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 9월 Essay

9월 Essay_ 질척이는 이별의 끝

by 문혜정 maya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2021년 4월 말,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발간됩니다.


이제 서점에서 만나요!







'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은 매월,

하나의 에세이와 그 달에 어울리는 꽃과 사진을 정리한 이야기, 총 2개의 글을 발행합니다.








9월_September Essay

질척이는 이별의 끝 : 끝내지 못하고 질척이는 자신이 싫다면












어느 순간부터 ‘벌써'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되었지만, 일년 중 가장 임팩트가 센 ‘벌써'는 9월에 찾아온다.
벌써, 9월이라니.


이제 한 여름의 원색들은 어딘지 모르게 빛을 바랜다. 청량한 색만을 찾아 헤매이던 내 눈은 갑자기 톤 다운 된 가을의 색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아직 덥지만, 덥지 않은 것 같다. 변화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은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닥 놀란 것 같지도 않다. 벌써 9월인게 놀랍지만, 벌써 9월이 된 것에 놀라진 않다는, 뭐 그런 이상한 느낌적인 느낌?
왜냐면 나는 여름이 시작되던 그 순간부터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냉정히 ‘그럼 안녕'하고 돌아설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는 여름이었고, 1년의 절반쯤 되는 어디엔가 살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9월 1일이라는 숫자는 8월 31일이라는 숫자와는 완벽히 다른 계절로 나를 데려간다. 여름에서 가을로.
옷장에는 아직도 반팔과 민소매 옷 밖에는 없는데, 한 낮에는 에어컨이 없으면 땀이 주르륵 흐르는데, 마음은 가을로 들어선다. 나의 의지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달력의 9를 보는 순간 가을을 떠올리도록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쉬운 이별이 있을까?
나는 언제나 힘든 이별을 했다. 물론 나만 힘든 이별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체로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니까.
하지만 ‘그동안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말자.’하고 깔끔하게 끝내는 연애를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스스로는 꽤 쿨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연애와 이별만은 늘 지지부진하고 눈물겹고 찌질했다. 주로 긴 연애를 했고, 긴 시간동안 연인들은 천천히 식어갔다. 그리고 둔하게도 알아차리지 못한 변화의 끝에서 그들은 언제나 일방적인 안녕을 고했다. 벌써 9월이야?라고 생각할만큼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벌써 끝이야?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리고 얄궂은 우연이지만 나는 항상 여름에 누군가와 헤어졌다. 여름이 시작될 때쯤 이별의 문이 열리고, 여름이 끝날 때쯤 이별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가을과 겨울에는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는 했다. 어쩌면 여름이 유독 싫은 이유는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끈적한 땀과 눈물의 콜라보라니.
땀으로 푹 젖은 담요도 혐오스러운데 여기에 눈물로 푹 젖은 베개까지 더해지다니 잔인함이 질척이는 기분이다.





그들은 언제부터 ‘그럼 안녕' 하고 돌아설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나와 함께 박수를 치며 ‘해피뉴이어!’를 외치던 1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지!하고 화이팅을 외치던 3월? 아니면 길가에 놓인 편의점 테이블에서 맥주 한캔을 따고 봄을 만끽하던 5월?
나에겐 지나간 시간 모두가 용의자가 된다. 범인을 밝힌들 살해당한 감정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매일 밤 쓸모없는 추리는 그나마 살아있는 내 자존감마저 죽이려 든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그런 추리를 하는 것이 무의미해질만큼 그들과 나 사이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 속 한 곳이 싸늘하게 굳어진다. 이미 남아 있지 않은 옛 애인들에 대한 감정이 더욱 차갑게 식는다.





그렇게 호된 8월을 지나고, 9월이 오면 나도 조금씩 정리가 되었던 것 같다. 계절 하나를 종이처럼 착착 접어 서랍안에 넣는 것처럼. 8월과는 다르게 보송 보송한 기분으로 눈을 뜨게 되는 아침덕분인 것 같다. 그게 비록 아침 뿐이긴 하지만.





이제 여름이 끝난다고 생각한 나는 여름의 것이 아닌 꽃에 기웃거려본다.
호빵처럼 크고 둥근 메리골드 보다 작고 벨벳같은 미니 메리골드가 딱 9월의 가을처럼 보인다. 여름에는 연두색이다가 가을이 올 수록 피치로, 피치에서 레드로 변해가는 하이페리쿰 열매도 적당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포송포송해 보이는 과꽃과 익시아도 그럭저럭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있는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계절은 나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름꽃도, 가을 꽃도 모두 만날 수 있는 계절이라 나는 부지런해질 수 밖에 없다.





아직도 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벌써 찾아온 9월에는 끈적함이 가시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 시작한다. 머무르지 않고 조금씩 옮겨 가보기로 한다. 그래도 되는 계절이 드디어 왔다.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는 그 달의 에세이를 써서 발행합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그 달에 어울리는 꽃, 직접 만든 꽃, 찍어 놓은 사진을 정리하여 발행합니다.

저의 글과 꽃과 사진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보기]

Prologue_꽃도 흔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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