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나는 괜찮은 작가가 되고 싶다.
나는 돈을 벌고 싶다.
나는 나만 책임지면서 살고 싶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알고 싶다.
나는 나를 위해 살고 싶다.
나는,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내가 바라는 것 중에 크게 어려워 보이는 건 없었다.
그 무엇도.
<타로카드 읽는 카페, 선택의 결과 중에서>
소설 속 주인공은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실패한 인물로 나오죠. 흔한 설정이에요. 작가 지망생이거나, 작가가 주인공인 소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니, 많대요. 처음 출간을 준비할 때 출판사에서 그렇게 말씀 해 주셨어요. 흔한 설정이다. 꽤 많이들 하는 설정이다.
왤까요?
작가가 어떤 캐릭터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쓸 때 가장 잘 감정이입이 되는 존재여서가 아닐까요? 다른 인물들은 모두 상상이나 간접경험에 의해 쓰여지지만 '작가가 되고 싶은 인물'의 마음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세련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만, 능력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은 마음의 한 구절을 쓸 때에는 거의 세련이 되어서 썼던 것 같아요.
브런치에는 수많은 작가와 작가 지망생(출판을 경계로 나눈다면 지망생이지만 저는 브런치의 작가들도 모두 작가라고 생각합니다)들이 있습니다. 이미 책을 몇권 냈다면 더 많은 책을 쓰고, 더 많은 독자들이 봐주길 원하는 작가들과, 이제 조금씩 글을 쓰고 있지만 그것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눈에 띄어 '이것을 책으로 내보자'는 제안을 받고 싶어하는 지망생들이 아마 순수히 브런치를 통해 글을 좀 읽고 싶다는 사람보다 많을 거에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여기엔 독자보다 작가가 훨씬 많다고.
저도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저 누군가 내 글을 재미있게 보고 다음화를 기다려주기만 해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가장 큰 고민이자 바람이었죠. 그러나 출판사가 정해지고 책을 준비할 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원고가 최대한 고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 이렇게 많이 들어내지면 그게 과연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맞나? 하는 생각에 괴로웠죠.
그러나 훌륭한 편집자님을 만나 원작보다도 훨씬 깔끔하고 담백하게, 그야말로 책다운 책으로 세상에 나오자, 다시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책이 진짜로 팔렸으면 좋겠다, 누군가 서점에서 사고 싶은 책이었으면 좋겠다고요. 함께 브런치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다른 책들이 잘 나가면 잘 나갈수록(사실 다른 책들의 사정은 모르지만 왠지 제 책만 눈에 안띄는 기분이 들었달까요?) 고민이 깊어 갔어요.
내가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뭘 해야 할까?
마케팅도, 영업도 모두 출판사의 몫이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이렇게 브런치에 <타로카드 읽는 카페>의 뒷 이야기를 하는 브런치북도 새로 만들었고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SNS 스레드에 책을 홍보하는 포스팅도 간간이 올렸죠. 그러나 조회수는 미미하고, 사람들은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조금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책추천을 해달라는 글들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 조금 뻔뻔하지만 책추천을 해달라니, 내 책을 추천할게. 내 소설 제목은 <타로카드 읽는 카페>야. 진짜 재미있어. 표지도 예뻐. 어쩌고 저쩌고......
보통은 '작가님이 직접 추천해 주다니 꼭 읽어볼게!'하는 희망찬 답글을 달아 주었고, 정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내가 '뭐라도 하고 있는 중이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어요. 적어도 가만히 앉아서 이 책이 묻히도록 두지는 않았다는 면책을 겨우 그 댓글 달기로 받았달까요....? 제 마음 속에서 말이죠.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어떤 포스팅을 발견했어요. 그날도 어디 책추천 해달라는 사람 없나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고 있던 차였죠.
본인도 작가이고, 독립서점을 하지만 책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자기 책만 주구장창 추천하는 작가의 책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는 글이었어요. 그는 저에게 한말도 아니고, 제가 볼거라고 예상하고 쓴 것도 아니었지만 그 말이 며칠 간 내 소설 추천을 한다고 동동거리며 댓글을 달던 저에게 꽤 큰 상처가 됐습니다.
