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a Aug 02. 2024

프롤로그 : 타로를 읽는 사람




*[타로카드 읽는 가게]는 소설입니다. 모티브나 컨셉외의 모든 인물과 나오는 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















여자는 그것이 정말 큰 고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여름에 해외 여행을 가도 되는지 궁금해서요."


나는 가벼운 손놀림으로 카드를 섞다가 잠시 멈칫, 했다 다시 차박차박 섞으며 물었다.


"아....네.....그럼 가면 안되는 다른 큰 이유라도 있으세요?"


사실 이렇게 되물으면서도 짜증이 났지만 그걸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다양한 사람만큼, 혹은 그보다 몇배수의 다양한 고민들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일단 들어온 질문에 대해서 개인적인 판단은 하지말자라고 스스로 마음먹고 시작한만큼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질문은 끝까지 파고들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법이다.

이건 정말 한심한 고민일거야.


"그러니까....제가 시험을 준비 중이거든요."


"준비요? 시험 공부를 하고 계시다는 얘기인가요?"


"네. 지금 공부를 하고 있고, 시험은 10월이에요. 지금이 6월이니까, 7월이나 8월쯤 동남아로 여름 휴가를 다녀오고 싶은데 다녀오면 시험 일정이 너무 코 앞이라 가면 안되나 싶기도 하고, 안가자니 너무 공부가 안되고 머리를 식혀야 할 수 있을 것 같고......그래서 고민이에요. 여름 휴가로 해외를 다녀와도 될지."


나는 더이상 카드를 섞지 않았다. 카드는 그냥 얌전히 포개진 채 내 손 안에 들어 있다.

원래 대로라면 나는 질문을 듣고, 필요하다면 추가 질문을 통해 질문자의 궁금증을 구체화 한 다음, 질문자에게 잘 섞은 카드를 건내주고, 그 질문을 생각하며 질문자가 카드를 섞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카드를 나에게 넘겨주면 나는 융단 천 위에 카드를 겹쳐지지 않게 촥 펼치고 질문자는 내가 말한 숫자만큼의 카드를 골라낸다.

그리고 그 카드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한 뒤 그 상징을 풀이하며 질문에 대한 답을 해석해 주는 것이 타로 리더 (Tarot Reader)가 하는 일이다. 원래대로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질문을 듣고 난 뒤에도 나는 그녀에게 카드를 넘겨주지 않았다.


"여행을 다녀오지 않으면 공부에 전혀 매진 할 수 없는 상태인가요? 그렇다면 갔다와서 열심히 다시 공부를 하시면 되고, 시험이 걱정스러워서 여행을 가더라도 푹 쉬지 못할 것 같으면 일단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여행을 미뤄두고 시험이 끝난 후 가시면 되잖아요. 꼭 여름 휴가여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여자는 내가 다시 물어볼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눈을 꿈뻑이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맹하게 말을 이었다.


"아...그것도 그런데, 지금 꼭 가고싶고, 공부하려고 하면 집중이 안되고, 그렇다고 떠나자니 말씀 하신 것처럼 시험 걱정이 되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할 것 같고, 갔다와서 시험을 준비할 시간이 너무 모자라니까 후회될 것 같기도 하고....그래요."


너무 신물이 났다. 이런 것도 질문이라고 타로카드의 신탁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정말 정답이라는 게 존재할까?

그래서, 지금 이 여자는 무슨 답을 기대하는 걸까? 일단 다녀와라. 그래도 시험에 붙을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답변? 혹은 니가 지금 제 정신이냐, 공부나 해라는 혼구멍?

나는 조용히 카드 덱을 여자에게 건내주고 질문을 생각하며 섞고 싶은 만큼 섞고 다시 달라고 했다. 차라리 내가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라면 정신차리라는 불호령을 내리고 여자를 보내겠지만 나는 그저 타로카드의 상징에 대해 공부하고, 그걸 풀이해 주는 리더(Reader)에 불과하다. 그냥 궁금하다는 질문에 감정없이 카드를 읽어주고 보내자.


"시험은 어때요? 난이도가 어려운 편인가요?"


"네. 일년에 한번 밖에 안 보기 때문에 경쟁률도 높고 합격률도 낮은 편이에요."


그래, 어차피 떨어질 사람이네.


나는 내 감정을 넣지 않으려 노력하며 덱을 테이블 위에 펼치고 여자에게 일곱장을 뽑으라고 했다. 저런 한심한 질문을 가지고도 저렇게 고민을 한다는게 신기할 정도로 여자는 심사숙고하며 카드를 골랐다. 하지만 난 카드는 펼쳐보지 않아도 답을 알 수 있다.

