? 내일 보자."


언니는 싱긋 웃어주었고, 나도 작게 미소지어 보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내가 열고 들어온 문으로 나서는 순간, 주머니 속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다.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래?


그, 였다.

공중으로 흩어져버린 감정들이 합체 로보트처럼 모여들어 내 관절마다 착 착 들러붙는 것 같았다.





Three of Swords (세개의 검): 마음의 상처. 시련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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