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 8월 Essay

8월 Essay_시원하게 게을러져도 되는 권리

by 문혜정 maya



'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은 매월,

하나의 에세이와 그 달에 어울리는 꽃과 사진을 정리한 이야기, 총 2개의 글을 발행합니다.








8월_August Essay

시원하게 게을러져도 되는 권리: 어떤 시기에는 대책없이 게을러지고 싶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름 휴가를 떠나는 것 같은 시즌이 왔다. 모두들 어딘가 조금씩 나사가 빠진 것 같고 ‘더워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문을 열고 나가면서도 더워죽겠다, 들어오면서도 더워 죽겠다고 한다. 너무 더울 때는 꽃들도 꽃을 피우지 못한다. 꽃시장의 꽃들도 다양성을 잃어버려 꽃구경하는 재미도 덜하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장마가 겹치는 8월초엔 우중충한 하늘, 끈적함을 더하는 공기중 습도까지 합쳐져 누가 그냥 툭 건드리기만 해도 짜증이 난다.








TV를 틀면 모두가 물놀이다, 바캉스다 아주 신나고 익스트림하게 지내고 있는 것만 같은데 현실에선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이 된 기분의 나만 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힘에 겹고, 앉아도, 누워도 몸이 무겁다. 아침에 땀에 푹 절여진 채로 불쾌하게 눈을 뜨는 것은 평생동안 여름마다 겪는 일인데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나는 한 여름에는 휴가를 잘 가지 않는다. 예전부터 그랬다. 더운 나라로 휴가를 가더라도 여름엔 가지 않았다. 더운데 더운 곳을 찾아갈 이유가 없을 뿐더러, 그냥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죽은 듯 있는 것 뿐인 것 같았다.
곰은 겨울에 동면에 들어가지만 나는 여름에 동면에 들어가는 곰처럼 그렇게 무뎌진다. 모두가 휴가를 떠난 마당에 굳이 부지런할 필요가 있나 싶고, 뭐가 늦거나 늦춰져도 큰일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차피 나 혼자 다급한 메일을 보내도 담당자는 대부분 휴가중이다. ‘이렇게 프로페셔널 하지 못하다니!’ 하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그 다음 주 여름휴가를 떠날 것이라 혀만 끌끌차고 그냥 기다린다.
온 세상 시계가 다 고장난 것같다. 아니, 녹아버린 것 같다.







단순히 해가 길어졌을 뿐인데 하루 24시간이 28시간쯤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길어진 낮만큼 더위도 길어지고, 하루도 길어지고, 결국 8월이 지겨워진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모두 떠들썩하게 여름 휴가를 가고, 다시 돌아와 자리를 채워도 8월은 끝나지 않는다.
개월 상으로는 일년의 절반이 이미 지난 시간이지만 여름은 꼭 일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8월은 사실은 3사분기지만 일년의 정점같다. 그래서 그런 걸까? 8월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일년이 다 지난 것 같아서 화들짝 놀라곤 한다.








한 여름에도 부지런히 삶을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없을 거야.
그러니까, 전전긍긍 몰래 몰래 게을러질 필요도 없다. 그냥 시원하게 대놓고 게을러도 된다. 부지런히 종종거려도 나갈 때 더워 죽겠고, 들어올 때 더워죽겠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퍼붓는 날엔 아무리 조심히 돌아다녀도 바지단이 무릎까지 젖고, 무얼해도 흥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주에는 여름휴간데, 그 누가 진지해질 수 있단 말인가.







휴가를 떠나지 않는 내가 여름을 나는 방법은 초록의 것들과 머무르는 것이다. 지난 봄부터 초 여름까지 부지런히 자라 덥수룩해진 화분들을 조금씩 정리한다. 화단에 키우던 수국도 잘라오고, 집 안에서 키우던 테이블 야자, 고사리, 셀렘 같은 화분에 길게 자란 가지도 군데 군데 잘라 물에 꽂는다. 식물들은 가벼워지고 내 눈은 시원해진다. 이 식물을 키워 종자를 낸다더나 과실을 맺게 할 것이 아니라면 가지치기에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된다. 제일 예쁘고 길게 자란 아이들을 자르는 게 무서우면 여기에 없어도 크게 모양을 해칠 것 같지 않은 가지를 자르자. 겁 낼 것 없다. 어차피 오래되면 시들 잎들이고, 활짝 피고난 뒤엔 질 꽃들이니까. 내가 이상하게 가지를 잘라냈더라도 물만 제 때 잘 주고, 햇빛만 충분히 보여주면 식물은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묵은 가지들을 잘라내면 내년 쯤엔 더 보기 좋아질 수도 있다.


포인트는, 너무 진지해지지 말 것. 너무 열내지 말 것. 너무 더워지지 말 것. 잊지말자. 지금은 모두가 게을러지는 8월이다.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는 그 달의 에세이를 써서 발행합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그 달에 어울리는 꽃, 직접 만든 꽃, 찍어 놓은 사진을 정리하여 발행합니다.

저의 글과 꽃과 사진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보기]

Prologue_꽃도 흔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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