그녀는 후회할 것이다. 여행을 가든, 가지 않든. 중요한 건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고도 까다로운 시험을 앞두고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보지 않아도 뻔하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여행 생각이 날리가 없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렇게는 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아무 생각없이 여행을 다녀와서 집중할 것이다. 그것만이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답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일한 답을 가진 질문이 어떤 신비로운 힘을 가진 계시를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정말, 진짜로, 진실로 묻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도 그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요? 일단 놀고 와서 공부해도 안 떨어질 수 있을까요?


뭐, 일종의 도둑놈 심보라고도 할 수 있지.


나는 그녀가 뽑은 일곱장의 카드를 공식에 맞춰 하나 하나 뒤집으며 제 자리에 놓았다.

그 카드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여자는 '오모, 오모' '어떡해, 어떡해!'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꼴을 보고있자니 한심해서 다 카드를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타로카드를 배우고, 풀이하면서 가장 짜증나고도 재미없는 순간이 바로 이런 순간이다.

바보같은 질문, 타로카드에게 할 필요가 없는 질문을 한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한심한 카드를 읽어주고 풀이해 주어야 할 때.


"지금 질문자는 그게 궁금한 거에요."


"왜요? 뭐래요?"


마치 빙의된 신이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을 빨리 말해 달라는 듯 여자는 안달 복달 했다.


"휴가를 다녀와서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후회안할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에게 궁금한 거라구요."


나는 카드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여자는 정말 용한 무당이라도 만난 듯 나를 보며 또 한번 '오모, 오모' 하며 감탄을 했다.


"공부를 안하고 놀러갔던 그 순간들이 나중에 후회스러울까봐, 이 카드가 괜찮다고 하면 그걸 핑계로 놀러가고 싶은 거잖아요."


그녀는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런 마음이면 어차피 놀러가도 마음 놓고 쉬지도 못해요. 어딜 간들 시험 걱정 때문에 노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와서도 그때 그냥 공부할 걸 내가 왜 갔지?하고 후회할 거라구요."


"그럼 어떡해요?"


"공부하세요. 공부하고, 10월에 시험 끝나고 가세요, 휴가. 동남아라면 겨울에 가도 상관 없잖아요."


"떨어지면요?"


"떨어져도 가고싶으면 가는 거죠. 어차피 다음 시험은 1년 후인데."


"아......"


여자는 굉장히 큰 깨달음을 얻은 듯 나와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폐 한장을 꺼내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무미건조하게 그 지폐를 받아 돈통에 휙 집어던지듯 넣으며 그녀에게 상담 종료 사인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저 시험 보고 다시 한번 올게요. 너무 잘 보신다. 어머머."


여자는 함박웃음을 내게 지어보이고서는 여운이 남는 듯한 얼굴로 나에게 목례를 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돈 벌기 참 쉽네, 쉬워.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런 생각을 혼자서는 못하는 걸까. 놀 생각 그만하고 공부나 해,라는 말을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서도 들었을텐데. 그때 그녀는 어떤 표정으로 그 조언에 반응했을까?

나는 여전히 펼쳐져 있는 그녀의 카드를 내려다 보았다. 이건 질문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사실 카드를 해석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그러나 딱 하나, Knave of Swords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일명 양아치 카드.

누군가를 속이거나 말로 성과를 가로채는 것을 상징한다. 연애운에 대한 질문에 이 카드가 들어오면 연인이 나를 속이고 있거나 그러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라고 조언을 하고, 금전운에 대한 질문에 이 카드가 나오면 주변에 금전 사고가 날 가능성은 없는지 주의하라고 조언을 한다.

그녀의 경우엔 어떨까?


내가 나 자신을 속이는 것도 사기지.


그녀는 스스로를 속이려 들었다. 양아치처럼.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과정의 고통은 버리고 결과의 달콤함만을 꿈꾸는 사기꾼은 꼭 바깥에만 있는 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자주, 경계심 없이 가장 많이 속는 건 자기 자신에게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나가면서 올 여름 휴가계획을 짜기 시작했을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그녀에게 1년의 유예기간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 마지막 한마디로 그녀의 시험 준비 기간은 4개월에서 16개월로 늘어나버렸다.



아, 어쩌면 그 양아치는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Knave of Swords: 일명 양아치 카드. 아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수 있음.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