내가 내 글을 너무 사랑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꼴불견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포스팅을 보기 전까지는 얼굴에 철판 정도만 깔면 할 수 있었던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됐다는 것도 속상했죠.
남편은 그런 사람도 있지만 추천을 받고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다, 나쁜 책이 아니지 않느냐고 위로 했지만 다시 선뜻 그 전처럼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저를 위한 타로를 봤어요.
<타로카드 읽는 카페>를 쓰면서 의외로 타로점을 쳐본 적은 없었거든요. 타로를 배울 때는 이것 저것 질문도 해보고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잘 보지 않게 됐어요. 책에 쓴 것처럼 질문 자체가 답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저 무엇이 문제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타로가 필요 없더라고요.
하지만 이번엔 왠지 타로로 질문의 답을 찾고 싶었죠.
질문은 '지금처럼 계속 스레드에 댓글로 내 책 추천을 하고 다녀도 될까요?' 였습니다.
어떻게 보이세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단 스레드에 제 책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쓰고 있고요(여전히 아무도 관심은 없습니다), 책추천 댓글은 아직 재개하지 못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포스팅을 본 이후로 제 스레드 알고리즘에서 책추천에 대한 글들이 싹 사라졌어요. 한창 댓글을 달고 다닐 때는 하루에도 몇번씩 뜨던 '재미있는 소설 추천해줘'라는 글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아요.
물론 몇번 관련 글을 검색하고 클릭 하다보면 다시 알고리즘에 등장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러고 싶지 않네요. 아직 완벽히 마음의 상처를 극복한 건 아닌지, 또 비슷한 욕을 먹는 게 싫은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위에 제가 뽑은 카드들 중에서 Eight of Swords를 가장 의미 있게 해석했습니다. 나를 가두고 있는 건 사실 나라는 뜻으로요.
앞서 인용했던 구절이 나왔던 챕터에서는 어떤 카드를 썼을까요?
The Lovers(연인) 카드입니다.
사랑 가득하고 꽃길만 가득할 것 같은 카드로 보이지만 이 카드는 종종 유혹에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고 조언하죠.
제가 쓰는 올드 잉글리쉬 카드에 있는 연인 카드도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어서 웨이트 타로로도 동일 한 카드를 책이 실은 것 같아요.
The Lovers(연인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여러 유혹이 있을 수 있지만 이리 저리 흔들리지 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밖에서 저를 보면 어떻게 보일까 생각해 봤어요.
6년이나 쓴 소설을 완성했대.
그 소설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대.
창비 출판사에서 그 책을 출간해 준대.
이제 '소설가'로서 글을 쓸 수 있게 됐대.
지금 이글을 보는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바라는 괜찮은 결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온전히 그 사실을 즐기지 못하고, 혹은 스스로 위축되거나 상처를 받을까요?
아마 저 괜찮은 결말이 결말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소설은 괜찮은 결말로 완전한 끝을 맺을 수 있지만 내 삶은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 소설이 별 볼일 없이 묻혔대.
속편을 준비해 뒀는데 반응이 없어서 같이 묻힐 것 같대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자꾸 이야기가 막힌대.
자꾸 뭘 더 하려고 하는데 뭘해야 하는지 모르겠대.
이렇게 이어 쓰면, 또 그다지 부럽지 않잖아요?
하지만 이건 저만 들리는 제 마음 속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제 그런 거지 같은 마음의 소리는 접어두고 다시 성문 밖으로 나가보려고 합니다. 한 걸음 나섰다가 아닌가 싶으면 소라게처럼 다시 성문을 걸어 잠그면 되니까요. 큰 걸음을 뚜벅뚜벅은 못 걸어도 잰걸음으로 들락날락하면서 비겁하지만 제가 괴롭지 않은 방향으로 가보겠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해야겠어요.
소설 '타로카드 읽는 카페'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제목이 좀 유치하다 생각될 수도 있고, '타로카드'라니 무슨 오컬트 같은 소리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저 그런 타로카드 설명서 같은 내용이겠지라고 넘겨짚을 수도 있지만,
다 틀렸어요.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것도 아주 즐겁게.